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연 최연석 박사팀 "배달음식으로 점심 해결하며 연구에 몰입"
'급속열분해 반응기' 기술 개발…톱밥·거대억새 등 저비용 재료 사용

모래에 열이 가해지기 시작하자 온도가 조금씩 올라갔다. 3시간정도 지나자 모래의 온도는 400℃를 훌쩍 넘기며 500℃에 가까워졌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뜨거운 모래에 일정량의 톱밥이 투입됐다. 그리고 20여초 후 미리 준비해 놓은 큰 용기에 검은 액체 한 방울이 떨어졌다. 방울방울 내려오던 검은 액체는 어느새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말로만 듣는 '바이오 원유'다. 그야말로 "심봤다"라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

한국기계연구원 환경기계시스템연구실의 최연석 박사팀이 '중력 경사하강식 급속열분해 반응기' 파일럿 장치와 양산 기술 개발에 성공, 바이오 원유 상용화를 성큼 앞당겼다. 무엇보다 톱밥이나 거대억새 등 저비용의 비식용 재료를 사용했다는데 기존 바이오액체연료 제조기술과 차별성이 있고 의미가 크다. 

최 박사팀이 성공한 기술은 수율(바이오 원유 전환율)이 60%가 넘고 일반적인 실험실 규모 반응기보다 20배 이상 규모가 커 상용화 설비에 한층 가깝다. 또 가장 앞선 기술로 평가받고 있는 네델란드 기업의 콘모양의 반응기에 비해 저비용, 고효율로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실험을 주도한 최연석 박사는 "실험을 하면서 반응기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고 수율이 낮아 어려움도 많았다. 온도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자리를 뜰 수도 없어 중국집 음식을 배달시켜 점심을 해결했다"면서 "실험에 실험을 거듭, 반응기도 스케일 업되고 수율도 높아졌다. 지금은 연구원들 모두 고무적"이라고 말하면서 상용화에 대한 높은 기대감과 함께 지난 과정을 풀어냈다. 

◆기존 장비 대신 송풍기 이용…1석 3조의 효과 
 

▲중력 경사하강식 급속열분해 반응기를
점검하는 
최연석 박사
ⓒ2012 HelloDD.com
최연석 박사팀이 개발한 '중력 경사하강식 급속열분해 반응기'는 고열의 모래를 일정 장소로 올려 보내면 준비된 톱밥과 반응을 하게 되는 원리다. 500℃의 모래와 만나는 톱밥은 경사면을 내려오면서 증기, 가스, 촤(숯)로 분리된다. 이중 증기를 급속 냉동시켜 바이오 원유를 생산한다. 촤는 다시 모래 가열연료로 이용된다. 가스는 가열연료로 사용하도록 장치를 개발 중이다. 그야말로 버릴게 하나도 없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모래를 가열하고 뜨거운 모래를 반응기 파일럿 장치의 일정 장소에 올려 보내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지금은 송풍기를 이용하지만 초기에는 벨트 형태의 엘리베이터형 기계식 장치를 사용했다. 이 장치는 모래를 올려 보내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으나 고열을 견디지 못하는 단점이 있었다. 

장비가 제 역할을 못하면서 수율도 낮았다. 처음 연구 당시에는 44%의 수율에 머물렀다. 상용화 기준이 수율 60%인데 어림도 없는 수치였다. 수율 높이기보다 당장 장치문제부터 넘어서야하는 난관이었다. 

"장치의 벨트가 고열에 녹아 붙기도 했고 고장도 잦았습니다. 수율도 문제였지만 장치부터 해결을 해야 했죠. 고민을 거듭한 끝에 엘리베이터 형태의 장비대신 현재 화력유지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 송풍기를 이용해보기로 의견을 모았습니다. 6m정도 높이까지 모래를 실어 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됐지만요."

