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연석의 로켓과 우주개발]

닐 암스트롱 사망 시 NASA는 홈페이지에 그의 생전 모습을 올려 애도를 표시하기도 했다.
닐 암스트롱 사망 시 NASA는 홈페이지에 그의 생전 모습을 올려 애도를 표시하기도 했다.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이 지난 8월 25일 82세를 일기로 지구를 영원히 떠났다. 암스트롱은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선을 타고 1969년 7월 21일 오전 11시 56분 31초(한국시간) 달의 고요의 바다에 첫 발을 디디며 '한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라는 역사적인 명언을 남기기도 하였다.

암스트롱이 탑승한 달착륙선이 달에 착륙할 때 착륙선에 달린 역추진 로켓의 추진제가 다 떨어지기 직전 간신히 구사일생으로 착륙 할 수 있었다. 추진제를 다 쓸 때까지 착륙하지 못하면 달에 충돌하여 모두 사망하는 초 비상 상태였다.

얼마나 긴장했던지 달로 하강할 때 암스트롱의 맥박이 평상시의 두배인 156회까지 올라갔으며, 우주복속에다 소변을 보았을 정도였다. 미국의 우주인 중에서 많은 우주인들이 가장 먼저 달에 착륙하고 싶어 했다. 아폴로 프로그램으로 달에 착륙한 우주인은 모두 12명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암스트롱은 많은 지구인들이 기억 하지만 달에 착륙한 나머지 우주인 11 명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별로 관심도 없다.

이래서 모두 가장 먼저 달에 첫발을 디디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암스트롱과 아폴로 11호를 타고 함께 달에 착륙한 올드린도 달에 먼저 내리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NASA에서 정한 순서에 의해 암스트롱이 먼저내리고 몇 분 뒤 올드린이 내렸다.

아폴로 11호가 달에 갈 때 핫셀블라드 500EL이라는 아주 좋은 카메라를 갖고 갔는데 암스트롱이 가슴에 달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덕분에 자기 사진은 없다. 올드린 사진밖에 없다. 암스트롱의 사진은 올드린의 헬멧에 반사된 사진과 그림자 사진뿐이다. 달에 첫 발을 디딘 우주인이 달 표면에서 찍은 사진이 없는 것이다.

NASA는 달 탐험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구상하고 실천 했지만 암스트롱이 달 표면에 서있는 사진을 찍는 것은 잊은 것 같다. 여행을 할 때 카메라를 갖고 다니며 주로 사진을 찍는 사람의 사진이 없는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닐 암스트롱이 첫 번째 달에 착륙하는 아폴로 11호로 선장으로 뽑히는 데는 그의 뛰어난 위기관리능력 때문이다. 닐 암스트롱은 퍼듀대학에서 항공공학을 전공하고 해군에 입대해 전투기 조종사로 6.25에 참전해서 78차례를 출격하는 등 서울 수복에도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1962년 제 2기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었고 1966년 3월 16일 제미니 8호를 타고 우주비행을 하였다.

제미니 8호의 임무는 지구궤도에서 다른 무인 우주선과 결합 즉 도킹(docking)을 하는 것이다. 발사대를 이륙한 후 5시간 42분 만에 첫 번째로 도킹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도킹에 성공한지 35분 만에 도킹할 때의 충격 때문에 우주선의 궤도조정로켓에 문제가 발생해서 막 회전하기 시작하였다. 도저히 우주선의 조종이 안 되는 상태가 되었는데 암스트롱의 뛰어난 위기관리 능력으로 무사히 태평양으로 내려왔다.

가장 어려운 우주비행 상태에서 위기를 극복하고 지구로 안전하게 내려온 위기관리능력이 높이 평가되어 첫 달 착륙 우주인으로 선발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달 착륙 과정에서 어떠한 위기나 문제가 갑자기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마바 대통령도 닐 암스트롱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미국 역사상 최고의 영웅'이라고 말 할 정도로 애도를 표하였다. 미국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영웅이었지만 그는 달에 갔다 온 이후에도 별다른 대외 활동을 하지 않고 신시내티 공대교수로 있으면서 후진을 양성하며 조용히 지냈다.

외부인들이 궁금해 할 정도로 조용히 지냈다. 그래서 별에 별 이상한 소문이 다 돌았다. 그 중에는 달 탐험에서 받은 쇼크로 정신병자가 되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필자는 아폴로 11호 달 착륙 성공 25주년째인 1994년 NASA의 초청으로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을 방문, 기념식에서 3명의 아폴로 11호 우주인이 연설하는 것을 보았다.

연설하는 암스트롱은 지극히 정상인으로 보였다. 아직도 정상적으로 잘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러면 왜 닐 암스트롱에 관한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을까? 그것도 그럴 것이 같은 오하이오주 출신으로써 미국에서 첫 번째로 우주비행을 한 우주인인 존 글렌은 25년간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을 지냈기 때문에 닐 암스트롱도 본인이 원하기만 했으면 충분히 정계나 고위직에 진출하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항공우주분야 과학기술자로, 미국 우주개발의 발전과 달에 첫 발을 디딘 우주인으로, 겸허한 인품을 유지하며 가족과 함께 조용히 생활하며 일생을 보냈다.

그동안 한국에도 몇 번 방문하였는데 특히 1971년에는 평화봉사단 고문자격으로 예산고등학교를 방문하여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닐 암스트롱의 겸손하고 조용한 외길의 삶을 바라보면서 과학기술자들이 명예롭게 사는 길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듯 하여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닐 암스트롱의 명복을 빕니다.
 

▲채연석 박사 
채연석 박사는 2005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수장을 지낸 바 있으며, 현재에는 연구원에서 전문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로켓 박사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2005년 KSR-Ⅲ 프로젝트를 진두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우주소년단 부총재로 우리나라의 국가 과학기술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우주시대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채 박사는 '채연석의 로켓과 우주개발'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국가 과학기술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우주시대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글로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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