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에게 과학기술은 진리파악…기업인에게는 수단"
"자존심 버리고 돈 벌겠다는 의지· 마케팅 능력 키워라"

"과학기술은 과학자에게는 기술개발과 진리파악이지만 기업인에게는 이익창출을 위한 수단이다. 서로 관점이 다르다. 기업인이라면 돈을 벌겠다는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창업을 했어야 했는데 그 목표가 없었다. 연구원의 자세로 창업을 했기에 결국 폐업을 하게 됐다. 창업을 하려면 목표를 분명히 하고 시작해야한다."(창업 1년 6개월만에 폐업, 연구원 복직)

"3년정도의 준비과정 후 창업을 했다. 그러나 막상 지원이 필요한 시기에 매출 실적 등 재무상태를 요구하는 까다로운 정부지원제도는 전혀 도움이 안됐다. 시장이 어느 정도 확보된 후, 실패 리스크 부담이 적은 젊은 시절에 창업한다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을 것 같다"(창업 후 1년 7개월만에 폐업)

"기술은 우수했다. 그러나 경영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옛 직장 동료들이 엔젤투자자로 나서겠다고 했으나 부담감에 거절했다. 필요없는 자존심을 세웠던 것 같다. 결국 폐업하고 지금은 태국에서 기술자문을 해주고 있다."(2000년 창업 후 실패, 2008년 태국으로 떠남)

이들 창업 실패 경험자, 모두 처음에는 기술의 우수성을 인정받으며 야심차게 창업을 했다.

그러나 시장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자금압박에 시달리고 우수한 재무제표를 요구하는 정부지원제도에서도 제외됐다. 결국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고 폐업했다. 일부는 연구원으로 복직했다. 복직한 경우는 그나마 다행이다. 회사가 부도나면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가족 구성원이 병을 얻어 심한 고통을 겪다가 아예 이 나라를 떠난 이도 있다.

이들은 실패 요인으로 '마케팅 부족'과 '기업가 정신 부재'를 들었다. 대부분 기술만 믿고 시장개척과 마케팅에 소홀했다가 회사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또 기업인으로서의 역할보다 연구원의 자세로 소극적인 경영을 하면서 매출이 일어나지 못했고 결국 회사의 문을 닫고 말았다.

이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지만 최근 또다른 벤처 붐이라 불릴만큼 창업자들이 늘면서 그들을 위한 조언으로 자신의 실패 경험을 어렵게 털어놨다. 창업을 준비하고 있거나 창업을 한 이들에게 반면교사의 도움을 주고 싶다는 생각에서다.

실제 베이비붐 세대들의 은퇴가 줄을 잇고 정부의 창업 지원 정책이 맞물리면서 통계수치는 매월 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신규창업자가 늘고 있다. 그러나 창업을 했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해서 창업을 앞두고 있거나 창업 초기기업이라면 이들의 경험과 조언을 꼼꼼히 챙겨보는 것도 좋겠다.

◆"기업인은 연구인과 달라야 한다.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창업해야"

E연구원 K 박사. 지금은 신재생 에너지, 하이브리드 자동차 등 다양한 산업군으로 적용이 확대되고 있는 분야이지만 1994년에는 그가 처음으로 국가지원비를 받아 연구를 진행했다.

그 기술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앞선 기술이었다. 같이 참여했던 기업이 제품을 내놓으면서 세계적으로도 기술적 우위를 점하기 시작했다. 각국에서 투자자들이 인정하며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IMF가 오면서 한국정부는 투자방향을 돌렸다.

그의 연구는 예산이 대폭 삭감됐다. 세계 시장에서 막 발돋움하며 기술적으로 선점하는 시기에 주저앉을 위기에 처했다. 이를 보다못한 K박사는 자신의 기술을 가지고 창업을 결심한다. 때마침 기술에 관심있는 기업이 영업을 맡겠다며 협약을 제안해왔다.

K박사는 지속적인 기술개발을, 협약기업은 시장개척을 맡기로 역할분담을 하고 창업을 했다. 당시 연구원 창업제도가 활발했기에 이를 이용한 창업으로 안정적인 출발을 했다. 그러나 여기서 K박사가 놓친 부분이 있다. 제휴를 맺었으나 실질적인 투자금을 받지는 않았다. 나름 꼼꼼히 준비한다고 했으나 창업 경험이 없었던 K박사는 이부분을 챙기지 못했다.

그는 "전략적 제휴는 단순히 제휴일뿐이다. 구속이 없다. 당시 기술에 대한 가치로 일정 금액을 투자받는 등 좀더 철저히 해야 했는데 예치금조차 받지 않았다"고 안타까워 하면서 제도의 허점을 잘 파악할 것을 조언했다.

그는 연구원 창업 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당시 이 창업 제도는 2년간 겸직이 가능한 지원제도로 실험실을 공장으로 쓸수 있고 특허권도 연구소와 협의를 통해 사용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연구소마다 내부 규정이 있어 실험실 장비와 (자신이 출원한)특허권 사용에도 기술료를 내야했고 여러곳에서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더 큰 어려움은 모두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분위기였다. K박사는 "창업 한 후 연구를 하니 연구소가 해야 할 과제를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니 지원보다는 배타적이고 오히려 폐쇄적이 돼 갔다"면서 "연구소 연구과제는 과제대로 진행하고 개인적인 사업은 별개로 진행해야 하는 등 어려움만 커졌다"며 당시 힘들었던 심경을 토로했다.

그러나 이처럼 외적인 실패요인도 있지만 K 박사는 창업자 자신의 내적 요소인 기업가 정신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 자신도 기업가 정신이 없는 상태였으며 연구원으로 일하던 자세로 안일하게 대처했었다고 소회했다.

