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맥·바이오니아·한빛레이저·리즈바이오텍 등
"마케팅 없으면 매출 '0'…인재발굴도 주력해야"

"돈보다는 미래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아이템을 선정했다. 창업 초기 고객과 소요 자금을 확보하지 않고 시작하면 고생이 심하다. 고객 확보를 즉 시장확보부터 하고 시작해라"(박한오 바이오니아 대표) "기술이 제품화 되기까지는 5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고객의 니즈를 꿰뚫고 개발 방향을 정확히 해야한다."(이중환 케이맥 대표) "기술이 있어도 시장이 없으니 매출이 없었다. 3년 동안 5억원의 창업자금이 2억원을 줄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케팅을 위해 전국 세미나, 학회, 설명회 등 안 가본데가 없었다. 1년쯤 지나니 매출이 조금씩 일어났다.

"(김정묵 한빛레이저 대표) 창업에 성공한 대덕벤처기업인들의 조언은 한결 같았다. 연구원이었던 이들은 탄탄한 기술력을 가졌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벤처 생태계에서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시장확보'와 '마케팅 능력'이 무엇보다 우선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심상치 않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역시 전에 없는 장기적 불황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창업은 더욱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창업 초기의 벤처기업도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여기에 올해부터 베이비붐세대의 은퇴가 본격 시작된다. 청년실업에 이어 베이비붐(1955년에서 1964년사이에 태어난 900만명정도) 세대들의 은퇴 후 삶도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각종 지원정책을 내 놓으며 청년창업과 연구원 창업 붐 조성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창업 후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창업 후 안착에 이어 성공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한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그 과정을 겪은 창업 성공기업인들로부터 직접 들어봤다.

◆물성 분석 사명감으로 창업한 이중환 대표, 인재발굴과 응용시장 발굴에 주력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물성분석 실험실 세팅부터 관리를 담당하는 책임연구원이었던 이중환 대표. 분석분야는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는만큼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정부의 지원이 줄어들면서 연구원에서는 아웃소싱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러나 그 분야 마땅한 전문가를 찾을 수가 없었다. 이 대표는 "분석분야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책임을 맡고 있었기에 사명감도 컸기에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면서 창업 동기를 밝혔다. 그는 6개월간의 준비만으로 창업을 했다.

당시 대전시의 경영안정자금과 기술보증기금의 지원을 받았다. 창업투자회사들로부터는 거의 자금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기준이 안된다는 이유에서다. 이 대표는 '인재양성'과 '응용시장 발굴'을 케이맥의 성공 키워드로 꼽았다.

그는 "단순한 분석 서비스만으로는 기업의 역량을 키울 수 없다는 판단에서 꾸준히 응용시장을 발굴하고 이를 뒷받침 할 수 있는 인재발굴과 양성에도 주력했다"고 강조했다. 기업에게도 성장통이 있다. 일종의 위기상황이다. 케이맥에게 위기는 피할 수 없는 과정이었다.

이 대표는 "고객이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기술력을 충족시키고 시장에서 기술을 인정 받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는 그에 맞는 인재가 필요했다"면서 "신생기업으로 돈벌이가 제대로 되지 않아 인력확보가 가장 어려웠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이고 적극적으로 인재를 발굴했다.

그런 것들이 채용으로 이어졌다"고 인재 확보의 비결을 공개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비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있다. 그의 비전에 공감하는 수도권 인재들이 입사지원을 하고 있다. 이 대표에게 창업을 앞둔 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에 대해 질문했다.

이에 대해 그는 "기술력이 있어도 기술만으로 사업을 영위하기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면서 "성공과 실패에 연연하지 말고 기업이 가야할 큰 그림을 바탕에 두고 시장을 정확하게 보고 기업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바이오 분야 1호 창업 박한오 대표, 시장확보 먼저 그 다음 연구개발

박한오 바이오니아 대표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중 유전자기술의 중요성을 간파, 1992년 바이오분야 1호 기업으로 창업을 했다. 기술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창업스쿨에서 재무, 영업, 마케팅 등 기본적인 교육을 받는 등 1년여의 준비과정을 거쳤다.

나름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으나 창업 현장은 녹록지 않았다. 그가 창업할 당시는 투자를 유치할 벤처캐피탈이 입주할 인큐베이터도 없어 사무실 마련부터 자금 압박이 심했다. 다행히 생명연의 고가 장비를 사용할 수 있었던 점이 무엇보다 큰 도움이 됐다.

