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신체활동 도움주고 인터넷 세상과도 연결
"나의 팔다리, 눈과 귀가 돼 준 너는 내 운명"

▲ETRI가 개발한 시선추적기술 시연장면 ⓒ2012 HelloDD.com
#사례1 : 장애인부부의 일상을 담아 지난해 11월 암스테르담 국제 영화제에서 장편 부문 대상을 수상한 다큐멘터리 영화 '달팽이의 별'. 영화의 주인공 조영찬 씨는 듣지도 못하는 시청각 중복장애인으로 ‘점자’ 없이는 가족들과의 간단한 의사소통조차 쉽지 않았다. 그런 그가 2004년 ‘점자정보단말기(한소네)’를 만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단말기를 컴퓨터에 연결해 꿈에 정보의 바다에 뛰어들고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혼자 검색할 수 있게 됐다. 뿐만 아니라 조 씨가 하려는 말은 LCD 창을 통해 상대에게 전달됐으며, 상대의 말은 조 씨에게 점자로 출력됐다. 각종 전자도서도 간편하게 다운받아 원하는 책을 마음껏 읽을 수 도 있었다. ‘설리반의 손 헬렌 켈러의 꿈’이라는 인터넷 카페도 개설했다. 조 씨는 현재 미국 헬렌 켈러 국립센터에서 재활 및 자립생활 프로그램 연수를 준비하며 중복장애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
#사례2 : 선천성 소아마비로 거동이 불편한 A씨. 집안에서 외출을 도와줄 사람이 없이 20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외출을 해 본적이 없다. 그가 두 뺨에 스치는 바람을 느끼고 눈부신 태양을 받으며 인근 마트에 처음으로 가본 것은 2008년 무렵이다. 정부가 국산제품의 전동휠체어를 지원하면서부터다.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게는 500만원에 이르는 전동휠체어는 고가이지만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제품이다.

2012년 현재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전국의 장애인 수는 2만 5000여명이다. 많은 장애인들이 '보조공학(Assistive Technology)'을 이용한 다양한 장비들을 통해 장애를 이겨내고 있다.

특히 이들 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고 참여하며, 적극적이고 생산적인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이 가능해졌다. 보조공학은 집에서 손쉽게 만들 수 있는 장난감부터 컴퓨터와 같은 하이테크를 이용한 장치에 이르기까지 장애인의 기능적 능력을 유지·향상시켜 이들의 학습과 사회생활에 도움을 주는 모든 장비와 기계장치에서 나아가 서비스와 전략까지를 포함한다.

보조공학기기는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쓰임새가 늘고 있다. 또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도 전체 장애의 90% 이상을 차지하며 보조공학기기의 필요성 역시 날로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늘어나는 수요에 비해 국내 보조공학 제조 기업이 부족한 상황. 또한 보조공학기기들은 국산화, 저가화, 고품질화를 비롯해 소프트웨어의 한국어 인식 등 아직 해결해야할 과제도 많다.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장애인들도 더불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기대하며 척박한 환경이지만 약진하고 있는 국내 보조공학 관련 기술개발 현황과 기업들을 소개한다.

◆ 모두가 행복한 세상 만드는 '힘스인터내세널'

▲힘스인터내셔널이 개발한 특수점자 컴퓨터
- 한소네 U2 
ⓒ2012 HelloDD.com

대덕에 자리한 힘스인터내셔널(대표 윤양택)도 장애인의 정보화와 정보 접근을 돕기 위한 다 양한 정보통신보조기기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

위에서 소개한 조영찬 씨는 물론 이탈리아의 테너가수인 안드레아 보첼리도 힘스인터내셔널의 고객이다. 힘스인터내셔널은 시각장애인용 휴대용 특수 점자 컴퓨터인 '한소네'를 비롯해 음성 독서기 '책마루', 저시력인을 위한 전자 독서 확대기 센스뷰와 시각장애인용 네비게이션 등 보조공학기술을 적용한 다양한 제품을 개발하고 전세계에 보급해왔다.

