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열의 한의학 이야기]

1948년 세계보건기구(WHO) 헌장에서는 건강을 '단순히 질병이 없거나 허약하지 않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완전한 신체적, 정신적 및 사회적 안녕상태(Health is a state of complete physical, mental, and social well-being and not merely the absence of disease and infirmity)'로 정의하고 있다.

단순히 Disease, Illness뿐 아니라 Sickness(=Social dysfunction that affects the individual's relation with others)까지 없는 상태를 건강 상태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명맥실수에서 건강 4단계의 맨 아래쪽 상태인 '강녕'은 이러한 건강 개념의 최소한을 충족한 상태로 이해할 수 있다(본 칼럼 2011년 12월 20일자 '미병과 명맥실수' 참고).

아래 예를 통해 그 개념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필자는 태어나서부터 스물여섯살이 될 때까지 소화기 질환으로 굉장히 오래 고생했다. 많이 먹지 못하고 먹어도 금방 체하고 또는 속이 더부룩하니까 머리도 늘 무겁고 편두통도 잦았다. 조금만 몸에 안 맞는 음식을 먹어도 설사를 자주 했다. 지금이라면 병명이 위염, 습관성 위염, 과민성 대장질환 정도가 될까? 두통은 원인을 알 수 없는 편두통 쯤 될 것이다.

아무튼 현대서양의학으로는 정의하기 어려운 질병상태가 오래 지속되었는데, 그런 문제로 병원을 가면 그저 소화제나 주고, 몸이 많이 약해졌다고 수액으로 영양제를 놔주고 해서 넘어갔지 이런 상태의 근본적인 해결법을 제시해주진 못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아픔은 우리 세대가 대학입학시험 중에서 첫 번째 관문으로 치르는 대입예비고사를 일주일 남겨두고 어머니께서 평소 필자가 좋아하던 굴을 영양식으로 해주신 다음의 일이다.

굉장히 신선한 굴을 많이 해주셨고 여러 식구가 다 같이 먹었지만 수험생인 필자가 아무래도 좀 많이 먹었으리라. 그런데 그 굴을 먹고 유독 필자만 그날 저녁 급성 장염이 발생했다. 쉴 새 없이 2~3분 간격으로 쏟아지는 설사를 견디다 못해서 병원에 입원을 했다. 지사제와 항생제가 들어있는 수액을 맞고 응급 처치는 되었지만, 그 때부터 예비고사를 볼 때까지도 체력저하로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 그 뿐이 아니다. 예비고사를 보는 날 오후부터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했는데 그 후유증이 본고사까지 두 달 동안 계속되어, 한두 시간만 공부를 해도 머리가 아팠다. 마침내 본고사 보는 날 수학 시간에 코피까지 쏟았다.

필자는 그 해 대학입시에 실패하는 줄 알았다. 대학에 가서도 강의실에서 춥고 졸려 공부를 열심히 하기가 어려웠다. 이토록 오랫동안 건강에 큰 손실을 주었던 일이었지만, 그 까닭이 무엇인지 모른 채 지나갔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KAIST를 졸업하고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근무하던 26살 때다. 당시 축구를 하다 발목을 삐어서 연구원 근처의 한의원을 갔는데 거기서 사상의학이 우리 고유의 의학인데 체질을 진단하고 그에 따라 치료를 한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그 원장님에게 필자의 체질과 설사병의 원인에 대해 설명을 듣고 치료를 받게 된 것이 인생을 결정적으로 바꾸어놓게 되었다. 한 달 정도 체질 치료를 받고 나니 대변 상태가 현격하게 좋아졌고 소화상태도 좋아졌으며 전반적인 몸 상태가 매우 좋아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왜 그런 증상에 빠졌는지 이유를 알게 됐다는 것이었다.

'당신은 비위의 소화기능이 약한 소음인이고 그래서 따뜻한 음식을 먹어야 하는데 굴이나 맥주나 이런 차가운 성질의 음식을 먹으면 건강을 상하게 된다, 특히 몸이 피로하거나 정신적으로 예민한 때에 몸에 안맞는 음식을 먹으면 결정적으로 탈이 난다'는 것. 대학입시전과 같은 민감한 시기에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예민한 상태에서 굴을 그렇게 먹었으니 탈이 날 수 밖에 없었단다. 앞으로는 인삼이나 닭같은 성질이 따뜻한 음식 위주로 먹고 위장기능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서 팔다리를 많이 움직이는 운동을 해야 한다. 또 원장님은 몸은 마음을 따라가므로 마음으로도 활발하게 남들하고 적극적으로 교류하는 삶을 살아야한다고 조언해 주었다.

얘기를 듣고 나니 26년 동안 겪었던 몸의 문제에 대해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그 해결책도 단순히 육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것까지 완벽하게 알게 됐다. 그 날의 충격이 결국 필자로 하여금 건설기술연구원을 그만두고 다시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으로 들어가게 이끌었다. 이런 예로 볼 때 스물여섯 살 때까지 필자의 건강 상태는 강녕에 못 미친다.

Disease나 Illness는 없지만 Sickness의 상태를 상습적으로 안고 살았기 때문이다. 사상의학에서는 소화, 대소변과 땀, 성생활, 통증, 수면, 피로 등의 문제로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는 정도의 상태는 이미 질병 초기 상태로 보고 운동, 음식 등 생활 속의 체질건강관리법으로 다스리도록 한다. 하지만 서양의학적 관점에서는 '반건강' 정도가 될 것이다.

적어도 강녕 이상의 건강 상태이냐, 반건강 상태이냐 하는 진단은 현대인에게 매우 중요하다. 첫번째로 반건강 상태는 향후 질병 상태로 가는 전조 단계가 될 수 있기 때문이고, 두번째로는 이제 현대인은 보다 완전한 건강 상태로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중에는 혹 필자처럼 질병은 없으나 생활에 불편한 증상을 안고 사는 이들은 없는지? 있다면 체질건강관리법으로 보다 나은 건강 상태로 자신을 향상시키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김종열 본부장 
김종열 한국한의학연구원 체질의학연구본부장은 공학을 공부하고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연구하던 중 사상의학에 매료돼, 다시 한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김 본부장은 8년간 임상을 통해 연구자료를 축적한 후,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이제마프로젝트를 통해 사상의학의 과학적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김 본부장은 한의학의 과거, 현재 및 미래와 우리에게 필요한 국가정책과 연구과제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줄 예정입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