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 읽기]

올 6월은 지구환경회의의 달이다. 지난주부터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리우 +20 환경회의가 열리고 있으며, 6월 20일부터 22일까지는 지구정상회의(Earth Summit)가 열렸다. 이 정상회의에서는 진통 끝에 '우리가 원하는 미래(The Future We Want)'라는 선언문이 채택되었다. 예외 없이 이번 리우환경회의도 날로 심각해져 가는 지구 환경 위기의 극복과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는 쉽지 않은 목표를 소망하고 있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리우 +20 회의가 개최되었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리우 +20 회의가 개최되었다.
리우환경회의는 1992년에 첫 모임을 가진 이후 2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렸다. 그동안 지구 환경 위기의 극복을 위해 전 세계적 공조를 이끌어내는 노력을 해왔다.

환경에 대한 전 세계적 위기의식을 일깨웠으며, 녹색기술과 녹색경제에 대한 관심을 고조시켰다. 국내에서는 몇 년 전부터 녹색성장이라는 새로운 조어를 만들어 국가 경제발전의 주요 기조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일반 대중들에게도 친숙한 개념인 '녹색(녹색기술, 녹색경제 등)'이 지난 20년 동안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물음은 '지난 20년 간, 녹색기술 덕분에 지구의 환경이 개선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지구의 환경 위기는 20년 전보다 완화되었는가? 이 상태로 지속된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지구 환경 위기는 극복되는가? 다시 말해, 더 이상 지구의 환경 위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가? 이런 물음들에 긍정적으로 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지난 20년 전보다 지구의 환경에 대한 위기감은 더욱 고조된 것 같다. 가까운 시일 내에 지구 환경 위기가 극복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기에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는 전 세계 국가들이 점점 더 강도 높은 처방전에 동참하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혹시 다른 이유가 있는가? 2012년 현재 지구는 그야 말로 위기에 처해 있다. 환경 위기는 말할 것도 없고, 경제위기, 식량위기, 에너지 위기 등 위기라는 말을 붙여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녹색기술은 이런 문제들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 왔는가?

◆녹색경제, 녹색기술의 한계

지속적으로 제기된 물음이지만, 녹색기술은 지구 환경 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대응책이 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녹색기술의 핵심은 우리나라의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온실가스 및 오염물질의 배출을 최소화하는 기술'이다.

교토의정서의 기본 목표처럼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줄이고, 오염물질을 덜 배출하는 기술이 녹색기술이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성장을 지속하는 방식으로 온실가스를 어디까지 줄일 수 있을까? 온실가스만이 지구의 환경 위기의 원인일까?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하는 것만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설령, 몇몇 선진국에서 이런 시도가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그래서 일시적으로 지구 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저장과 축소 방식의 해법으로는 지구 환경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말하자면, 오늘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녹색기술은 임시변통의 기술이다.

교토의정서 참여국 지도. 초록색으로 표시된 국가들이 협약을 비준한 나라들이다.
교토의정서 참여국 지도. 초록색으로 표시된 국가들이 협약을 비준한 나라들이다.
교토의정서 같은 국제적 환경 관련 규제의 직접적 대상이 되는 국가는 일부 선진국이라는 사실이 녹색기술의 임기응변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환경 관련 규제로 성장에 치명적인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있는 나라들, 오히려 여러 면에서 이득을 볼 수도 있는 나라들은 선진 산업국들뿐이다. 녹색기술은 일부 선진국만의 기술이기 때문이다.

녹색기술은 부자 나라에게만 유효한 방법이다. 아프리카의 가난한 어느 나라가 녹색경제를 들고 나설 수 있을까? 녹색기술은 기본적으로 더 많은 투자와 더 많은 비용 지불을 요구한다. 녹색기술을 수용하기 위해 기업은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며, 소비자는 녹색제품을 구입하기 위해 더 많은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이런 방식은 세계 경제가 팽창하고 고용이 활기를 띠는 경제적 호황기에는 효력을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고 실업이 증가하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전혀 위력을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녹색기술은 특정한 조건 아래서만 유효한 기술이라는 것이다. 사실, 녹색기술에 대한 투자로 기업이 손해를 볼 것은 없다.