윤양택 대표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더욱 연구하고 노력하는 기업'을 경영철학으로 기업을 설립했다. 다른 전자제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장성이 적은 업종을 선택한 이유도 이러한 철학이 바탕이 됐다. 윤 대표는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의 소외계층이 오피니언 리더로 성공하고, 또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자신들의 손으로 직접 바꿀 수 있도록 지원하고 싶다"며, "이를 위해 매년 매출의 1% 이상을 후원금으로 기탁하고, 또 매년 2000만원을 장학금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 장애인 홀로서기 도와주는 다양한 제품들
 

▲(왼쪽부터) 청각장애인을 위한 골밀도 이어폰,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기능성 의자
이노체어, 몸에 맞춘 장애아동용 수동식 휠체어
ⓒ2012 HelloDD.com

'이노체어'를 제조, 판매하고 있는 '이노퍼니'도 보조공학기기를 만드는 토종업체다.

편안한 사무용 의자로 사용할 수도 있고 록킹 장치를 풀면 등받이가 등의 움직임에 따라 180도까지 스트레칭이 가능한 '이노체어'는 장시간 앉아서 생활하는 휠체어 장애인들에게 유용한 보조공학기기다. 휠체어 장애인들은 디스크나 근막통증후군 등의 허리통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 '이노체어'는 이 같은 어려움을 해소하는 기능성 의자다. 의자 등판의 각도를 체형에 따라 90도에서 180도까지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스트레칭을 통해 피로와 뭉친 근육을 풀어줄 수 있다. 또한 등판이 뒤로 완전히 젖혀진 채 고정이 가능해 간이침대로도 활용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장애인, 노인 등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를 높이기 위해 2010년 설립한 사회적 기업 '이지무브'는 장애인의 체형과 특성에 맞는 맞춤형 보조기기는 물론이고 기능성 휠체어, 자세유지기를 제작· 판매하고 있다. 특히 '이지무브'가 개발 중인 '복지차'는 슬로프와 움직이는 좌석 등으로 장애 혹은 운전자가 쉽게 차량에 탈 수 있게 했고, 몸을 크게 움직이지 못하는 장애인을 위해 조이스틱 핸들, 레버·터치식 가속 장치를 적용한 장애인을 위한 차량이다.

'휴리아'는 골전도 이어폰과 헤드셋에 이어 국내 첫 골전도 보청기도 개발했다. 골전도란 뼈의진동을 통해 고막을 거치지 않고 바로 달팽이관으로 소리를 전달하는 것으로 고막의 손상을 방지해주고 귀에 스트레스를 적게 주는 방식으로 고막이 손상된 사람도 온전히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보조공학기기다.

◆ 공공기관도 장애로 불편 없는 세상 만드는데 한 뜻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원장 김흥남)는 19일 국내 최초로 손 동작 없이 눈만으로 TV 시청과 게임, 인터넷 탐색이 가능한 '비착용형 원거리 시선 추적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특수 안경 등의 보조장치를 사용하지 않는 비착용형 대화면 시선추적 기술로 기존의 TV 리모콘, PC의 마우스 등의 인터페이스 장치를 대신해 TV 혹은 모니터 화면을 눈으로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해당 정보기기의 메뉴 조작이 가능한 새로운 사용자 인터페이스 기술이다. 즉 사용자의 시선에 따라 커서가 이동하고 선택하고자 하는 대상을 1초 이상 쳐다보면 클릭이 되는 방식으로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TV 시청과 게임, 인터넷 탐색 등을 할 때 유용하게 쓰일 전망이다.

