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행복전도사 김영식 과기공제회 신임이사장회원 만족・감동 위해 실질적인 협력 확대 계획

"러시아는 연구기관에 과학기술인의 이름이 붙는 경우가 많지요. 가족들에게 특별대우를 해주기도 하고요. 그런 식으로 자부심을 고취시켜주는 겁니다. 일본은 정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제도가 중심인 반면, 미국과 북유럽은 육아와 여가생활 등 다양한 복지혜택이 많습니다.

우리나라에 어울리는 건 뭘까 생각해봤습니다. 과학기술인 추모공원 어떨까요?" 지난 1일 취임한 김영식 신임 과학기술인공제회(이하 공제회) 이사장이 상기된 표정과 힘찬 목소리로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그는 양복 안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수첩을 항상 소지하며 아이디어를 적는 것으로 유명한데, 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한지 3주 만에 이미 수첩의 상당량을 채운 모양이다.

국립중앙과학관장 시절에는 150가지를 적어 모두 다 실현시킨 것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김 이사장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인들은 국가발전에 매우 큰 공을 세웠다"며 "총칼로 나라를 지킨 사람들을 현충원에 모셔 추모하듯 과학기술인들의 공적도 한 곳에 모아 기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벌써부터 머릿속에 추모공원의 밑그림을 그린듯 "일반 비석 대신에 책을 펼치는 듯한 모양에 주요공식과 연구성과를 기재하면 좋겠다"든가, "그곳에 세미나장도 마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등의 구체적인 이야기도 덧붙였다.

그는 "임기 내에 완성하지 못하더라도 추진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003년 설립해 곧 10주년을 맞이하는 공제회는 대한민국 과학기술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기관이다. 연구개발과 산업에 있어 결국 가장 핵심은 인재 확보. 우수한 인재를 과기계로 유입시키기 위한 노력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움직임으로, 최근에는 각국에서 정책적 지원 못지않게 복지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그만큼 공제회는 국내 유일의 과학기술계 복지기관으로서 과기인들의 생활안정과 노후를 책임지는 임무가 막중하다. 이승구 전 과학기술부 차관, 조청원 전 국립중앙관장 등 과기계와 국가발전에 대한 애정으로 유명했던 베테랑 테크노크라트들이 전임 기관장을 맡았다.

그 부분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김영식 이사장이 공제회 리더의 계보를 잇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취임한 지 보름을 갓 넘긴 김 이사장을 만나 향후 계획과 운영방침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 "큰 변화 보다는 한 발짝 개선과 향상 노력할 것"

"변화를 목적으로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국가정책이 모두 다 바뀌면 안 되듯이 과학기술인공제회 운영과 기조를 크게 바꾸려하기 보다는 본래의 목표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도록 지금보다 더 나은 것은 없는지를 생각하려 합니다.

전임 기관장들이 상당히 잘 해주셨기 때문에 잘한 것은 더 잘하게, 부족한 것은 보강하는 방향으로 운영할 계획입니다." 김영식 이사장은 화려한 청사진 대신 본질을 되새기고 내실을 다지는 걸 택했다. 변화와 혁신을 강조하기 보다는 차근히 발전시킨다는 기조다.

그는 과기계 행정가로 30여년 근무한 내공을 바탕으로, 취임 3주 만에 공제회에 대한 업무파악을 상당부분 마친 상태였다. 그에 따르면 고경력과학기술인들을 위한 평생 연구공간인 '사이펌(Scifirm:과학과 로펌의 합성어)'과 종합복지센터이자 커뮤니티 공간인 공제회관 마련을 위한 움직임은 계속될 전망이고, 가입 10년 미만의 회원들에게도 연금혜택을 주는 등의 제도개선도 지속된다.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연구자들도 안심하고 연구할 수 있도록 공제회가 연구실안전펀드 조성에 나선다는 계획도 변함없다. 기존에 올바른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던 것들은 더 빠르게 진행될 수 있도록 움직인다는 방침이다.

또 자산규모 1조원을 넘긴 공제회의 수익모델을 정립하고, 5개년계획을 보완하며, 리스크(risk) 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중요한 부분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실현할 계획이다. 사학연금의 80% 수준인 공제회 연금수혜율을 높이는 것과 여성과기인을 위한 출산·육아 지원도 큰 과제로 생각하는 것들이다.

여기에 홈페이지 개선, 의료서비스 강화, 해외여행 지원 등 과기인들을 위한 차별화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속도감 있게 진행할 예정이다. 프로그램의 양을 늘리기 보다는 ‘과학기술인들이 좋아하거나 원하는 일’을 찾는 방향으로 질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물론 새로운 것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3주밖에 안되었건만 그의 아이디어맨으로서의 천성은 이미 발휘가 되고 있는 듯 했다. 아직 구체적인 실현방안까지 세운 것은 아니지만 오랜 기간 과기계 현장에 있으며 생각해 왔던 것들을 하나 둘 풀어놨다.

