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식 연세대 교수, 'RNA 구조설계 통한 유전자발현 조절' 기술개발

 
[미래 어느 산부인과]

임신부
: "선생님 우리 아이에게 '공부 잘 하는 유전자', '노래 잘 하는 유전자', '운동신경이뛰어난 유전자'를 넣어주시겠어요?"

의사선생 :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아이의 유전자를 검사해보니 아이가 27살에 암에 걸릴 위험이 있군요. 암에 걸리지 않도록 유전자를 조절할까요?"

임신부 : "네 그렇게 부탁드립니다"

1997년에 제작된 미국 영화 '가타카'는 유전자로 신분이 결정되는 미래 사회를 그린다. 임산부들은 우수한 형질의 유전자로 변형된 아기를 출산하게 되고, 그렇게 태어나지 못한 아이들은 따로 격리되어 살아간다.

그 가운데 열성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주인공이 정체를 숨긴 채 우주비행사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영화에서 묘사하고 있는 먼 미래의 상황과 비슷한 개념의 연구가 최근 실제로 다루어지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 걸음마 단계이지만 바로 바이오분야의 '합성생물학'이다. 합성생물학은 기존 생명체를 재설계를 통해 변형하거나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형질의 생명체를 설계·제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을 말한다.

합성생물학의 개념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2000년부터지만 실은 예전부터 진행되어온 분야이기도 하다. 관련 연구를 하고 있는 신종식 연세대 생명공학과 교수에 따르면 가축의 경우 목적에 맞게 교배를 시키거나 장점을 극대화해 개량하는 일을 계속 해오고 있었다

. 이 외에도 원예나 과일 등 실제 생명체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유전자 변형식품(GMO)을 만들어 생산하는 것은 이미 익숙한 현상으로, 이 모든 것이 합성생물학의 일종이라는 것이다.

◆ 미생물 조작을 통해 '질병 치료'에서 '에너지 생산'까지
 

▲연구에 필요한 유리병과 화학제품들. ⓒ2012 HelloDD.com
바이오매스 연구단의 지원하에 합성생물학을 기반으로 한 '생물회로설계 및 프로그래밍을 통한 고효율 바이오매스 전환균주'를 연구하고 있는 신종식 교수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연세대학교에 위치한 연구실의 문을 열자 각종 장비가 연구실을 빼곡히 차지한 가운데 몇몇 학생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현미경과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등 실험에 집중하고 있다.

좁은 통로를 비집고 안쪽으로 들어가니 신 교수의 자리가 보였다. 합성생물학의 연구성과가 장차 미래에 어떻게 적용될 지 직접 물어봤다.

"공상과학영화에 나옴직한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집에 보관한 음식물에 개미가 가득 모여 있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겠죠? 하지만 개미들도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개미의 유전자회로를 조작하여 행동을 변화시키면 어떨까요.

인간이 먹을 음식물에 손대는 대신 집 먼지를 일정한 장소에 옮겨놓을 수 있도록 조작하는거죠. 그럼 인간은 일을 다 마친 개미에게 음식을 제공하고요. 일종의 공생이 되는겁니다" 신 교수는 합성생물학이 그려낼 미래 모습을 개미에 빗대어 설명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지만 인공수정이나 시험관아기가 상용화됐듯, 먼 미래에는 이러한 일도 가능 할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하지만 그는 "인간의 과도한 욕심으로 인한 합성생물학은 문제가 생긴다"며 생태계를 파괴하는 돌연변이의 탄생 가능성을 간과해서는 안 됨을 강조했다. 이런 문제점이 대두되는 가운데 다행스러운(?)것은 아직 인간의 과학기술수준이 고등생물의 유전자회로를 예측이 가능하도록 직접 조작할 수 있는 단계에까지 미치지는 못했다는 점이다.