특히 이번 시선 추적 기술은 기존 시선 추적 기술들이 PC 환경을 목표로 제작된 근거리 기술인데 비해 TV와 같은 대화면 디스플레이를 대상으로 원거리에서도 적용 가능한 장점을 가지고 있어 활용 가치가 크다. 또한 세계 최초로 단일 적외선 조명을 이용함으로써 기존의 시선추적 기술들이 2개 이상의 다수 조명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시스템 경량화와 소형화 경쟁력을 확보했다. 연구책임자인 차지훈 ETRI 융합미디어연구팀장은 “이번 기술이 지체 장애우의 정보 접근성 향상 등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특허청(청장 이수원)도 20일부터 '공익변리사 특허상담센터'에서 장애로 거동이 불편한 민원인 또는 원거리 거주 민원인을 위한 화상상담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복적인 대면상담으로 진행되는 지재권 상담서비스 특성상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원거리 거주민 등 사회적 약자에게는 불편함이 있었다. 화상상담서비스 제공으로 민원인이 가정에서 손쉽게 상담을 받을 수 있어 여러 번 상담센터까지 방문해야 하는 불편을 덜 수 있게 됐다. 특허청은 이와 더불어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공익변리사의 도움으로 작성된 출원명세서, 심판청구서 등의 문서를 점자문서로 변환해 제공함으로서 장애인의 발명 의욕이 고취시킬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행정안전부가 주관한 장애인 정보통신보조기기 이용수기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조영찬 씨의 후기 한소네가 몰고 온 꿈의 무지개를 소개한다. (원문보기 바로가기) 나는 두 가지 장애를 가졌다. 시각장애와 청각장애가 그것이다. 즉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헬렌 켈러와 같은 유형의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 운명에 처한 것이다. 이런 나를 사람들은 시청각장애인이라고 부른다. 한 가지 장애만 가지고도 살아가기 녹록치 않은 세상인데 중복장애를 가진 채 살아간다는 것은 필설로 형언할 수 없는 고충과 힘겨움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혼자서 집 밖에 나가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위험이다.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은 서로에게 극심한 고통과 낭패다. 아무리 큰 소리로 여러 번 말해줘도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해 어디를 가도 외부와 고립된 채 자신만의 세계에 칩거하게 된다. TV도 시청할 수 없고, 전화통화도 그림의 떡이다. 학교에 가도 강의를 들을 수 없으며 집에서도 늘 혼자다. 혹심한 어둠과 적막에 갇힌 채 나의 유년과 청소년기가 휘청거리며 지나갔고, 칠흑 같은 청년기가 만신창이가 된 채 내 삶에 기나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런 와중에도 세상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눈부신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고 있었다. 컴퓨터가 집집마다 놓이기 시작하더니 화면을 음성으로 변환해주는 스크린리더 기능의 발달로 시각장애인들의 정보생활에도 획기적인 서광이 비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의 고립감과 좌절감은 가일층 무거워졌다. 청각이라도 있었다면 나도 저들처럼 스크린리더를 통해 마음껏 정보생활을 누릴 수 있을 텐데, 대체 나는 왜 이 같은 고독지옥에 갇힌 채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나는 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기의 혜택에서조차 소외되어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컴퓨터도, 스크린리더도 나와는 영영 인연이 없는 물건인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의 소외감을 느끼지 않기 위해 정보보조기기에 대한 어떠한 관심과 기대도 갖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신 점자책을 통해 꾸준히 독서하며 한 가닥 희망이나마 붙잡아보려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그러던 어느 날 점자 신문을 읽다 눈이 번쩍 아니, 손이 번쩍 뜨이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정보단말기인 한소네가 출시되었다는 기사가 실려 있었던 것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조기기는 대다수가 음성을 이용한 지원체계를 갖춘 것들인데 반해 이 한소네라는 단말기는 모든 정보를 점자로 출력해주는 것이어서 시청각장애인인 나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가슴에 희망의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가격이 500만 원대로 기초생활수급권자인 나로서는 도저히 구입할 수 없는 고가품이란 점이 장벽처럼 느껴졌지만 가슴에 피어오르고 있는 희망의 불씨를 짓밟아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뒤 해가 바뀌면서 나는 어느덧 30대 중반에 들어섰다. 막연한 기다림에 지쳐갈 무렵  다시 한 번 혜성같이 눈부신 소식이 전해졌다. 한국정보화 진흥원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보조기기 보급 사업을 시작했고, 그 가운데 한소네도 당당히 포함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너무 고가품이어서 선정되지 않을 것 같았던 한소네가 기적처럼 보급품 목록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즉시 신청서를 작성해 한껏 부푼 꿈과 희망을 동봉해 띄웠다. 그리고 대전 지역에 단 한 대만 배정된 한소네가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내 품으로 날아와 안겼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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