(마령면 수선루, 큰시내들)
글·사진 조문환 선생
강둑에 서서 이방인과도 같은 나는 물끄러미 강바닥을 응시한다. 그 가난함에, 그 인내에, 그 처참할 만큼의 솔직함에 할 말이 없었다. 새해들어와 섬진강을 가기로 마음먹었었다. 오히려 가지 않은 날에는 섬진강이 눈에 더 아른거린다.
지나온 섬진강의 굽이굽이가 눈을 감아도 또렷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갈 때마다 섬진강은 나에게 새로운 음성을 들려주지만 그렇다고 매번 친근한 미소만 던져 주지는 않았다. 섬진강이 나와 이심전심인 줄 알았더니, 폭포수처럼 섬진강이 쏟아내는 그 음성을 다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더니, 나 섬진강과 찰떡궁합인 줄 알았더니, 나는 너와 상관이 없노라고 손사래 친다. 허기야 나 그렇게 쉽게 섬진강과 호흡을 같이 했더라면 나 그처럼 섬진강을 그리워하지 않았으리!
나 그처럼 섬진강과 찰떡궁합이지 않았기에 나 그처럼 섬진강을 느끼기 위해 몸이 달아있지 않겠는가? 마령은 사람을 잡아당기는 마력이 있는가 보다. 마령을 다녀 온 후 마령사람들의 인기척이 떠나지 않았다. 드라마 세트와 같은 거리에서 분장을 한 사람들이 반겨 맞아 줄 것 같았다.마령면 소재지를 살짝 스쳐지나온 섬진강은 곧바로 두 개의 작은 개천과 합수를 하니 바로 세동천과 은천이다.
은천은 섬진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섬진강과 하나가 되고 북에서 남으로 남하를 해온 세동천은 섬진강의 옆구리라도 찌를 기세로 내려오다 섬진강과 일순간에 합수를 한다. 세동천은 어찌나 섬진강과 닮았는지 어떤 것이 섬진강인지 어떤 것이 세동천인지 그 줄기를 따라오지 않고는 분간조차 어려워 보인다. 섬진강이 제 혼자 강이 아닌 것은 섬진강을 따라 걷다보면 알 수 있다. 산이 강을 낳고 강이 바다를 낳아 산과 강과 바다가 하나라는 것은 실핏줄과도 같은 섬진강을 걷고야 깨달았다.
강이 어떻게 이처럼 굽이쳐 쌍굽이가 될 수 있는지, 누군가가 이처럼 강의 형상을 조작하지 않았던들 있을 수 있었을까? 강물의 휘돌기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 수선루다. 그 기괴한 강의 휘돌기를 시샘이라도 하듯이 수선루의 형상은 여느 정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산허리에 돌출된 바위틈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수선루는 마치 새둥지와 흡사하고 지붕이나 처마가 없이 바위가 이를 대신한다.
수선수의 섬진강은 차라리 호수가 되어 버렸다. 강물위에 보름달이라도 내려앉아 강과 달이 하나가 되고 곡주라도 기울인다면 이것은 신선이나 할 일이 아니겠는가? 수선루를 휘감아 돈 섬진강은 그 기세를 살려 큰시내들에 이르러 다시 한 번 산허리를 감싸고 돌았다. 그 휘감기가 어찌나 기묘하던지 쌍굽이치는 섬진강을 내 발 아래두고 그 전라의 모습을 또렷히 내려다 보고 싶은 욕망이 생겼다. 견물생심이랄까?
어찌나 낙엽이 두텁게 쌓였던지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차가운 날씨에도 깎아지른 듯한 산을 오르니 땀이 비 오듯 흘렀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시위를 당기는 활처럼 휘감아 도는 강의 위용을 볼 수만 있다면 이쯤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올라갈수록 더욱 선명하게 보일 것만 같았던 섬진강의 쌍굽이는 빼곡하게 자란 나무들 때문에 오히려 더 가려져만 갔다. 하늘을 나는 새가 되지 않는 이상 그 굽이굽이를 볼 수 없었다. 아! 이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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