그들의 걱정은 기우였다. 송풍기는 모래를 거뜬하게 올려 보냈다. 기존 엘리베이터형 시설을 제거하니 장비는 더 심플해졌고 운전비용도 감소했다. 1석3조의 효과를 거둔 그야말로 탁월한 선택이었다. 

◆한번 실험 시작하면 8시간동안 자리 못떠…배달 음식으로 끼니 해결

"이 일은 완전 노동부터 시작됩니다. 톱밥을 구입하면 체로 쳐서 일정한 크기만 고른 후 건조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설비 안에 산소가 들어가서는 안되는 데 초기에는 이런 문제들이 해결이 안 돼 연기를 뒤집어 쓰기 일쑤였고 적정 기준을 맞추지 못해 원유보다 물이 더 많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최 박사는 당시 상황이 생각났는지 조용히 미소를 짓는다. 

이들 연구팀은 발생하는 문제와 모래의 온도를 실시간으로 지켜보기 위해 잠시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점심시간에도 인근 중국 음식점에서 음식을 배달시켜 끼니를 해결하며 실험에 몰두했다. 

때로는 반응기에 산소가 들어가 처음부터 실험을 다시 해야 했고, 온도가 맞지 않아 수율이 떨어지며 원유보다 물이 더 많이 나오는 경우에는 허탈감에 빠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실험과 수정을 반복하며 반응기와 기술을 스케일 업 시켰다. 

그러기를 1년여, 2010년 수율이 55%까지 올라갔고 지난해 중반 드디어 상용화 기준인 수율 60%를 넘어섰다. 2009년 처음 연구를 시작한지 2년 만에 올린 쾌거였다.

최 박사는 "아침 10시에 실험을 시작하면 오후 6시나 돼야 마무리가 된다. 일주일에 3번 정도 실험을 했는데 연구원 누구도 자리를 뜨지 않고 지켰다"면서 "연구원 모두가 즐겁게 참여하고 있다. 그래서 성과도 더 빨리 낼 수 있었다"며 지난 시간을 회상했다.

◆기술보다 아이디어 싸움…시장 선점 가능성 높아

바이오 원유 양산화 연구는 국내외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돼 왔다. 최 박사에 따르면 바이오 원유에 대한 연구는 이미 30년 전부터 시작됐다. 지금까지 양산화가 안 된 것은 최적조건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플랜트 기술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최 박사팀이 개발한 기술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말로 바꿔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번에 최 박사팀이 개발한 반응기는 국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다. 처음부터 상용화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기 때문이다. 생산된 바이오 원유는 일반원유와 동일한 열량기준으로 석탄과 석유의 중간가격(외국자료 기준)정도에서 판매할 수 있다.

최 박사는 "나무가 많은 외국은 톱밥 가격이 저렴해 더 경제성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가격을 좀 더 낮춰야 한다"면서 "경제성을 위해 거대 억새를 이용해 실험을 했는데 같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경제성을 더 낮춰가면서 상용화를 추진할 것"이라고 자신 있는 어조로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바이오 원유 양산 기술 개발 연구)착수는 좀 늦긴 했지만 기술성에서 선점이 가능하다. 경쟁이 되는 기술은 네델란드인데 설비 가격이나 비용면에서 강점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 기술은 현재 국내특허 2건을 등록했고 미국 등 5개국에 국제특허를 출원했다. 바이오원유 세계 시장 규모는 오는 2020년 약 4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최연석 박사는 "상용화가 되려면 지금의 파일럿장치보다 100배는 큰 설비가 필요하다. 성공하면 플랜트를 해외에 수출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도 적합하다"고 말하면서 "반응기가 관건인데 우리는 경쟁력이 있다. 실증을 통해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마케팅 활동도 이뤄져야 한다"며 앞으로 해결해 나갈 과제에 대해 언급했다.
 

▲연구원이 반응기를 통해 추출된 바이오 원유를 용기에 붓고 있다. ⓒ2012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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