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 읽기]

나노기술이 하나의 연구 분야로서 발전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나노기술(nanotechnology)’이라는 용어는 1974년에 등장하였다. 일본의 과학자 노리오 다니구찌가 이 말을 만들었다.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는 나노기술은 생각보다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었다. 나노물질은 물질이 불에 타서 연소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다. 화산 폭발이나 산불 중에도 나노물질이 만들어지며, 생명에 있어서도 나노물질은 본질적 요소이다.

4세기 로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리쿠르고스 컵. 컵을 통과시켜 빛을 비추면 그림의 색깔이  변한다.
4세기 로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 리쿠르고스 컵. 컵을 통과시켜 빛을 비추면 그림의 색깔이  변한다.
고대의 유물에서도 나노기술을 발견할 수 있는데,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리쿠르고스 컵(Lycurgus Cup)일 것이다. 유리로 된 이 컵에는 신화 속 인물들이 새겨져 있다. 리쿠르고스 컵은 빛을 비추는데 따라 색깔이 변한다. 보통의 조명 아래에서 보면 이 컵은 초록의 비취색을 띤다. 하지만 빛이 컵을 통과하도록 비추면 컵은 반투명의 루비색으로 변한다.

리쿠르고스 컵이 이처럼 두 가지 색깔로 변하는 특성은 유리 재질에 포함된 미량의 금과 은 때문이다. 1958년 이 컵을 입수한 이후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은 이 컵이 이색성을 띠는 원리를 알아내려고 노력하였으며, 화학적 첨가물을 사용하는 복잡한 제조공정에서 이색성을 띠는 금-은 나노 입자들이 생성되었던 것이라고 결론내렸다.

◆ 나노기술의 다양한 응용

오늘날 나노기술은 다양한 분야에서 혁신을 이끌고 있다. 나노기술은 정보기술, 에너지, 환경, 의료, 운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응용되고 있으며, 헤아리기 어려운 잠재적 가치 때문에 선진국을 중심으로 막대한 연구비를 흡수하고 있다. 나노기술의 연구개발 예산 규모가 가장 큰 미국의 경우, 2000년 국가나노기술계획(National Nanotechnology Initiative: NNI)을 수립하고 나노기술에 관련된 미국 정부 예산을 총괄 관리하고 있다. 2012년의 NNI 예산은 21억 달러이다.

나노기술을 미래의 성장 동력으로 규정한 우리나라는 2009년도 나노기술 연구개발 예산이 2458억원이었으며, 앞으로 지속적으로 예산을 늘려 2020년에는 8000억까지 증액할 계획이라고 한다. 나노기술은 물질이 매크로 수준에서 보이지 않았던 특성을 나노 수준에서 보여준다는데 착안한 것이다.

출처: Project on Emerging Nanotechnologies, http://www.nanotechproject.org, 2008
출처: Project on Emerging Nanotechnologies, http://www.nanotechproject.org, 2008
나노기술을 활용하면 기존의 물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성을 얻을 수 있고, 그것을 이용해서 우수한 제품을 생산할 수 있다. 현재 나노 수준의 재료를 사용하고 공정을 거처 제조된 상용화된 일상 용품이 800개 품목이 넘는다. 세균 번식을 막는 나노 그릇, 기생충 등 오염물질에 반응하는 나노센서, 저비용 고효율 수질 정화 방식, 효율적인 태양열 전지, 진단의료 장치, 나노소재 군복, 심지어 인공근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나노기술의 활용이 기대되고 있다.

이것 이외에도 나노기술은 정보기술, 생명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으며, 앞으로의 활용 범위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나노기술은 첨단과학 분야들에 접목되어 기술과 산업 혁신을 주도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노기술의 이와 같은 잠재적 이득에도 불구하고 나노기술을 반대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바로 나노기술에 내재된 위험성 때문이다.

