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실 탐방]'건강과 장수' 비밀 찾아나선 생명연 '노화과학센터'
권기선 센터장 "근육노화 연구 주력…고령화 사회 건강하게 늙어야"

마우스, 제브라피시, 초파리, 예쁜꼬마선충까지 노화의 원리 규명에 동원된 동물들도 자신의 임무를 아는 듯 낯선 방문객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쁘게 움직인다. 젊은 연구자들은 현미경을 통해 건강한 근육 세포와 노화된 근육세포와의 차이점을 비교하고, 지난 밤 배양기에 넣어 시험한 약물들이 반응이 있었는지 확인한다. 

좁은 실험실을 가득 채운 각종 실험장비와 도구들 사이를 오가는 연구원들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건강한 장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모두가 구슬땀을 흘리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원장 정혁) 노화과학센터 실험실의 풍경이다. 정부출연연 최초로 노화연구를 진행하는 곳인 만큼 사명감도 남다르다. 

인구의 고령화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 오래다. 세계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는 2045년 노동인구의 평균연령이 50세. 2050년이면 15~64세의 경제인구 1명이 65세 이상의 노인 1.5명을 부양해야 한다. 이 속도라면 초고령화 사회 진입도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국가 아젠다로 고령화 대응정책을 실행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정부는 노인보호장구, 의료기, 복지 서비스와 같은 복지정책을 우선적으로 실행, 노화의 원리를 규명하고 치료제를 찾는 순수 연구 쪽으로는 지원이 미미했다. 

노화는 피할 수 없는 자연현상이라는 인식을 깨고 노화과학 원천기술 개발로 건강한 노화를 준비하는 생명연 노화과학센터(센터장 권기선). 노화와 관련된 동물, 생화학, 유전체를 연구하던 연구자들이 노화연구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2008년 장수과학연구센터를 설립한 것이 효시다. 

권기선 센터장을 비롯해 40여명의 연구진은 지난해부터 '노화성 근육감소 제어 원천기술' 개발 사업에 착수, 서울대학교를 비롯해 근육노화 연구와 관련된 국내 전문가들과 연구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공동 연구 협력체계를 구축했다. 

권 센터장은 "노인성 질환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육노화 연구에 대한 집중과 질환 제어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노력이 시급하다"며 "지금까지 밝혀진 장수의 비결은 칼로리 제한과 운동이었지만 이제 잘 먹고도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본관 2~4층에 자리한 '노화과학센터' 연구실에서는 다양한 실험이 진행중이다. ⓒ2012 HelloDD.com

◆ 노화성 근감소증은 치료 가능한 질병

"노화로 인해 근육이 감소하는 '근감소증(Sarcopenia)'은 65세 이상 노인 중 40% 이상이 앓고 있는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이지만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암, 심혈관 질환, 치매 등 다른 질병과 비교해 그 중요성이 간과되어 왔다."

권 센터장은 "근육의 감소는 신체활동의 감소와 더불어 에너지대사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대사질환과 심혈관질환, 우울증과 골다공증 같은 이차질환이 찾아오고 건강수명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경우 골다공증으로 인한 연간 지출이 연 163억 달러이고, 근감소증으로 인한 지출이 185억 달러 임에도 골다공증에 비해 근감소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건강한 사람도 1주일만 깁스를 하고 있으면 근육이 모두 빠진다. 노인의 경우 병원에 일주일 입원하면 병은 치료가 되지만 근력이 떨어져 도리어 거동이 불편해지는 경우도 많다. 어른 1명이 거동을 못하면 가족 1인이 간병해야 하는 만큼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50대가 되면 근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는 정신적·육체적 노동의 강도가 20~30대보다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 인구의 평균연령 50세 도래가 머지않은 만큼 국민들의 근육 건강을 지켜 건강하게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는 "다행히 감소한 근육은 운동을 통해 다시 키울 수 있다. 하지만 노인들은 근력운동 자체가 힘든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약물의 도움으로 근육과 근력을 다시 키워서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근감소증은 거의 모든 노인이 겪는 문제인 만큼 건강한 노년기를 위해 근감소증 치료약물, 운동효과약물, 근조직 재생 기술 등 노인성질환의 개선을 통해 건강하게 늙을 수 있는 원천 기술 개발이 센터의 목표다.
 

