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최종인 한밭대 경영회계학과 교수(대덕벤처협회 정책연구소장)

기술과 경영의 종합이야말로 새로운 가치창출의 영역이라고 생각한 나는 오늘 절망하였다. 과학자로서 인류의 기근을 해결할 무병의 인공씨감자를 개발하고, 이를 사업화하기 위해 연구소기업을 민간기업과 함께 설립하였으며, 조직의 최고경영자로서 연구와 경영,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한 연구원장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어서이다.

새벽 5시에 출근하여 연구의 끈을 놓지 않고, 다시 9시부터 조직의 경영자로서 일을 한 분이었다니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연구자의 경력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연구자로서 평생 한길을 걷는 대다수의 사람들, 또 하나는 연구를 바탕으로 행정가의 길로 들어서는 연구자들이다. 하지만 많은 연구자들이 행정을 맡아 일을 한 후, 세월이 흘러 다시 연구현장으로 돌아와 연구를 수행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대학에서 보직을 오래한 교수들이 연구실에 돌아오면 막막한 적막감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보직을 맡은 교수들 중에는 주말과 새벽 시간을 이용해 자신의 연구주제를 놓고 끊임없이 연구하는 교수들이 눈에 띈다.

기술개발과 시장에는 ‘죽음의 계곡’이라는 큰 괴리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기술을 사는 것이 아니라 제품을 구입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연구결과를 낳기 위해 밤낮 노력해 그 성과를 보았을 때 연구자는 큰 성취감을 느끼지만, 그것이 곧 사업의 수익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연구자와 사업가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게 궁극적 목적이나, 사업가들은 이를 경쟁우위 원천으로 삼고자 한다. 연구자들이 연구결과를 대중에 자유롭게 발표해 그 사실을 알리고 싶어 하지만, 연구를 지원한 사업가는 그 결과를 본인이 혼자 독점하고 싶어 한다. 차이는 그밖에 더 있다.

한쪽이 정보를 교류하도록 하는데 반해 다른 한 쪽은 정보를 자산으로 삼고자 한다. 과학기술의 새로운 발견을 추구하는 연구자와 판매와 수익을 강조하는 사업가의 차이점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이렇게 다른 생리를 갖는 두 분야를 한 사람이 수행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참으로 큰 무게의 짐이 아닐 수 없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이 손으로 기어를 수없이 바꾸어야만 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연구의 끈을 놓지 않고 관리자로서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대단한 에너지와 집중을 요구한다. 주위에 이런 분들을 보면 심장에 무리가 갈 정도로 심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는 연구기관에게도 마찬가지이다.

생명공학연구원에서 개발한 무병우량 인공씨감자 대량생산기술은 20년이 넘는 오랜 기간 연구되었으며 실용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결과, 이 기술은 인류의 식량과 에너지 문제해결에 도움은 물론 어려움에 처한 우리나라 농업에 활로를 제공함과 동시에 장차 전세계 감자농업의 녹색혁명을 이끌 것으로 평가되어 왔다.

하지만 씨감자 기술이 전문기업의 역량을 통해 사업성과를 내는 것은 또 다른 이의 몫이었다. 연구소의 좋은 기술이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는데 따르는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만든 제도가 ‘연구소기업’이다. 단순 기술이전이 아닌 연구소가 일정 지분을 갖고 민간회사가 기술개발의 완성도를 높이도록 만든 취지이다.

이는 연구소가 기술개발 완성도를 높이는데 기여하지만, 경영은 민간의 전문성에 의존토록 하는 것이다. 연구소가 기술개발에 적극적 역할을 하는데 반해 기업가는 생산 및 마케팅, 전략 등의 경영활동에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이번 생명공학연구원에서 나타난 불행한 사건은 그 한계의 모호함에서 비롯된 점도 있다. 사업 분야에서 져야 할 책임을 연구소에 전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연구와 사업간에는 넘어야 할 산들이, 강들이 많다.

돌파적 연구를 요구하는 현실에서 정부출연연구소가 최고의 연구개발성과를 내는 것만이 아니라 더욱 복잡하고 역동적인 불확실성 속에서 성공적 사업화를 요구받는 것이 올바른지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 큰 차이를 연결하고 지원할 명확한 프로세스 설계를 통해 ‘기회의 계곡’으로 만들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기술이 사업으로 전개되는 프로세스가 잘 공감되게 설계되어 절망을 넘어 희망을 만들어야 한다.

63빌딩 만한 인공 씨감자 배양 공장을 짓는 꿈을 갖으시고, 의미 있는 제품개발을 통해 인류에 기여하기 위해 30년간 과학자로 연구개발에 전념하신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