기업 쪽에서 보면, 기존의 제품이 다소 새로운 제품으로 바뀌고, 지금까지의 공정이 새로운 공정으로 대체된 것뿐이다. 이런 변화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비용은 결과적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이 모든 것이 가격 상승요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녹색제품은 가격이 비싸다. 소비자는 녹색 제품이기 때문에 비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체계적인 사고의 결여?

오늘의 녹색기술이 임시변통인 이유는 녹색기술을 주장하고 실현한다는 사람들의 체계적 사고의 결여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표적인 녹색기술들 가운데는, 그 기술이 제기되게 만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되었을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더욱 심각한 다른 문제들을 야기하는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리가 친환경이라고 부르는 녹색기술로 친환경 연료, 친환경 소재 기술들이 있다. 예를 들면, 환경오염의 주범 가운데 하나인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해 청정연료로서 바이오 연료가 등장하였다. 그런데 바이오 디젤이나 바이오 에탄올 같은 바이오 연료는 농작물과 곡물 가격을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로 인해 해당 농작물이나 곡물을 주요 식량자원으로 활용하는 수 백 만의 가난한 사람들이 식량 위기 상황으로 내몰리게 되었다.

더욱이 해당 곡물의 생산량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제고하고 표준화시키기 위해 유전적 제어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게 만드는 계기를 마련해주게 되었다. 또 다른 예로, 친환경 제품으로 생분해 한 비누가 제안되었고, 이를 위해 많은 양의 팜유를 생산해야 했다. 기존의 합성 비누를 대체하는 친환경, 생분해성 비누의 재료인 팜유를 생산하기 위해 광대한 열대 우림이 파괴되었다. 우림을 팜유농장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빈곤국들 가운데는 쓰레기를 주워 파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빈곤국들 가운데는 쓰레기를 주워 파는 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녹색기술은 여전히 개발 중심적 사고에 바탕하고 있고, 선진국 중심의 사고를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녹색기술이 빈곤 문제나 국제적 분배 문제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라고 본다. 녹색기술의 최대 수혜자는 결국 일부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들이라는 세간의 비아냥에 대해 한번쯤은 귀를 기울여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녹색기술은 환경 위기에만 답하려고 한다. 환경 문제가 다른 문제들과 독립해서 존재하는지는 의심스럽다. 환경 문제가 산업화의 부산물이라면 환경 문제는 결국 경제 문제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오늘날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환경 위기만이 아니다.

에너지. 식량, 실업, 빈곤 등 어쩌면 환경 위기보다 더 심각한 위기들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녹색기술의 고립적 사고는 환경 문제에 답하면서 오히려 에너지 문제나 식량 문제, 고용 문제 등을 야기하는 경향까지 있다. 환경 위기는 '환경의 위기'가 아니고 '인간의 위기'이다. 환경 위기가 우리에게 심각하게 의식되는 이유이다.

단지 환경만의 위기라면, 이토록 심각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컨대, 크낙새가 멸종되더라도 우리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다면 그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물론 크낙새에게는 안 된 일이고, 이제 크낙새를 실물로 볼 수 없어 안타깝기는 하지만, 국제회의까지 하며 부산을 떨 일은 아니다. 하지만 크낙새의 멸종이 인간의 생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면 그때는 문제가 달라진다. 인간의 위기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 보면, 비단 환경 위기만이 문제가 아니다.

인류에게 현재 고통을 주는 문제들, 또 미래에도 고통이 될 문제들이 모두 중요하다. 식량 위기, 에너지 위기, 기아와 빈곤, 고용 위기 등에 대해서도 환경 위기에 대한 것과 더불어 전 세계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이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환경 문제가 이런 문제들과 동떨어져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새로운 대안 모색과 청색기술

녹색기술의 대안적 기술은 최소한 몇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환경 문제에 대해 좀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 또한 환경 문제에만 집착하지 않고 체계적인 사고를 통해 인류가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을 고려한 해결책이어야 한다.