"과학기술은 과학자에게는 기술개발과 진리파악이지만 기업인에게는 이익창출을 위한 수단이듯 각각 관점이 다르다. 창업자는 돈을 벌겠다는 확실한 목적으로 창업을 했어야 했는데 그 목표가 없었다. 연구원의 자세로 살아왔기에 쉽게 바뀌지 않았다. 돈을 버는게 나쁜 일이 아니다. 사회에 대한 기여도 결국 이익을 창출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K 박사는 "CEO가 기업가 정신이 없으니 직원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어느정도 훈련을 시켜놓으면 대기업에서 인력을 빼가는데 붙잡을 명분이 없었다"면서 "창업초기 기업은 직원들도 창업자와 같은 생각이 아니면 남지 않는다. 직원들도 같은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무장시키려면 대표부터 기업가 정신이 분명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어려움속에서도 기업을 이끌어 가던 그에게 제휴기업의 배신은 설상가상 회복될 수 없는 결정타가 되고 말았다.

그는 "연구생활만 하다보니 너무 순진했다. 제휴기업이 시간을 끌면서 기술적인 부분만 취해갔다. 결국 제휴기업의 배신, 대기업의 횡포에 한계를 느끼고 회사를 접기로 결심했다"면서 "그렇지만 당시 상황에서도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직접 마케팅에 좀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잘못이 있었다"고 시인했다.

창업 1년 반동안 그가 얻은 교훈도 있다. 연구원으로 다시 복직한 그는 기술개발 시 기업이 보다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게 됐단다. 그는 "퇴직금을 모두 날리고 말았지만 비싼 돈내고 MBA 과정을 이수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지금은 연구원으로서 누군가가 사업을 할 때 쉽게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려고 노력한다. 또 원가를 절감할 수 있는 공정 등 진지하게 생각하며 연구를 하고 있다"고 자신의 변화를 이야기 했다.

그에게 창업을 앞둔 이들에 대한 조언을 요청했다. 그는 "심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순진한 생각으로 창업하지 말아야 한다. 기업이라면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야 고용창출도 할 수 있고 사회 기여도 할 수 있다. 직원과 그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것은 기업인으로서 1차적인 기여"라면서 "창업 초기 준비 과정 중 시장과 자금을 확보하고 시작해야한다. 퇴직을 앞두고 소일거리로 창업을 하겠다는 생각은 금물"이라고 피력했다.

◆"창업하려면 확실한 아이템으로 젊었을때 해야한다"

연구원 출신인 B박사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로 제품까지 출시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으로 창업을 했다. 그가 생각한 사업모델은 시장성 있는 기술을 활용한 제품개발 후 관련업체에 인력, 장비 등 일체를 판매하는 일종의 랩 팩토리 개념이었다.

B박사는 3년이상의 준비과정을 거쳤다. 경영대학원 석사 과정, 창업실무 세미나, 신기술 사업화 과정을 수강하며 차근차근 준비했다. 연구원 창업제도를 활용, 시간적으로도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그가 창업 당시 가장 역점을 뒀던 부분은 기술성과 시장성 있는 신제품 발굴이었다. 제조와 판매보다는 제품개발에 전념했던것. 그 역시 시장을 간과했다.

그는 "당시 판매를 맡은 회사가 있었다. 그래서 방심했는데 그 때 환경관련 법규 개정으로 우리가 추진하고 있는 아이템의 국내 시장이 사라졌다. 결국 판매를 맡은 파트너 회사는 부도가 나고 말았다"면서 "자력으로 해외 진출을 도모했는데 막대한 비용이 필요했다. 정부 지원을 받으려 했으나 매출 실적이 없는 재무제표로는 어떤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며 아쉬웠던 시간을 돌아봤다.

이어 그는 "창업 당시 좀더 젊었다면 도전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리스크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면서 "창업을 앞두고 있다면 아이템을 철저히 분석한 후 창업을 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한살이라도 젊은 나이에 창업을 하는 것이 실패에 대한 부담도 줄여 줄 것"이라며 창업을 앞둔 이들을 격려했다.

◆"필요없는 자존심은 과감히 버려야"

C연구원의 S박사는 2000년에 창업했다. 그는 자신이 기술을 지원하던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면서 문을 닫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기술만큼은 자신이 있었기에 의심없이 회사를 인수하게 됐다. 연구원에 명예퇴직을 신청하고 살던 집을 모두 정리해 그 자금으로 공장을 짓고 가족이 모두 공장으로 이전했다.

국내 매출은 제법 있었다. 그러나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면서 공장 운영이 어려워졌고 결국 자금이 없어 사채에도 손을 대게 됐다. 이것이 화근이 됐다. 자금 압박이 더욱 심해졌다. 가족들의 고통도 커졌다. 이 사실을 알게 된 S박사의 연구원 동료가 그에게 엔젤 투자를 받아보자고 제안을 했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했던 S박사는 투자를 받지 않겠다고 거절했다. 결국 회사는 부도가 났다.

그의 가족들은 오갈데가 없어지게 됐고 S박사의 아내는 심장질환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S박사는 회사를 모두 정리하고 아내의 건강회복과 아직은 자신을 인정해주는 태국 기업의 기술고문 역할로 한국을 떠나고 말았다.

그를 기억하는 연구원 동료는 "그의 기술은 수입대체 효과를 낼수 있는 것으로 나름 인정을 받았었다. 그가 자존심을 버리고 엔젤 투자를 받았다면 회사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면서 "지금은 엔젤 투자가 자연스러운데 당시만 해도 동료들에게 피해를 줄수 있다는 생각에 S박사가 거절한 것 같다"며 올바른 투자 환경 조성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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