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벤처 '엔에스데블' 세계 최초 스마트폰 시험 상용화
국내 이통사·APEC국가도 관심…"지구촌 교육평등 가능"

 
#1. 지난달 30일 건국대와 대전대에서 '임상병리사 UBT 모의시험'이 열렸다. 지난해에 이은 두 번째 UBT(Ubiquitous-based Test) 시험으로 전국 대학의 임상병리학과 학생 200명이 참가했다. 응시자들이 받은 것은 시험지가 아니라 태블릿PC. 글과 사진으로만 출제되는 종이시험과 달리 동영상과 센서 기능을 갖춘 스마트기기는 실제 임상현장에서나 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 문제들을 쏟아냈다. 책만 읽고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문제들. 응시자들은 강의시간과 실습현장에서 보고 익힌 지식과 감각을 총동원해 문제를 해결해나갔다. 임상병리사를 비롯 의사·한의사·간호사 등 보건의료 분야 23개 국가자격시험을 주관하는 국가시험원은 모든 종목으로 UBT를 확대할 계획이다.

#2. 1만7000여 개 크고 작은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서 가장 먼 섬은 비행기로만 8시간이 넘게 걸리는 세계 최대의 도서국가다. 열악한 교통과 통신 사정상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교육기회를 제공하기란 언감생심이다. 지난 5월 경주에서 열린 APEC교육장관회의에 참석한 인도네시아 교육부 관계자는 한국의 한 벤처기업이 소개하는 '스마트폰 기반 U러닝 플랫폼'에 눈이 번쩍 뜨였다. 컴퓨터 인터넷은 없어도 지구촌 구석구석 핸드폰 없는 사람은 드문 세상. 섬지역 곳곳에 퍼져 있는 2억1000만여 명의 국민을 통일화된 국가교육의 장으로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본 것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나 공부하고 평가받을 수 있는 세상. 구현만 된다면 아이폰이 불러온 IT혁신을 잇는 또 하나의 '스마트 혁명'이 될 만하다.

세계 최초로 UBT-U러닝 플랫폼을 상용화한 대덕 벤처 엔에스데블(대표 이언주). "손가락 하나로 지구촌 누구나 평등한 교육기회를 누리게 하자"는 이들의 꿈이 KAIST 창업보육센터 한켠을 떠나 뚜벅뚜벅 현실세계로 향하고 있다.

'엔에스데블'이란 기업으로 취재를 간다고 하니 주변사람들의 반응이 한결같다. "데블? 진짜?" 이언주 대표에게 회사명의 유래를 들었다. "데블은 Developer's Village의 준말입니다. 앞의 이니셜은 북극성(North Star)를 의미하고요. 남들이 가지 않는 길, 하지 않는 것을 하자는 의미로 지었는데 해외활동이 많아지면서 외국 관계자들에게 이름 좀 바꾸자는 요청을 많이 듣고 있어요."
 

▲APEC교육장관회의에서 UBT플랫폼을 홍보하는 엔에스데블 개발자들. 오른쪽은 지난달
SK텔레콤과 맺은 MOU 체결식. 
ⓒ2012 HelloDD.com

엔에스데블은 2009년 이러닝 벤처회사에서 한솥밥을 먹던 개발자 7명이 뭉쳐 만들었다. 회사를 이끌고 있는 이 대표와 신승용 기술자문위원장, 개발자들이 대부분 한 회사 출신이다. 이 대표는 "벤처회사가 현실과 타협하게 되면서 한계가 보였다"고 창업의 이유를 밝혔다. 매출과 사세 확대에 치중하다 보니 벤처 특유의 도전정신은 사라지고 곶감 빼먹듯 창의성과 자유로움을 갉아먹게 되는 현실이 실망스러웠다는 것.

신 위원장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에 에너지, 자원, 건설 등 벤처의 본질과 상관없는 분야까지 헤집고 다녔다"고 말한다.  엔에스데블로 새로 뭉친 개발자들은 기존 회사에서 주력했던 교육과 의료, 레저 관련 시스템 개발 중 '교육'을 새로운 회사의 아이템으로 잡았다. 전 직장에서 업무차 전세계를 돌며 아이디어를 구하던 그들에게 두 가지의 거대한 세계적 조류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신 위원장은 "사막과 밀림을 가릴 것 없이 전세계 어디서나 핸드폰을 사용하고 있었다"며 "뒤이어 나온 애플의 스마트폰을 보고 '아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기억했다. 스마트폰과 교육이 결합하면 전혀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을 예감했다는 것이다.

◆스마트폰 탄생 보며 '교육·U러닝 결합' 예감…세계 최초 UBT 개발 나서
 

▲지난 5월 경주에서 열린 APEC교육장관회의 참석자들이 UBT 플랫폼의 한국 상용화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2012 HelloDD.com

엔에스데블이 개발에 성공한 UBT 플랫폼은 스마트기기를 이용해 학습하는 U러닝의 마지막 과정이다. 유비쿼터스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예상에 따라 U러닝에 대한 기술개발은 2009년 무렵 국내외에서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다만 기기가 한정적이었다. PDA 정도가 그나마 U러닝에 근접하게 활용되고 있었고 애플의 아이폰은 한국에서 여전히 '찻잔 속 태풍' 정도로 인식되던 무렵이다.

유러닝 관련 기반기술을 확보하고 있었던 엔에스데블은 스마트폰 대중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는 것을 확인하고 바로 스마트기기와 교육을 연결하는 연구개발에 들어갔다. 그리고 2010년 '스마트기기를 이용한 공인시험관리방법 및 기술' 특허를 세상에 내놓게 된다. 국내는 물론 전세계 최초였다.

