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만 KIST 박사팀 "국내산 원료 사용해 전통적 밀납법에 의해 제조돼"

경기도 용문산 자락에 위치한 상원사 종각에는 낡은 범종이 하나 걸려있다. 이 범종은 신라, 중국, 일본의 삼국 범종 양식이 혼합된 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독특한 방식을 갖는 것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제야의 종으로 타종되기도 했다. 용문산 상원사 범종은 높이 156.5cm, 구경이 89.0cm 종입구 두께가 6.1cm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이 범종에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다. 용문산 상원사가 1907년 일본군의 독립군 말살을 위한 공격으로 소실되면서 남산동 본원사 경성별원으로 이송됐고 이후 1945년에는 조계사로, 1998년 초 보광사로, 2000년 조계사로 이동한 끝에 2010년 원래 위치인 용문산 상원사로 귀환하는 등 10여년간 여기저기를 떠돌았다. 

이런 떠돌이 생활을 하는 하던 범종이었지만 삼국 양식이 독특하게 어우러진 아름다움이 인정되면서 광복 후 제367호 국보로 지정되기도 했는데 '일본종'이라는 위종설이 제기되면서 국보지정에서 해제되는 불운을 당했다. 이런 가운데 상원사 범종이 국내에서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과학적 주장이 제기됐다. 과학적 근거로 일부 학자의 주장을 뒤집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도정만 KIST 박사팀이 밝혀낸 상원사 범종의 국내제작설에 대해 들어봤다. <편집자 주>
 

▲도정만 박사가 상원사 범종이
국내에서 제작 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2 HelloDD.com
국보로 지정됐다가 탈락된 용문산 상원사 범종이 국내에서 제작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과학적 연구결과가 나왔다. 

도정만 KIST 전통과학기술사업단 박사팀은 15일 열린 한국범종학회 정기 학술발표회에서 상원사 범종의 제작시기와 원료산지를 추정하고 한국종과 일본종에 대한 화학조성을 조사·비교·검토한 결과를 가지고 이 같이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상원사 범종은 신라시대 범종의 화학조성과 유사했으며, 일본의 범종 화학조성과는 다르게 나타났다. 도 박사 팀은 국내산 원료를 사용해 전통적인 밀납법에 의해 제조됐으며 국내에서 주조됐다는 사실을 밝혔는데, 이처럼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일부 학자의 주장을 뒤집은 것은 처음이다. 

◆ "국내 제작 추정되는 증거 많지만 의문점도 다수"

도정만 박사팀은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올해 4월 사이 용문사를 수차례 방문, 휴대용 에너지 분산형 분광기를 이용해 비파괴적인 방법으로 범종의 내외부 화학조성을 분석하고, 종신과 천판 사이의 돌출부 및 용두에서 각각 시료를 채취해 미세조직을 검사했다.

그는 "X-선 분과분석기를 이용해 구리, 주석, 납의 함량을 분석한 결과 성덕대왕신종과 청주박물관종 등 신라시대 종과 유사한 비율을 나타냈다"면서 "일본의 나라시대와 카마쿠라시대, 에도시대와는 화학조성이 상당한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그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납동위원소비는 804년 2개의 고종을 녹여 주조한 선림원종과 용문산 상원사종이 일치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록 성덕대왕신종과 선림원종, 용문산 상원사 범종에 사용된 납의 동위원소비가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기존 청동제품의 납동위원소비보다 낮은 쪽에 위치하지만 이들 범종 주조에 사용된 납은 북한과 중국 북부, 중국 남부, 일본 등의 납광산에서 출토된 납동위원소비와는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이 도 박사의 주장이다.

그는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성덕대왕신종과 선림원종, 용문산 상원사 범종에 사용된 납은 우리나라에서 채취한 원료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상원사 범종. ⓒ2012 HelloDD.com
이어 그는 "용문산 상원사 범종의 주조방법은 통일신라시대 불상 및 범종 제작에 널리 사용됐던 밀랍(蜜蠟) 주조공법으로 제작됐다"며 "용문산 범종 표면의 비천상의 선녀가 당나라 시대의 4현 비파를 연주하고 있는 것도 제작 연대를 신라시대로 추정하는 근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도 박사는 연구 과정에서 한 가지 의문점을 발견했다. 범종의 내부가 근세의 재료로 훼손된 점이다. 그는 "내부 정밀검사결과 천판 중심부가 다른 부위의 색깔과 달리 암회색으로 보였다"며 "화학조성 분석결과 암회색 흔적이 남아 있는 천판 중심부의 납 함량이 천판의 다른 부위보다 납 함량이 9배 높았다. 종의 안정성과 구조상 전혀 문제되지 않는 곳에 이 같은 덧칠이 있다는 것은 범종 주조 이후 누군가에 의해 근세 재료로 훼손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통일신라 초기의 범종의 경우 흔히 종신내부나 천판에 명문을 시문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같은 훼손은 그 흔적을 지우려는 행동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도 박사는 "이런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볼 때 상원사 범종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역사학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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