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열의 한의학 이야기]

'당신 삶의 개인적 목표는 무엇인가.' 얼마 전 예전에 몸담았던 건설기술연구원의 소식지 관계자와 인터뷰 할 때 받은 질문이다. 대개 연구자로서의 목표만 묻고 끝나는 게 보통 인터뷰라 조금 망설이다가 "청랑한 삶"이라고 답했다.

'청랑'이란 맑고(淸) 밝다(朗)는 글자의 조합으로 '마음이 맑고 지혜가 밝다'는 뜻이다. 사상의학의 창시자인 이제마가 사람의 건강 수준을 네 단계, 질병 수준을 네 단계로 각각 구분하여 건강관리를 할 수 있도록 개념을 제시해 놓았음은 이미 이 지면에서 말씀드린 바 있다(대덕넷 2011년 12월 20일자 칼럼 참고).

여기서 강녕(康寧) 윗 단계로 몸이 보통 사람 이상으로 날래고 가벼운 '쾌경(快輕)'과, 정신적·육체적으로 완전한 건강상태인 '신선(神仙)'의 사이 단계가 '청랑'이다. 따라서 청랑은 육체가 단단할 뿐 아니라 정신도 맑고 밝은 상태로 나이가 들어도 사리를 분별하는 지혜가 출중한 분들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마는 64살에 청랑의 상태를 유지하면 수명이 116세에 이른다고 하였다. 하지만 단순히 오래 사는 삶을 바라는 것은 물론 아니다. 나이가 들수록 속이 잘 여물어가고 나날이 원숙해져가서 젊은 사람들이 더 좋아할만한 인격을 갖추고 싶은 것이다.

보통 나이가 들면 고집 세고, 잘 삐치고, 말이 많아지곤 하는 사람이 더 많아지지 않는가? 필자는 어려서부터 그렇게 변해가는 어른들을 보면서 꼭 이것을 극복하고 싶었다. 이러한 청랑한 삶을 위해 이제마는 '동의수세보원'이라는 사상의학 텍스트 맨 앞에 '성명의 원리’를 밝혀 놓았다. 성(性)이란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갖고 있는 성품', 명(命)이란 '자신만의 개성과 입지 속에서 행해야 할 바른 길'을 뜻한다.

우리에겐 세상 사람들이 서로 돕고 사는 바람직한 모습을 보면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고, 사람들이 서로 해치는 것을 보면 슬퍼하고 노여워하는 마음이 공통적으로 있지 않은가? 이 마음이야말로 세상을 살리는 마음이고 근본적 행복에 닿아있는 근본 마음, 즉 '성품'이다.

필자는 소음인으로서 내성적이고 소심하며 세심한 기질을 타고나서 비위의 소화기능이 약하고 몸이 차가운 편이다. 따라서 일할 때는 세심한 기획력을 잘 활용하여 내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자기 수양으로는 스스로 마음을 넓혀 대범하게 쓰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또 몸에 있어서는 인삼, 닭고기와 같이 따뜻한 성질을 가진, 소화기능을 튼튼히 하는 약과 음식을 즐겨 섭취해야 건강해진다. 이처럼 자신만이 갖고 있는 특성에 따른 역할과 할 일, 이것이 '명'이다. 하늘이 내게 '너는 이렇게 살아라' 하고 준 명령인 것이다. 자신의 명을 잘 따르고 남의 명을 존중해줄 때 점점 청랑에 가까워질 것이다.

모든 사람이 함께 '성'을 갖추고 있음을 알면 사람에 대한 믿음이 생기고 세상을 보는 시각이 긍정적으로 된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음을 잘 알면 서로 다른 입장에 대해 화나지 않고, 막힌 문제를 풀어갈 지혜가 생긴다. 예를 들어 한 사건을 대할 때 소양인은 관계를 보고, 태음인은 조직을 보며, 소음인은 개성을 보고, 태양인은 대세의 흐름을 본다.

그렇게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입장이 다르고 해결책이 다를 수 있다. 이러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면 부딪힘이 생기고, 여기에 각자의 이해관계가 더해지면 드디어 파당이 생겨난다. 정책의 차이에서 출발한 정당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려는 수구적 집단으로 바뀌는 전환점이 이곳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사적 이해득실로부터 벗어나서 함께 공유한 선의의 본성으로 돌아간다면, 소음인인 필자의 한계를 벗어나 관계와 조직과 대세의 관점이 함께 보일 것이다.

그 때에 자신이 보는 개성의 관점은 가장 적절한 문제의 해법을 이끌어내는 창이 될 수도 있다. 본성을 통해 서로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각자의 명을 다하는 사회, 이것이 바로 건강한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지금 우리나라가 경제적 건강은 보통 수준 이상 도달해 있다고 할 수 있으나,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이혼율을 볼 때 사회적 건강은 그리 높은 수준이 아님이 분명하다.

이제는 무조건 성장 우선보다는 경제적, 사회적으로 모두 건강한 '청랑한 나라'를 가꾸어야 할 때가 아닌가? 그러기 위해 맑은(淸) 마음으로 사심은 배제하되, 개인의 특성은 존중하는 밝은(朗) 지혜로 가득찬 집단지성을 기르자. 타고르가 신비감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던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요즘 너무 바쁘고 시끄러운 나라가 되었다. 이제 되찾아야 할 이 나라의 건강한 이미지는 활력 넘치면서도 안으로 청정함을 갖춘 '청랑한 아침의 나라'가 어떨까?
 

▲김종열 본부장 
김종열 한국한의학연구원 체질의학연구본부장은 공학을 공부하고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연구하던 중 사상의학에 매료돼, 다시 한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8년간 임상을 통해 연구자료를 축적한 후,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이제마프로젝트를 통해 사상의학의 과학적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김 본부장은 한의학의 과거, 현재 및 미래와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정책과 연구과제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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