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생명연서 영결식…1000여명 조문객 애도
동료·연구자들 "고인이 남겨놓은 일 우리가 이루겠다"

"원장님이 건강하신 줄 알았습니다. 지난 6월에 쓰러지시고 다시 일어나셔서 씩씩하게 출근하셨을 때 우리는 원장님이 모두 회복되신 줄 알았습니다. 수많은 불면의 밤과 고통스러운 삶의 나날을 보내셨을 때, 우리는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기나긴 밤 고통과 슬픔으로 몰래 우셨을 원장님, 죄송합니다."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영결식장에 퍼지자 참석자들은 고개를 떨궜다. 상당수는 눈물을 훔쳤다. 10일 오전 9시 30분,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지난 6일 연구원 내 자생동 옥상에서 떨어져 숨진 고 정혁 원장의 영결식이 연구원장으로 진행됐다.

한 시간 전 을지대학병원 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친 운구 행렬이 연구원내 영결식장에 들어서자 조문객들은 모두 일어서 마지막으로 '출근'한 고인을 맞이했다. 정 원장의 마지막은 외롭지 않았다. 가족, 친지, 동료, 각계 인사 등 약 1000명의 조문객들이 그의 마지막을 함께 하기 위해 모였다.
 

▲사진 속 故 정 원장의 웃는 모습이 남은 이들을 더 가슴 아프게 한다. ⓒ2012 HelloDD.com

김성욱 선임연구본부장은 조사를 통해 "평소에는 그렇게도 고고하고 대쪽같았던 분이 연구현장을 떠나 동료들과 술 한잔 하게 되면 빛나는 유머 감각으로 젊은이들을 휘어잡았다. 그의 낭만과 신념은 추억으로만 남겨지게 됐다"며 "인생의 최고 정점에서 우리와 가족을 남겨두시고 홀연히 떠나신 원장님과 영원토록 함께할 것"이라고 애통해했다.

고인과 같은 연구실을 사용했던 전재흥 박사는 애도사를 통해 "씨감자를 내놓으시고 자식보듯 하신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린 연구원부터 청소하는 분들까지 항상 배려했던 원장님은 모두의 친구였고, 형님이었고, 오빠였다"며 "스스로에게 너무나 엄정해서 누리시지도 즐기시지도 못하면서 어려운 사람은 왜 그리 챙기셨는지. 많은 친구들을 두셨다.

어떻게 이 많은 동무와 지인들을 놓아두고 말없이 가실 수 있느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어 전 박사는 "원장님이 남겨놓은 큰 짐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이루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며 "생명연이 대한민국 최고 연구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

이승에서의 모든 슬픔 다 내려놓으시고 편안히 가시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전했다. 고인이 생전 가장 많이 아꼈던 후배라는 고정헌 박사는 "당장 내일부터 어떻게 연구를 해야 하고, 살아가야 할지 막막할 정도다"라며 "대학 교수직을 추천받았을 때도 원장님이 내게 심심하다며 가지 말라고 붙잡았다.

연구에 지쳐할 때면 늘 위로를 해주셨고, 과학자로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는데 반대로 그 분의 힘든 점을 보듬어주지 못했다. 하늘나라에서 평안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강대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이 고인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2012 HelloDD.com

조사와 애도사 후에는 가족, 친지, 생명연 직원 순으로 헌화가 시작됐다. 딸들의 부축을 받아 일어난 고인의 미망인은 국화 꽃 한송이를 영전 앞에 놓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모습을 본 조문객들은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다.

취재를 위해 영결식장을 찾았던 기자들 역시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고인의 생전 모습을 담은 추모영상이 상영되자, 유가족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생전 고인이 강조했던 연구자의 정신과 씨감자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던 그의 육성과 모습에 많은 이들이 눈물을 훔쳤다. 보내는 이들은 울었지만 추모영상 속 고인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치 "여러분이 있어 행복했다"고 말하는 듯.
 

영결식이 마무리된 후에는 고인의 손길이 닿은 연구소 내부와 씨감자 실험실, 테니스장, 원장 집무실 등을 돌며 그의 넋을 위로했다. 생명연 직원들은 운구 행렬이 지나가는 곳곳마다 서서 그와 마지막 인사를 했다.

운구 행렬이 장지를 향해 출발할 때 쯤에는 모든 직원들이 정문 쪽을 향해 서서 고개 숙여 인사했다. 고인의 '마지막 출근'은 이렇게 2시간만에 마무리됐다. 장지는 충청남도 연기군 남면 고정리 425번지에 위치한 은하수공원으로, 화장을 마친 뒤 납골당에 안치됐다.

그는 아무도 몰랐던, 자신만 알아야 했던 고통과 슬픔을 내려놓고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편안히 영면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양성광 교육과학기술부 연구개발정책실장과 김건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 허태정 유성구청장을 비롯해 정연호 한국원자력연구원장, 김흥남 ETRI 원장, 강대임 한국표준과학연구원장, 최승훈 한국한의학연구원장, 박준택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박영서 KISTI 원장, 박필호 한국천문연구원장, 최태인 한국기계연구원장, 강정극 한국해양과학기술원장, 이은우 UST 총장, 권면 국가핵융합연구소장 등 인사들이 참석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끝없는 열정과 존경받는 인품으로 평생 연구자의 외길을 걸었던 고인과의 작별을 하늘도 슬퍼했을까? 발인과 영결식, 화장이 진행되는 동안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기세로 어두운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그리고 늦은 오후, 끝내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마지막이 된 고인의 퇴근길을 함께한 생명연 직원들. ⓒ2012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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