가장 무서운 공포는 잿빛 덩어리 지구(gray goo) 시나리오이다. 잿빛 덩어리 지구를 현실화할 수도 있는 자기조립하는 나노기계에 대해서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아이디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비판자가 노벨상 수상자인 스몰리(R. E. Smalley)이다. 나노기술에 대한 좀더 현실적인 문제 제기로는 나노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지적이 있다. 대표적인 나노물질인 탄소 나노튜브나 나노입자에 대한 독성학적 보고가 이미 나와 있고, 이런 물질들의 유해성은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노물질의 유해성과 관련된 논의는 본지 2012년 1월 25일자 칼럼 '나노기술, 책임 있는 연구위해 사전예방 원칙 고려해야' 참조>

◆프라이버시 침해 정도와 범위의 확산

20세기 후반에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에 관한 논쟁이 심했었는데, 나노기술은 프라이버시에 대한 또 다른 도전이 될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인해 확대되어 가는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는 개인의 자유와 정체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문제이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CCTV가 대중의 개인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CCTV가 대중의 개인 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다.
프라이버시는 개인의 자율성의 핵심을 구성한다. 프라이버시에 대한 보호 없이 개인의 자율성 보호는 불가능하다. 프라이버시는 일반적으로 두 가지 관점에서 이해된다. 한편으로 타인이 나의 신체 또는 정신적 생활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조건을 말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 관한 것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조건을 의미한다. 달리 말하면, 프라이버시는 공간적 프라이버시와 정보적 프라이버시로도 구분할 수 있다.

개인의 물리적 신체 또는 심리적 인격에 대해 타인이 침해할 수 없는 것은 공간적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 때문이고, 개인이 자신의 인격적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권리를 배타적으로 소유하는 것은 정보적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개인의 프라이버시 보호는 자유의 원칙과 비밀보장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 여러 나라의 도시에는 시민의 안전을 명목으로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감시 시스템인 CCTV가 무수히 설치되어 있다. 나노기술은 CCTV보다 훨씬 감시 성능이 뛰어난 초소형 무선영상 시스템(radio-based imaging system)을 구현해낼 수 있다. 시민의 안전을 내세워 공공장소에 유포된 나노 무선영상 시스템이 대중의 개인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하게 될지 모른다. 나노기술로 혁신이 이루어질 대표적인 영역이 의료 분야이다. 나노기술로 초정밀 초소형 진단장치들이 등장해 의료진단 분야의 혁신을 주도할 것이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의학적 개인 정보 침해는 전례 없는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있다.

예컨대, 찻 잔에 묻은 미량의 침이나 땀방울로도 유전적 질환의 가능성 등 개인에 대한 의학적 진단을 할 수 있는 랩온어칩(lap-on-a-chip)은 은밀하게 사용되면 개인의 프라이버시 침해와 그로 인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은밀하게 수집되는 개인 정보는 개인의 자율성을 약화시키고 행위의 자유에 제한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 취직, 고용 유지, 보험가입 등에서 몰래 수집된 개인 정보를 토대로 차별이 이루어질 수 있다. 나노기술을 활용한 진단장치는 보험회사들로 하여금 사회적 저항이 거센 입법화에 매달리지 않고 은밀하게 위험도가 높은 가입 희망자를 미리 가려낼 수 있는 길을 모색하게 할지 모른다.

◆나노불평등 문제가 중요한 이유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만일 어떤 기술이 분배 문제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고 하면, 아마 사람들은 그 기술에 열광할 것이다. 반대로 어떤 기술이 분배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면, 그 기술은 사람들로부터 환영받기 어려울 것이다. 나노기술은 바로 이런 기술일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아마 나노기술의 성공으로 인해 발생하는 이득과 혜택이 너무 크기 때문인 듯하다.

나노기술로 인해 야기되는 분배의 불평등을 나노 불평등(nano-divide)이라고 부른다. 나노불평등은 한 사회의 계층들 사이에서도 발생할 뿐만 아니라 국가 간에도 발생할 것이다. 나노기술로 탄생한 혁신적 제품과 나노의학에 대한 접근성에 있어서 계층별 차이가 생기게 되면 계층간 나노불평등이 발생할 것이다. 기술의 발전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기술 발전으로 발생하는 혜택이 모두에게 비교적 동등하게 분배될 것이라는 희망에 기초하고 있다. 하지만 나노기술은 기술발전의 혜택의 계층적 편향성과 그로 인한 사회 계층의 경직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나노의학의 정밀 진단 및 치료 기술은 의료 서비스의 등급화를 불러올지 모른다.