신 교수에 따르면 적어도 반세기 이상은 지나야 이러한 일이 실현 가능해 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지금 합성생물학의 수준은 어디까지 왔는가. 신 교수는 "합성생물학 관련 연구들은 대부분 미생물을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2000년부터 본격 진행된 1세대 합성생물학 실험은 미생물에 외래유전자를 삽입하여 독립적으로 작동되는 간단한 유전자회로의 인위적 구현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러한 실험은 과학자들에게 산업과 연결될 수 있는 기술개발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유전자를 조작해 미생물에서 원하는 화합물(예를 들어 바이오연료, 고부가가치 의약품 전구체)이나 단백질을 대량으로 얻어내거나, 진화에 의해 이미 정해진 생물학적 기능을 인간의 목적에 맞게 재설계하는 등의 상업화로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 2세대 합성생물학의 추세이다. 하지만 생명체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알면 알수록 복잡한 유전자간의 연결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휴먼지놈프로젝트(1990년에 시작해 15년 계획으로 30억불을 투자해 인간 유전체의 염기서열의 순서를 알고자 하여 여러 나라가 참여한 초거대 생명과학사업)만 끝나면 유전자에 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 예상 했지만 프로젝트가 끝난 지금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관련 연구에 꾸준한 투자와 시간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일례로 대장균에게 기존에 갖고 있지 않았던 성질을 부여하기 위해 다른 유전자를 삽입해 조작했을 경우, 이론으로는 가능해야하나 기존의 유전자들이 외래 유전자들과 교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그 결과 대장균의 본래 성질마저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것.
 

▲형광현미경을 이용해 형광 단백질을 발현하는 미생물을 관찰할 수 있다. ⓒ2012 HelloDD.com

그런 가운데 신 교수팀은 RNA 합성생물학 연구를 통해 RNA 수준에서 유전자 조합, 유전자의 선택적 발현억제 및 유전자 회로 최적화를 수행할 수 있는 기반기술을 개발했다. 신 교수는 "예를 들어보자. 생체 내에서 특정 대사생물을 만들기 위해서는 다양한 효소들이 일을 한다.

그런데 우리가 그 대사산물의 생산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어느 반응단계가 가장 느린지를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각각의 단계를 임의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쉽지 않다. 우리가 개발한 기술을 응용하여 RNA에서 단백질이 합성되는 단계에서 각각의 유전자발현을 임의로 조절하여 각 반응단계의 효소의 발현양을 조작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하리라 본다.

이 경우 다른 반응단계에는 아무런 영향없이 우리가 관찰하고자 하는 단계만을 손쉽게 제어할 수가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최종목적을 위해 발현이 조절되어야 할 세포 속 유전자의 수는 1개에서 100개, 200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소수의 유전자 발현을 제어하는 기술이 개발된다 하여 연구가 일사천리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발현제어 기술은 병렬적으로 조합이 가능하기에 수 백개의 유전자 발현 최적화 상태를 신속히 탐색할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아직은 기초단계이기는 하지만 신 교수가 진행하는 실험은 향후 질병치료와 에너지생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화석연료들이 고갈돼 가고 있는 가운데 선진국들은 석유를 대신할 수 있는 바이오연료 개발에 각축을 벌이고 있다. 바이오연료는 미생물을 통해 생산해낼 수 있는데, 신 교수팀이 개발 중인 기술을 미생물에 활용한다면 유전자회로를 조작해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 교수는 "조작이 안 된 유전자 회로를 최적화하면 수백, 수천배로 성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면서 "기존의 유전자 네트웍의 교란을 최소화 하면서 설계한 목적에 잘 맞게 유전자 발현을 원활하게 하는 최적의 기반기술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화학의 정량분석을 위한 HPLC에 샘플을 주사하기 위하여 유리병을 준비하고 있다. ⓒ2012 HelloDD.com

▲유전자 번역과정의 효율성을 비교하기 위한 mRNA의 2차구조 분석 중이다. ⓒ2012 HelloDD.com

▲단백질 혼합물로부터 특정 단백질만을 정제하기
위한 FP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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