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성수, 과학정책을 논하다]
우리나라는 2007년 2월에 과학기술부가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을 제정하여 공표한 바 있다. 그 지침이 규정하고 있는 연구부정행위의 범위에는 위조, 변조, 표절과 함께 '부당한 저자 표시'도 포함되어 있으며, '본인 또는 타인의 부정행위 혐의에 대한 조사를 고의로 방해하거나 제보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와 '과학기술계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행위'도 포함되어 있다.
사실상 연구부정행위의 범위에는 국가별, 시기별로 차이가 존재한다. 미국은 위조, 변조, 표절만을 연구부정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독일은 위조, 변조, 표절은 물론 허위정보 기재, 지적재산권 침해, 타인의 연구 방해 등을 연구부정행위에 포함시키고 있다. 미국의 경우에도 처음에는 위조, 변조, 표절과 함께 '과학기술계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행위'를 포함시켰다가 연구윤리가 어느 정도 정착하면서 마지막 조항을 연구부정행위의 범위에서 제외시킨 바 있다.
우리나라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은 기본적으로 유럽식을 따르고 있어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범위가 넓은 편이다. 2007년에 그 지침을 마련할 때 연구자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조사를 실시한 바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부당한 저자 표시'가 가장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었다. 이와 함께 연구윤리에 대한 개념 자체가 생소했던 당시로서는 연구부정행위를 조사하는 절차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였고 이에 따라 제보자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한 쟁점으로 부각되었다. 이런 사정으로 우리나라의 연구부정행위가 비교적 넓은 범위를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11년 6월에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을 개정하였다. 개정된 지침에서 주목할 만한 사항은 제7조에서 '자신의 연구결과 사용'에 대한 항목을 추가했다는 점이다. 즉 연구자는 ▲연구논문 등을 작성할 때 이전에 발표하지 않은 자신의 연구결과를 사용해야 하고 ▲자신의 이전 연구결과와 동일하거나 실질적으로 유사한 저작물을 게재·출간해 본인의 연구결과 또는 성과·업적 등으로 사용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이전 연구결과를 사용하고자 할 경우에는 인용사실을 표시하거나, 처음 게재한 학술지 등의 편집자 또는 발행자의 허락을 받은 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연구부정행위에 포함되지는 않았고 일종의 권고사항으로 채택되었다. 이처럼 정부 차원에서는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이 계속 진화하고 있지만, 실제 연구계 일선에서는 연구윤리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 많은 연구기관과 학회가 정부의 권고에 따라 연구윤리규정을 급하게 제정하긴 했지만, 해당 규정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보완하거나 현실화하는 작업은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연구결과 사용'에 해당하는 중복게재의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안으로 보인다. 연구의 자율성은 연구계의 집단적인 노력과 합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지 공짜로 주어지거나 외부적 규제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논문 투고자는 물론이고 논문 심사자, 학술지 편집인 등 모든 연구자들이 연구윤리에 더욱 민감해져야 하며, 자신이 속한 연구계에 적합한 연구윤리규정을 정비하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러한 노력이 제대로 이루어질 때 연구계는 진정한 전문가집단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며, 연구윤리의 문제가 필요 이상으로 정치화되는 폐단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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