"연구자들의 큰 바람 중 하나는 자기가 연구한 것이 실용화로 이어져 결과를 만들어내는 걸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연구성과가 실용화까지 가는 걸 지원해주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또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기관과 협력관계를 구축할 계획입니다.

KOICA(한국국제협력단)와 함께 고경력과학자들이 개도국 기술지원을 하도록 할 수 있고, 과학창의재단과 청소년캠프 활동을 해도 좋지요. 타 기관들과 경쟁하지 않고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외연을 넓힐 생각입니다." 이어 김 이사장은 "현재 공제회는 양적 성장 못지않게 질적 성장도 신경 써야 할 단계"라며 "과학기술인들이 국가로부터 대우 받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도록 가슴 벅찬 감동을 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강조했다.

◆ "과학기술인에게 더 이상 '행운'은 없다…'행복만 있을 뿐"
 

 

▲ 공제회 이사장은 그가 과학기술정책실장으로서 정책과 전략을 세웠던 경력과 과학관장으로서 고객 감동을 추구했던 경험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자리다.  ⓒ2012 HelloDD.com
30여년 전, 김영식 이사장은 대학 졸업과 함께 합격했던 기업 대신에 공직을 택했다. 과학기술처 사무관의 월급은 원래 가려고 했던 기업의 절반 수준이었지만 사주(社主)의 철학에 따라 목적이 바뀌는 기업보다는 일관되게 공공성을 추구하는 공직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공직생활의 대부분은 연구개발정책과 원자력계에서 있었는데, 그는 "가장 힘든 시기에 일했던 것이 복"이라고 표현했다. 밖으로는 미국 등 원자력선진국의 견제가 첩첩산중으로 펼쳐져 있었고, 안으로는 지역사회의 반대가 거셌지만 눈치 보지 않고 국가의 미래만 생각하며 숙원사업을 풀어가는 것이 큰 보람이었기 때문이다.

진지한 표정으로 당시의 경험들을 이야기하던 김 이사장이 중앙과학관이 화제가 되자 얼굴에 웃음꽃을 피웠다. 할 이야기도 많은 듯 했다. "공제회에 오기 전에 과학관장을 했던 것이 정말 운명인 것 같습니다. 과학관장 시절은 제게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는데, 그 때 처음으로 ‘행복’이란 걸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원자력계에 있을 때는 문서의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까지 분석해야 할 만큼 신중을 기해야 하는 작업에 스트레스가 컸죠. 그런데 과학관에서는 어제와 오늘, 미래가 담긴 전시물을 고민하며 ‘어떻게 하면 관람객들에게 감동을 줄까’, ‘상상력을 키워줄 프로그램은 뭘까’를 구상했어요. 과학과 문화도 연결해 생각하게 됐고요.

아직도 아이들이 ‘관장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귀에 맴돕니다. 다시 과학기술 정책가로 돌아가게 되어, 마지막으로 이임사를 하는데 솔직히 떠나고 싶지가 않고 눈물이 핑 돌아서 말을 못 이었죠." 그때부터였다. 항상 ‘과학기술 정책가, 전략가’로 여겼던 자신의 소명을 다르게 생각해본 것은. 자신이 세운 정책이 결국 일자리가 없는 이공계생들에게 꿈을 펼칠 기회를 주고, 과학하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궁극적으로는 과학기술인들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교과부에 있을 때부터 유능한 인재가 과학기술계에 가길 희망하며 과학기술인이 자부심과 긍지를 갖도록 철학을 갖고 정책을 전개해 왔습니다. 과학기술인들이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만드는 본바탕인 공제회에 오게 된 만큼 과기인들에게는 행복을, 국민에게는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3년 후, 만나는 과기인들의 표정이 더 밝고 행복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네잎클로버의 의미는 ‘행운’이지만 그보다 흔한 세잎클로버의 의미는 ‘행복’이라고 하죠. 공제회가 과기인들을 위한 세잎클로버가 되겠습니다.

" 인터뷰 말미에 김영식 이사장이 조용히 덧붙였다. 자신은 나중에 묘비에 쓸 말을 직접 정해서 후배들에게 일러주고 갈 계획인데, 지금까지는 '과학기술 정책을 세운 전략가'라고 적고 싶었지만 이제는 '과학기술인들을 행복하게 만든 사람'이라고 적고 싶다고. 그의 꿈과 과기계의 꿈이 일치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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