▲노화과학센터에서는 마우스, 초파리, 꼬마선충 등 다양한 동물실험이 진행 중이다. ⓒ2012 HelloDD.com

◆ 전세계가 장수의 비밀을 찾아 나섰다

건강한 삶은 인류 공통의 관심인 만큼 세계적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이미 일본에서는 100세 이상 장수인만 대상으로 장수유전자가 무엇이 있는지 찾는 연구를 진행했으며, 한국인 과학자인 서유신 박사는 비교적 순수 혈통을 유지하고 있는 유태인을 대상으로 장수 유전자를 연구한 결과 장수하는 사람에게는 인슐린 신호전달 유전자가 많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2008년 네이처에 발표된 논문 중 정상 근육을 상처내면 재생돼 정상세포가 됐지만, 노화된 근육은 상처의 회복이 안됐다. 이때 DNA의 발현을 제한하는 물질을 넣었더니 근육이 다시 재생돼 노화의 경로 조절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외국의 연구결과 건강한 쥐의 다리에서 채취한 근육줄기세포를 다리가 손상된 다른 쥐에 주입한 결과 며칠 만에 근육이 두 배로 늘어나고 새로 만들어진 근육은 평생 노화가 되지 않았다. 

또 노화는 시간에 의한 것이지만 활성산소, 호르몬, 영양체계 등이 영향을 미쳐 이것들을 조절하면 노화를 지연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규명됐다.

현재까지 FDA 승인을 받은 근육노화 치료제가 전무한 상태. 지금까지 노화지연을 위한 치료는 호르몬과 기능성식품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 칼로리 제한 유사체, 기초 체력 증진 제품, 기억 증진 제품, 재생의학 등 다양한 분야노화를 지연하기 위한 전문의약품 개발이 증가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선점하지 못한 상태로 연구진이 할 일이 많다. 
 

▲한 연구원이 동물실험에 이용되는 제브라 피시를 관리하고 있다. ⓒ2012 HelloDD.com

◆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사는 것이 더 중요"

"흔히 근육의 중요성을 잊고 지내기 쉽지만 근육은 혈당을 가장 많이 흡수하고 혈당을 낮추는 가장 큰 체내 기관이죠. 우리 건강의 파수꾼인 셈입니다." 

노화과학센터의 궁극적인 목표는 근육의 노화기전을 규명해 분자표적을 발굴하고 이를 토대로 근감소증을 치료하고 제어할 수 있는 원천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차세대 시퀀싱 및 오믹스 융합 기술을 이용한 근육 노화 제어용 신규 분자표적 발굴 ▲근육노화 모델 개발(마우스 2종, 초파리 4종) 및 이를 활용한 약물 효능 검증 ▲노화 근육의 재생을 위한 세포 제어 및 분화 유도 기술 개발 ▲노화성 근감소증 제어 선도물질 3종 이상 확보 및 1종 전임상 진입 ▲근육노화 제어 재배치 약물의 임상중개 연구를 수행한다는 목표다.  

구체적으로는 늙은 근육과 젊은 근육을 비교해 유전자 발현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고, 약물 스크리닝을 통해 어떤 물질이 노화에 영향을 주는지 확인하고 있다. 

서울대 재활의학과 교수와도 함께 연구를 한다. 운동이 근육 건강에 좋지만 나이 드신 분 중에는 운동 자체가 어려운 경우도 있기 때문에 운동효과를 줄 수 있는 약물을 처방하고 경과를 지켜보고 있다. 공동연구를 진행 중인 박병천 교수는 한센인이 먹는 항생제의 부작용이 장수라는 것을 발견. 서울대 병원에서 이 약을 먹는 환자와 먹지 않는 환자 사이의 차이가 있는지를 연구하고 있다.

권 센터장은 "노화연구는 줄기세포, 약물개발 등 다양한 분야와 연결돼 있는 만큼 연구내용도 재미있고 보람도 크다"며 "진행 중인 일련의 연구는 10년은 꾸준히 해야 답이 나올 수 있는 분야인 만큼 최소 10년은 한 눈 팔지 않고 연구에 올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지금은 연구과제가 소규모로 진행되고 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연구자와 예산이 투입되면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사회적인 관심과 지원을 강조했다.
 

▲노화의 원리를 설명하는 권 센터장. 권 센터장은 평소 팀원들과 함께하는 축구가 건강의 비결이라고 소개했다. ⓒ2012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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