박 대표가 창업 후 가장 역점은 둔 분야는 초기에는 시장확보를 통해 흑자경영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흑자전환 후에는 연구개발분야에 집중투자했다. 그는 "창업을 위해 1년정도 준비하는 동안 고객도 어느정도 확보했다. 그래서 창업 후 1년만에 흑자경영이 가능했다"면서 "그러나 그 당시 국내 유전자 기술분야는 대부분 외국에 의존하던 시기였다.

기술개발을 위해 어느때는 매출의 80%가 연구개발비로 들어가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IT 기술은 짧은 시간에 승부가 나지만 바이오분야는 오랜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지속적인 투자를 했다"면서 "그 결과 DNA 합성기, 유전자를 증폭하는 PCR기기, 유전자를 추출하는 전자동 핵산추출장비들을 개발 할 수 있었다"며 R&D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대표가 그 다음 중요시 한것은 인간 중심이다. 그리고 힘들때마다 그는 미래 사회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든다는 사명감과 기업가 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했다.

◆김정묵 대표, 끈기로 맺은 레이저 연구 마케팅 없으면 매출도 '0'

김정묵 한빛레이저 대표는 학부 4학년 시절, 이산화탄소 레이저 전원장치 개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레이저와 인연이 시작됐다. 이후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연구원이 되어 레이저 연구를 본격적으로 하게됐고 13년간 이 분야에 집중했다.

김 대표의 창업은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그는 "한 분야를 오랜동안 하다보니 꽤나 활용분야가 많아보였다. 그래서 창업을 했는데 결과는 참패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비교적 많은 5억원의 준비금을 마련해 창업을 했다. 창업하던 해인 1997년과 그 이듬해까지 2년동안은 거의 매출이 없었다.

자금 압박이 없었는 그는 지인들을 통해 들어 오는 수주만 간간히 받았다. 통장에 들어 있는 돈을 하나 둘 빼 먹었다. 창업 자금이 5억원에서 금방 2억원까지 줄었다. 김 대표는 "아차, 정신이 들었다. 이러다 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레이저에 대해 알리고 영업을 위해 전국을 뛰어 다녔다.

그의 이름과 회사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매출이 일어났다. 시장을 중요성을 절감했다"며 마케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회사의 성장 모멘텀이 된것은 국내 대기업인 LG에서 기술력을 인정 한빛레이저의 장비를 구입하면서다.

당시 LG에서는 반신반의 하며 기술을 인정하지 못했지만 한빛레이저 제품이 보기좋게 성공하면서 삼성 등 대기업의 매출로 이어졌다. 회사가 어느정도 궤도에 올라 섰을 때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직원들의 처우 개선이다. 지속적인 연봉 인사은 물론 직원학비 지원, 자녀학비, 의료비 지원 등 복지혜택을 늘렸다.

그는 창업을 앞둔 이들에게 "직장도 사회도 결국은 같이 잘 사는 것이다. 더불어 착하게 사는 그런 사람, 그런 기업을 모토로 한다면 성공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인생 이모작 도전, 결실 맺은 이영익 대표…'시장조사부터 해야"

정년퇴임 후 할 일을 준비하기 위해 남들보다 늦게 창업에 도전한 이영익 리즈바이오텍 대표. 그 역시 기술만 믿고 창업을 했다. 특허까지 받은 기술로 기관의 지원금과 엔젤투자를 받아 어렵지 않게 시작했다. 경영이나 회계에 대해서는 제대로 모른채 기업 운영에 뛰어들었다. CFO교육에 참여했으나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그러나 바이오분야 특허는 사업화로 이어지기까지 어느 분야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리즈바이오텍도 5년이 되도록 매출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대부분의 바이오벤처들이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고 폐업을 한다.) 이 대표 역시 초기 자금이 바닥나고 자금난에 쪼달렸다.

매출이 없다보니 한해 경영실적을 볼 수 있는 대차대조표는 매번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정부 지원금도 과제도 신청 할수도 없었다. 사업제안을 해도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매번 탈락하거나 하위를 차지했다. 결국 개인빚으로 근근히 이어갔다.

그가 개발한 기술이 빛을 본 것은 유통전문가가 대기업과 연결하면서부터다. "식약청에서 인정한 임상을 마치고 뉴스에 보도됐는데 이를 보고 중간 판매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대기업과 연결이 됐고 지금은 '쿠퍼스'라는 제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신기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나 어떤 네트워크로 판매가 가능한가에 따라 기술도 제품도 수준이 달라진다는 걸 경험했다." 창업 6년이 넘어서야 매출이 일어났고 지금은 자금걱정 없이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현재 새로운 제품의 임상을 앞두고 있다. 그는 "사업 시작전 소비처가 어딘지 대상은 누군지 충분히 조사하고 시작할 필요가 있다. 비즈니스는 종합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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