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 원장 비리혐의로 낙마…신임 선출중 3개 기관도 뒷말 무성
'줄서기 인사' 폐해 입증…연구원 의사 반영 등 '공모제' 개선 시급

최근 한국 과학계에는 부끄러운 일이 하나 있었다.중요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하나인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의 원장이 공금 유용 등의 비리 혐의로 해임된 것이다. 연구원 안팎에서는 이와 관련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대체로 잘못된 인사의 결과로 이번 일을 계기로 출연연 기관장 선임 방식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이다.

출연연은 원장을 뽑을 때마다 뒤숭숭한 분위기에 휩싸인다. 누가 원장으로 오는지, 공모에 응한 인사가 누구와 친분이 있는지, 누가 유력한 지를 놓고 설왕설래한다. 정치권 선거 만큼 살풍경은 아니지만 볼성사나운걸로 치면 출연연 기관장 선출도 선거 못지 않다. 투서와 음해가 난무하고, 네편내편으로 갈려 기관운영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며 출연연구소의 기관장은 대다수가 바뀌었다. 임기 도중이라도 전임 정권이 임명한 사람이라며 사표를 쓰게 했다. 그러면서 점령군처럼 들어선 사람들이 대개 교수들이었다.이들은 대체로 단임으로 끝나고 연구현장 사람들이 다시 기관장이 되곤 했지만 정권실세와 친한 사람은 연임에 성공했다. 기관 운영 성적과는 무관하게 권력과의 친소 관계에 좌우됐다는 주장이다. 센 힘을 믿고 어느 부분에서는 원칙을 어기며 무리하게 기관 운영을 하다보니 결국 이번과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 아니냐는게 주변의 분석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연구 현장에서는 기관장 선임 방식이 '연구 중심'이란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지금의 방식은 연구 실적도 일정 부분은 반영이 되겠지만 그 보다는 무게 중심이 '정실'쪽에 놓여 있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인물의 경우도 현정권 탄생에 크게 기여한 사람의 동향으로 알려져 있다.

'무늬만 공모'인 출연연 기관장 선출방식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격만 갖추면 누구나 응모할 수 있고, 이들 가운데 3배수를 압축하고, 다시 최종 선출자를 가리는 현재의 방식은 외견상 '민주적'이다. 하지만 원장 임명 때마다 '누가 내정됐다', '후순위 후보가 앞선 후보를 제치고 낙점됐다', '누가 누구에게 줄을 대고 있다'는 뒷말이 끊이지 않는다. 공모제가 '낙하산 인사'의 면죄부를 주는 통로로 전락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공모제가 '비민주적'이라는 지적을 받는 이유는 무엇보다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응모했는지, 어떤 논의를 거쳤는지는 일절 '비밀'이다. 응모자의 명예와 사생활 보호가 그 이유인데 적격한 인물인지를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것이 응모자의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인지 의문이다. 후보를 검증하는 심사 과정이나 회의록도 전혀 공개되지 않는다.

또 지나치게 폐쇄적이다. 연구기관의 수장을 뽑는데 연구원의 목소리와 의견이 반영될 통로가 막혀있다. 원장후보자 인사위원회가 구성되지만 해당 기관의 구성원은 배제된다. 연구원들이 직선제를 원하는 것도 아니다. 심사나 선정과정에서 구성원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절차를 바라고 있지만 공염불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구성원 공청회나 내외부 인사를 대상으로 평가·검증 절차를 거치는 '서치 커미티' 등의 도입이 거론되고 있지만 메아리 없는 외침이다.

대선을 3개월 앞두고 대선 주자들이 장밋빛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등 유력 주자 3명 모두 과학기술이 우리의 중요한 미래 먹거리 창출원임을 인정하고 있다. 누가 되든 과학에 대한 투자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인사가 만사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투자가 제 결실을 맺기 위해서는 올바로된 사람이 리더로 선출돼 과학자들의 연구 환경을 조성해야 제대로된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으로 선출되기 전에는 낙하산 중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보은 인사를 하며 회전문 인사, 고소영 인사로 주변 사람들을 낙하산으로 내려보냈다. 그 결과는 대부분의 연구소에서 현장 연구자의 사기 저하로 이어지며 투자 대비 낮은 성과란 결과로 나타났다. 세금을 내는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정권을 '사금고'처럼 이용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비능률을 경험한 만큼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연구소 기관장 자리는 전리품이 아니다. 나눠먹어야 할 자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할 자리이다. 이 자리에는 정권과 친한 사람이 아니라 친하지 않더라도 유능한 인사가 와야 한다. 이를 위해 선임 과정에서 연구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

과학자들도 순응만 해서는 안된다. 어쩔수 없다고 체념하는 순간 자신들의 연구 환경은 훼방받고, 어지러워진다는 것을 알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출연연 연구원이란 신분 때문에 못한다는 변명은 핑계에 불과하다. 후배들에게 무엇을 남기고, 훗날 무엇을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을 지 고민해야 한다.

현재 출연연에는 3명의 기관장이 공모 과정에 들어가 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기관장을 뽑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이 해당 기관이다. 이미 공모를 마감한 생명연과 ETRI의 경우 모두 9명이 출사표를 던질 정도로 인기(?)가 높다. 여기에는 연구원 출신도 있지만 모두 현정권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인물이 포함돼 있다는 후문이다.

MB정부가 마지막까지 '고소영' 인사를 할지 어떨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 이번이 마지막인 만큼 제대로된 인사를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연구 현장의 분위기이다. 이번 인사는 차기 정권의 선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아는 사람들끼리의 나눠먹기로 마감한다면 결국 국민 위에 군림한다는 인상을 줄 수 밖에 없고, 그렇다면 아무 연줄이 없는 사람이 나을 수도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연구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연구에 대한 비전과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선출돼 국민이 주인되는 공동체란 인식을 갖게 되고, 미래에 희망을 갖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연구 현장에서도 선출한 다음에 뒷담화만 하지 말고, 자기 목소리를 내야할 대목에서는 내야 한다. 기관장 공모 관행을 바꾸는데 미력하나마 대덕넷도 힘을 보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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