이 대표는 "개발 당시는 아직 시장이 열리지 않았던 때였는데 플랫폼 완성과 함께 국내에도 스마트폰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다"며 "덕분에 개발을 끝내자마자 비교적 순조롭게 첫 UBT 사업을 발주받았다"고 설명했다.

2010년 9월 동국대학교에서 통역번역협회가 주관하는 '국제통번역시험'이 치뤄졌다. 엔에스데블이 개발한 UBT 플랫폼의 첫 번째 상용화 현장이다. 응시자와 채점자의 반응은 모두 기대한 바 그대로였다.

신 위원장의 회고다. "기존의 통번역시험은 녹음과 전산장비가 갖춰진 어학실습실에서 응시자가 문제를 듣고 테이프에 녹음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장소가 제한되니 자주 시험을 치룰 수도 없고, 보통 시험 한 번 치르면 답안테이프가 수백 개에 이르렀습니다. 채점하는 교수들 역시 이것을 하나하나 돌려 들으며 채점을 해야하니 부담이 컸지요." 신 위원장은 "채점자는 물론이고 응시자들, 특히 지방에서 올라와야 하는 응시자들이 UBT 시험방식에 큰 호의를 보였다"고 당시의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엔에스데블 구성원들은 과거 벤처기업에서 수익만 좇아 비정상적으로 세일즈를 해야 했던 기억 때문에 이번에는 적극적인 '영업'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머니 속의 송곳은 저절로 드러나는 법. 시간과 비용 모두를 크게 절감할 수 있는 UBT의 장점은 시험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빠르게 퍼졌고 UBT플랫폼에 대한 문의전화들이 전국에서 계속됐다.

2010년, 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과 경희대의대를 시작으로 여러 민간자격협회와 교육업체들이 시범사업을 의뢰했다. 스마트기기를 개발하는 기업들은 물론 국내 최대이통사인 KT와 SK텔레콤도 관심을 보였다. 두 회사와는 올해 3월과 10월 각각 공동사업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교육기회 평등을 목표로 저개발국 지원…"좋은 일 하며 예쁘게 돈 벌겠다"
 

▲APEC회원국 교육부 관계자들에게 U러닝 플랫폼을 소개하는 신승용 고문.   ⓒ2012 HelloDD.com

해외에서도 관심이 뜨거웠다. 미국 투자사인 커존인베스트먼스(Curzon Investment USA)가 "현재 전세계적으로 UBT 개발사는 미국과 영국 두 곳뿐인데 그들과 비교해도 기술이 앞선다"며 투자 의향을 물어왔다. 신 고문은 "400만 달러 규모 투자와 공동마케팅에 대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역시 미국 회사인 리딩타운잉글리시를 비롯 HDC(하버드대 토론협회), 전미토론대회와도 올해 공동사업 계약이 체결됐다. 성공이 눈앞에 다가왔다고도 볼 수 있는 상황.

그러나 엔에스데블 개발자들의 눈은 한국과 미국을 넘어 다른 세상으로 향하고 있다. 이 대표와 신 위원장이 앞서 밝힌 바처럼 엔에스데블은 작은 성취와 이익보다 그들이 개발하는 UBT가 '전세계의 생생한 지식(Live Knowledge)을 공유하는 플랫폼'이 되기를 바란다. 신 위원장은 "전세계 사람들이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스마트폰으로 대체되면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지식을 공유하고 교육의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며 그에 필요한 기반기술을 창조하는 게 엔에스데블의 최종목표라고 말한다.

올해 5월 경주에서 열린 APEC교육장관회의는 엔에스데블의 꿈을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되고 있다. 신문지면에서 한국이 의장국이 됐다는 소식을 접한 이 대표와 신 위원장은 용감하게도 다짜고짜 한국인 의장을 찾아가 엔에스데블의 원대한 비전을 설명했다. 행운이었는지 운명이었는지, 상업기구의 접근을 허용치 않던 APEC국제교육협력원이 이들의 참여를 수락했다. 엔에스데블은 제5차 APEC교육장관회의에 U러닝 분야 기술기업으로 참가했고 그들의 기술을 아시아 저개발국가 교육관계자들에게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이 대표, 신 위원장과 엔에스데블 개발자들은 요즘 좀처럼 한자리에 모이기가 힘들다. 전국에서 이어지는 시연 요청뿐만 아니라 APEC 회원국 교육부 관계자들의 잇단 방문 요청에 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각종 협력사업과 수출을 위해 오가는 나라는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권 국가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신 위원장은 "저개발 국가와 하는 협력사업은 비용상 마이너스"라며 "이들에게서 당장의 비즈니스를 기대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당분간 돈 생각하지 않고 현지인들이 고민하는 교육불균형과 열악한 여건을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플랫폼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며 "먼저 국가시스템을 통해 UBT 적용이 성공하면 다음 열리게 될 사교육 시장에서는 우리도 분명히 수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대표는 "모든 교육의 종점은 시험과 평가"라고 말한다. 그는 "U러닝은 좋은 플랫폼이지만 부교재 취급을 받아왔다"며 "우리는 그래서 거꾸로 시험에서 먼저 종이를 대체하는 전략을 세웠고 이제 그 영향이 거슬러 올라가 학습 전반의 U러닝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또 "종이시험을 대체하는 UBT플랫폼이 결국 전세계 모든 인류의 교육기회 균등을 위한 기반기술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길잡이별 북극성처럼 좋은 일 하면서 예쁘게 돈 버는 모델을 만들겠다"며 별난 이름만큼이나 별난 목표를 향해 뛰는 엔에스데블 구성원들. "돈과 외형을 쫓느라 비전을 잃었던 과거의 실수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그들의 다짐이 세계의 교육현장을 어떤 모습을 바꾸어갈지 사뭇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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