나노의료 서비스는 의료 비용을 크게 상승시킬 것이다. 특정한 나노의료 서비스가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나노의학이 치료 영역이 아니라 향상(enhancement)의 영역으로 확대될 때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신체적, 정신적 향상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나노의학은 해당 시점에서 개인의 경제적 수준이 추후의 사회적 계층을 결정하는 중대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상황은 경제력과 기술이 인간의 삶을 지배하고, 전통적인 가치와 미덕을 압도하는 전도된 상황을 초래할 것이다.  

나노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소수의 기술선진국들과 그렇지 못한 다수의 개발도상국 사이의 간격은 나노기술의 발전 과정에서 점점 더 심화될 것이다. 그런데 국가 간의 기술력의 차이, 국가 간의 경제적 불평등은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나노기술이 종래의 국가 간 불평등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하지만 다른 기술들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나노기술이 더욱 문제가 된다면 그것은 나노기술의 이득이 다른 기술들보다 더 크다는 정도가 아닐까?

그 이상으로 나노기술이 분배 불평등 문제와 관련해 더 크게 문제될 것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국가 간 나노불평등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아마, 모든 나라가 기술로 인해 평등해져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는 생각은 아마도 나노기술의 혜택을 국가 간에 공정하게 나누는 일이 필요하다 생각일 듯하다. 그런 생각의 근거는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자연은 인류 공동의 유산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나노기술의 혜택을 소수 국가가 독점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이런 주장은 기술 발전으로 발생한 이득을 누가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물음에 대해 발생의 전환을 요구한다. 나노기술의 혜택 독점을 불공정하게 보는 또 다른 측면은 그 기술의 위험이 국지적이지 않고 훨씬 광범위한 영역, 심지어 지구 전체를 영향권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있다. 나노불평등을 문제삼는 사람들의 또 다른 생각은 나노기술에 대한 기대에 기초한다.

나노기술은 빈곤과 질병 퇴치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되는 영역을 포함하고 있으며, 이런 기술들이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삶을 개선시키고 부국과 빈국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을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이런 희망을 가진 사람들은 나노기술의 혜택이 소수 국가에 의해 독점되지 않기를 바라며, 나아가 그래야 한다고 말한다.

◆ 향상을 위한 나노기술의 활용과 인간의 본성

나노기술은 치료라는 의학적 목적을 넘어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의 향상으로까지 목적이 확대될 수 있다. 이 쟁점은 생명공학이나 신경과학 등의 분야에서도 제기되고 있지만 나노기술은 이런 분야들과 결합하여 인간이 인간 자신의 몸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시대의 도래를 알릴 것이다. 근대인의 자연지배의 열망이 이제 인간 자신에 대한 지배로까지 확대되는 시대를 기다리고 있다. 자연지배의 맹목적 열망이 오늘날의 환경 파괴와 위기를 불러왔듯이, 인간성에 대한 지배욕은 또 다른 심각한 국면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인간 사회와 인류 문화를 발전시키고 유지해왔던 전통적인 가치와 도덕은 인간 지식의 확장과 그로 인해 등장한 새로운 기술도 전면적인 반성의 요구에 직면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 개인의 정체성, 인간적 미덕, 숭고한 가치 등에 대한 관념은 변화와 조정 과정 없이 전승되어 수용되지 않을 것이다. 나노기술로 새롭게 무장한 몸과 마음 지닌 존재를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들은 여전히 인간인가. 아니면 인간 이후의 새로운 종(a posthuman species)인가?

도덕성, 자율성, 미적 감각, 온갖 미덕 등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여겨졌던 인간적 가치들은 언제나 가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시대적인 한계를 지니는 것일까? 나노기술에 대한 미래 전망은 궁극적으로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심각한 철학적 질문은 우리에게 던져준다.
 

▲이상헌 교수
이상헌 교수는 서양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동국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의전담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연구 분야는 신생과학기술을 대상으로 하는 기술윤리, 기술철학,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기술의 대융합(공저)' '인문학자, 과학기술을 탐하다(공저)', '대학생을 위한 과학글쓰기(공저)' 등이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읽기'를 타이틀로 신생과학기술들을 윤리적 관점에서 되새겨 보며 인간의 행복 증진을 위해 최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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