그 다음 선진국이 아닌 인간을 중심에 놓고 사고한 결과물이어야 한다. 최근 제리재단(ZERI foundation)의 설립자인 군터 파울리(Guntet Pauli)가 '블루 이코노미(The Blue Economy)'라는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청색경제, 지식융합연구소 이인식 소장이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에서 내세운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은 녹색경제와 녹색기술을 대체할 새로운 대안으로서 검토해볼 가치가 있다. 파울리는 '블루 이코노미'에서 자연의 순환생산 구조를 모방한 100가지 혁신기술을 언급하며, '끊임없이 영양과 에너지를 생산하고 아무것도 낭비하지 않으며, 모든 행위자들의 능력을 활용하고 모든 이들의 기본적 필요에 부응하는 생태계의 능력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기술들'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파울리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 모든 사람의 기본적 필요에 응답하는 능력'이라고 지속가능성을 정의하고, 이런 지속가능성을 달성하는 것을 청색경제의 목표로 삼고 있다. 그가 말하는 청색경제는 단순히 환경 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이 아니라 식량 위기와 실업 문제, 빈곤 문제에도 동시에 대응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며, 100가지 혁신 기술 혹은 그와 같은 방식의 기술들로 이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녹색기술은 오염을 줄이는 기술이었다.

흰개미집의 공기순환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된  이스트게이트센터 건물
흰개미집의 공기순환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건축된  이스트게이트센터 건물
거꾸로 말하면, 끊임없이 오염물질을 산출하는 기술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혁신 기술들은 오염이 없는 기술이다. 원재료로부터 제품까지의 단선적 구조로 사태를 이해하지 않고 모든 것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구조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한 단계의 부산물은 다음 단계의 재료가 되고, 그 단계의 부산물은 또 그 다음 단계의 재료가 된다. 이런 방식이라면 어떤 자원도 버려지지 않는다.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우리가 가진 것들 가운데 극히 일부만을 가치 있는 것으로 취급하고 나머지는 모두 쓰레기로 취급하는 일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 방식이 가능하다면 그런 방식을 채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지식융합연구소 이인식 소장은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라는 책에서 파울리가 제시한 100가지 기술을 비롯해 자연을 모방하고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기술들을 자연중심기술 내지 청색기술이라고 부르며, '파란 행성 지구의 환경 위기를 해결하는 참신한 접근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이 소장은 청색기술이 녹색기술의 한계를 보완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 이유는 녹색기술이 '환경 오염이 발생한 뒤 사후 처리적 대응의 측면이 강한 반면에 자연중심 기술[청색기술]은 환경오염 물질의 발생을 사전에 원천적으로 억제하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이 소장이 제안하는 청색기술 가운데는 자연을 모방한 건축기술이 있다. 얼룩말의 줄무늬에서 영감을 얻어, 스웨덴의 건축가 안데르스 나이퀴스트(Anders Nyquist)가 지은 건축물은 표면 색깔만으로 단열효과를 낸다. 흰개미집에서 영감을 얻어 짐바브웨의 수도 하라레에 건축된 쇼핑센터 건물인 이스트게이트센터는 냉난방 장치 없이도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한다.

자연은 인간이 고안한 어떤 시스템보다 안정적이고 효율적이다. 만일 우리가 자연을 제대로 이해하고 자연에서 배울 수만 있다면 더 없이 훌륭한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청색기술이 지향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아직 청색경제나 청색기술에 대해서 국내에서는 별 논의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청색경제나 청색기술은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는 점을 이해한다면, 관심을 가지고 깊이 있는 논의를 해볼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참고 문헌 이인식,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 김영사, 2012. 군터 파울리(이은주, 최무길 옮김), '블루 이코노미', 가교출판, 2010. 돈아이디(김성동 옮김), '기술철학', 철학과현실사, 1998. 장 이브 고피(황수영 옮김), '기술철학', 한길사, 2003.
 

▲이상헌 교수 
이상헌 교수는 서양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의전담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연구분야는 신생과학기술에 대한 윤리적 논의,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기술의 대융합(공저)' '대학생을 위한 과학글쓰기(공저)' 등이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읽기'를 타이틀로 신생과학기술들을 윤리적 관점에서 되새겨 보며 인간의 행복 증진을 위해 최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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