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분의 승부 '프레젠테이션'의 과학②]아이디어·기술개발보다 중요한 PT
조맹섭 박사 "단편적 상식 의존해선 해결 안돼…과학적 교육만이 해법"

#1. 찬바람 불던 지난 2월. KAIST 창의학습관의 한 강의실은 일단의 중고등학생이 내뿜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이들은 특허청과 KAIST가 미래의 영재기업인을 육성하기 위해 만든 'IP영재기업인교육원 캠프'의 참가학생들로, 지난 3일간 팀을 꾸려 사업아이템을 개발한 뒤 지도교수와 동료 앞에서 본인들의 아이디어를 평가받고 있었다.

각 팀의 발표는 예비창업자가 3분 이내에 자신의 사업구상을 신속하고 간결하게 설명해 투자자를 설득해야하는 '로켓 피치(Rocket Pitch)' 방식으로 진행됐다. 열심히 리허설을 하며 준비했지만 역시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이 긴장됐는지 어린 학생들은 실수를 연발하고 매번 제한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그때마다 심사를 맡은 이민화 KAIST 교수(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의 따끔한 지적이 이어졌다. "반드시 시간을 지켜야 해!" #2. 며칠 뒤 같은 장소에서는 다시 '스타트업 위크엔드'란 행사가 열렸다. 스타트업 위크앤드는 앱개발에 관심 있는 개발자, 영업자, 기획자, 디자이너 등이 주말 시간을 이용해 모인 뒤 각자의 아이디어를 내고 팀을 꾸려 2박3일간 협업으로 새로운 앱개발을 완성하는 행사다. 금요일 저녁 한자리에 모인 100여 명의 참가자들은 각자 준비해온 아이디어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방식은 100초 이내로 발표를 제한하는 '엘리베이터 피치(Elevator Pitch)'. 실리콘밸리의 벤처기업인들이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 전까지 투자자를 설득해야 했던 데서 유래된 방식이다. 스타트업 위크엔드 참석자들은 짧은 시간 안에 어떻게든 자신을 어필하고 아이디어를 각인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역시 발표시간을 지키는 이는 거의 없었고, 긴장을 해서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거나 아이디어를 제대로 소개하지 못한 아쉬움에 고개를 떨구는 참가자가 적지 않았다.

대회를 주관한 김진형 스타트업 위크엔드 이사장(KAIST 전산학과 교수)은 엘리베이터 피치를 프로그램에 적용하는 것에 대해 "이공계인에게도 아이디어와 기술개발 이전에 자신의 생각을 설명하고 상대를 설득하는 발표력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프레젠테이션의 대가로 불리는 조맹섭 박사(카이로스 PT연구소장·전 ETRI연구위원)는 "현대사회에서 과학기술인의 프레젠테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대덕의 연구소와 벤처기업은 이제 프레젠테이션을 못하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할 만큼 어느 집단보다 발표능력이 중요한 집단"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또 한편으론 그의 오랜 고민거리이자 반드시 해결해야 할 사명이기도 하다. 조 박사는 "1000번 넘게 각종 프레젠테이션에 발표자로 또는 평가자로 참여하며 절감했던 것은 우리 과학기술인과 벤처인들의 프레젠테이션 능력이 여전히 수준미달이라는 것"이라며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소와 벤처기업은 대개 과제나 사업을 따야만 연구개발이 가능하다. 또 계속해서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대외 소통능력을 위해서도 프레젠테이션 스킬이 전에 없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5월 개최된 연구개발특구 아이디어콘테스트. 결선진출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본선무대에 앞서 프레젠테이션 전문가인 조맹섭의 박사의 짧고 굵은 컨설팅을 경험한 것에 대해 "특별한 혜택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2012 HelloDD.com

조 박사는 지난 35년간 연구개발 사업수주와 평가에 참여하며 쌓은 방대한 현장경험과 대학·기업 강의를 통해 프레젠테이션의 이론을 구축해왔다. 또 이같은 이론적 토대에 심리학과 인체공학, 커뮤니케이션학을 비롯해 색채학까지 접목시킨 '프레젠테이션학'의 학문적 기틀을 마련한 선구자적 역할로 주목받아왔다.

그는 "대부분 프레젠테이션에 임하는 이공계인을 보면 기획이나 슬라이드는 정말 최선의 노력을 다해 예술 수준으로 준비한다. 그러나 정작 가장 중요한 메시지 전달은 꽝"이라며 "거의 대부분의 발표자들이 서 있는 위치, 시선처리, 바디랭귀지 같은 아주 기본적인 프레젠테이션 방법조차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공계인은 백이면 백 평가자가 알아듣지 못하는 전문용어를 남발하게 돼 일반인보다 더 전달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는 게 조 박사의 설명이다.

조 박사는 "프레젠테이션이 워낙 중요해지다보니 이런저런 상식은 많이 알고 있지만 체계적인 경험과 학습훈련이 없다보니 연단이 주는 심리적 부담과 긴장감 앞에서 지식을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다중 앞에 서는 프레젠테이션은 한두 사람과 하는 대화와 분명히 다르기 때문에 무엇보다 철저한 교육훈련과 연습이 필요한 과학"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업과 대학의 폭증하는 강연요청으로 분주한 가운데서도 최근 대덕연구단지의 과학기술인만을 위한 차별화된 프레젠테이션 교육과정을 준비하는데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조 박사는 "대덕의 연구원과 기업인들은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정말 열심히 일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인 것을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며 "그들의 수만 시간 노력이 단 15분 내외의 프레젠테이션 실수로 빛을 잃는 현실을 보고만 있기엔 내 스스로 직무유기 같은 느낌이 뜬다"고 표현했다.

"프레젠테이션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연구소와 기업 역시 자체적으로 발표력 향상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비전문가에 의해 교육이 진행되다보니 무의미한 학습이 반복되고 있죠.

" 조 박사는 "너무 멀리 와버린 감이 있지만 더 이상 상황이 고착화되기 전에 해결책을 제시하고 싶다"고 밝힌 조 박사는 "연구소라면 연구과제, 벤처기업은 사업수주와 계약을 판가름하는 마지막 열쇠가 바로 프레젠테이션"이라며 대덕연구단지 전체의 프레젠테이션 업그레이드를 위해 경영학·신문방송학·심리학·색채과학 등 그간 그가 쌓아온 방대한 전문지식과 노하우를 조만간 아낌없이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청중을 설득하는 요소는 잘 만들어진 슬라이드뿐만 아니라 발표자의 위치, 언어사용, 목소리의 고저와 강약, 바디랭귀지와 심리·색채학적 요인까지 실로 다양한 까닭에 프레젠테이션은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훈련이 필요하다.  ⓒ2012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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