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연 의료기기 표준시스템 확보 연구 주목
임현균 단장 "의사·환자·국가 모두에 꼭 필요"

"의료기기는 출고 당시의 성능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야 검사결과를 신뢰하고 제대로 된 진단과 치료를 할 수 있죠.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기가 출시되려면 식약청의 관문을 넘기 위해 임상시험, 인허가 등 많은 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일단 출시된 이후엔 국가적 차원의 사후 관리는 거의 전무한 실정입니다."

임현균 한국표준과학연구원(원장 강대임) 의료융합측정연구단장은 "정확한 진단과 정확한 치료는 의료사고 감소로 이어지고, 또한 국가 전체 의료비 부담도 경감될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아직 의료기기의 측정표준(교정체계)이 확립되지 않아 의료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부실한 의료기기에 의한 의료사고는 쉽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그 심각성을 강조했다. 

과거 의료기술은 질병 진단과 치료에 국한해 인식했지만 최근에는 노령화와 의료소송비용의 증가 등 다양한 국가·사회적 요구가 발생함에 따라 '의료기기 품질 고도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부각되고 있다. 

"0~20 kg까지 잴 수 있는 저울을 예로 들어볼게요. 모든 저울은 출고 당시 법적 규정에 따라 만들어 지지만 사용하다 보면 용수철이나 센서 등이 마모돼 성능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때문에 정기적인 검사를 받고 이상이 있으면 교정 후 성적서를 발급받아야 합니다."

임 단장은 "저울과 같이 단순한 기기의 교정은 비교적 쉽지만 의료기기는 수많은 파라미터(매개변수)를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올바른 교정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나 기준을 정하는 것이 물리학적, 공학적으로 복잡하다"며 의료기기의 측정표준 제정과 교정 의무화의 중요성과 더불어 왜 표준과학연구원에서 이러한 연구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한 당위성을 설명했다. 

일례로 고혈압은 한번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하는 질병이지만, 병원에서 사용하는 혈압계는 구입한 후 단 한 번도 정비를 받지 않는다. 자동혈압계의 경우 제작하는 회사마다 사용하는 알고리듬이 달라 기기마다 측정값에 오차가 있을 수 있다. 

미국의 연구결과 고혈압 약을 복용하는 사람 중 고혈압 환자가 아닌데 약을 먹는 경우와 환자임에도 약을 먹지 못하는 군이 각각 5%로 전체의 10%가 약을 잘못 먹음으로써 개인적·사회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었다. 혈압이 고정된 값이 아니고 하루에도 여러번 변화가 심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성능이 더 절실한 편이다. 더욱이 환자와 정상의 경계값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의료기기가 부정확하다면 더욱 불안하게 된다. 

라식수술도 이미 대중화 됐지만 종류와 성능이 다양한 레이저 수술장비에 대한 정보를 국민들은 쉽게 알기 힘들다. 일반인은 물론 의사들도 사용하고 있는 수술장비의 물리적 특성을 상세하게 모르고 장비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독일의 경우 물리학적으로 어떤 정도의 주파수, 속도와 파워를 갖추고 시술을 해야 눈의 조직이 상하지 않는지 기준을 정해준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국가적 의료기기 관리 프로그램 전무한 상황이었다. 의료기기 출고 후 기간 경과에 따른 교정체계가 없었으며, 의료기기 품질 평가관리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가적 의료기기 개발 연구 지원도 미흡한 상태에서 2011년 1월 의료융합측정연구단이 출범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청진기, 혈압계는 물론 MRI,CT  등 의료장비의 성능이 보장돼야
검사결과를 신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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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최초 융합추진사업…국가 의료 신뢰성 향상에 공헌

"세계 각국은 의료기기 신뢰성 향상을 위한 국제규격 제정 참여와 수출지원을 위해 보이지 않는 투자 경쟁이 치열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선진국에 의료기기 기술 종속 심각한 상황인데 측정표준을 준비하지 않으면 갈수록 종속은 심화될 수 있습니다."

임 단장은 선진국 수준의 의료기기 측정표준 소급체계 구축의 시급함을 주장했다. 

영국 표준연구소(NPL)는 혈압계를 비롯해 체온계 교정, 피부 습도 측정계 교정, 초음파 기기 교정, MRI 교정 등의 규정을 마련했다. 

독일 표준연구소(PTB)는 심전도계 표준화, 혈압계 표준, 방사선 표준, MRI 신체 영역별 표준 팬텀 연구, MRI RF 코일의 안전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미국 표준연구소 (NIST)는 한발 더 나아가 1990년 의료기기 안전법(SMDA)을 제정, 미국 식약청, 표준연구원, 국립암센터 등과 함께 의료기기에 대한 표준 측정 융합연구를 2006년 시작 했으며 페이스메이커, 심장제세동기, 신경자극기 등의 표준 시험 프로토콜 및 임계값을 제공해 왔다. 

의료융합측정연구단에서는 현재 각국에서 사용하는 표준기기의 정보를 수집하고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 측정표준과 교정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연구단의 주요 연구 방향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대형 영상 의료기기인 MRI와 CT 분야의 최적 성능을 가진 팬텀(phantom) 국산화와 영상 신뢰성 확보, 둘째 레이저 의료기기의 표준 의료지침 개발과 장비개발, 마지막으로 소형·가정용 의료기기 국산화 연구다. 

임 단장은 "의료기기의 기준값을 연구원 단독으로 정하는 것은 연구를 위한 연구밖에 안되기 때문에 보건산업진흥원, 산업기술시험연구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식약청, 보건복지부 등 우리나라 의료기기 전문가 집단과 함께 문제점을 파악하고 과제를 진행하고 있다”며 “국가 의료기기 선진화 사업은 국내 최초 융합추진사업이다"고 소개했다. 

연구단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의료기기 품질관리를 하는 의료영상품질관리원(영품원)과도 협력하고 있다. 

영품원은 재정건전화특별 조치법 14조에 특수의료장비 설치·운영에 대한 항목에 따라 병원이 보유한 의료기기의 성능이 떨어지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을 막기 위해 설립됐다. 2004년 설립되어 MRI, CT, 유방X선 검사기에 대한 관리를 하고 있지만 측정표준과 측정기술이 아직 체계적이지 않은 부분이 있어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혈압계 분야는 양지상 박사 중심으로 대전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혈압계를 조사해 교정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또 충남대 임상시험센터와 협력해 기초자료를 얻고 국내에서 가장 큰 혈압계 업체 중 하나인 자원메디컬과도 교류하는 등 활발한 움직임을 갖고 있다. 

레이저팀은 정세채 박사 중심으로 눈의 조직을 깎는 레이저 기술을 고도화 및 질료 가이드를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개발된 기술은 폴리머 재료에 강도와 속도 등을 실험실 수준에서 측정 한 뒤 이를 다시 쥐나 돼지 눈에 적용하여 임상적 의미를 확인 하고 있다. 

연구단의 최종목표는 국가 의료 신뢰성 향상에 공헌하는 의료융합 측정 연구단이 되는 것이다. 목표 달성을 위한 선결 조건은 국가의료기기 표준 시스템 확보에 있다. 

임 단장은 "측정표준마련과 교정기술의 현장적용을 위해서는 의료기기 제작·수입업체, 병원, 협회, 학회, 정부기관 등과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며 “학회, 협회, 정부 차원에서 필요로 하는 내용을 연구하고 도우면서 의료 현장에서 측정과 교정 시스템이 확립되어 국민과 의료기관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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