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땅속 변화 파악 가능한 '다점온도 모니터링 기술' 사업화
창업 10년 김중열 대표 "창의적인 일하고 사회공헌 매력"

순식간에 일어났다. 17개월된 어린아이를 포함해 18명의 아까운 목숨이 흙더미와 함께 사라졌다. 지난 한해 강우량의 절반가량이 3일 동안 한꺼번에 쏟아지며 서울시는 104년만의 홍수로 몸살을 앓았다. 그 중 우면산 사태는 흙더미가 인근주택과 아파트를 덮쳐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우면산 사태를 보면서 누구보다 가슴 아파한 이가 있다. 김중열 소암 대표. 그는 산사태를 사전에 감지할 수 있는 '다점온도 모니터링 기술(TLS)'을 개발한 상태였다. 마케팅 인력 부족으로 현장 적용에 적극 나서지 못한 점도 있지만 막을 수 있는 재난을 막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다.

이후 김 대표는 마케팅 인원을 대폭 보강하고 전국의 지자체를 대상으로 TLS 기술소개에 나섰다. 우면산 사태같은 안타까운 일이 또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국토의 70%가 산이고 곳곳에 댐이 있는 국내 지역 특성상 우면산 사태와 비슷한 재난재해는 언제든 또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TLS 기술을 적용하면 도심지 지반침하, 토사 퇴적상태 등 산사태, 댐 누수 등을 실시간 파악해 재난을 예방할 수 있다"고 소개하면서 "과학기술인으로서 꼭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연구하고 개발한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TLS 기술, 땅속 온도 실시간 감지로 재난재해 사전 예방

소암이 개발한 TLS(Thermal Line Sensing)는 온도센서를 장착, 점과 선 개념으로 땅속 온도를 측정하는 기술이다. 즉 하나의 케이블에 여러 개의 온도센서 칩을 배열해 선 개념으로 온도를 측정, 땅속 변화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다. 특히 각각의 온도센서는 자체 메모리와 고유번호를 갖고 있어 정보의 정확성을 높이고 칩간 통신도 가능하다.

이용 분야도 다양하다. 해수 침투, 도심지 지하수, 방사성 폐기물 처분장 지하수, 광산 침하, 도심지 지반 침하, 사방댐 안정, 녹조와 적조, 원자력 발전소 온배수 측정 등 온도 측정이 가능한 곳 어디든 TLS 기술을 적용할 수 있다.

김 대표는 "온도 계측으로 모든 구조물과 자연상태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현재 산사태 예보는 산 위에서 카메라로 찍어 변화를 보고 내리는 방식으로 당연히 늦게 되고 결국 인명피해로 이어진다"고 설명하면서 "TLS는 하나의 케이블에 많은 센서칩을 장착, 동시에 여러 지역의 온도를 실시간 측정하고 변화를 잡아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또 변화가 기록되므로 일종의 땅속 일지가 된다"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이 기술이 오래전 미국에서 한번 소개된 적이 있는데 중앙관측이 가능한 소프트웨어가 개발되지 않아 상용화되지 못했다"면서 "우리는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끝냈다. 한국광해관리공단에서 기술의 우수성을 알아보고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TLS 기술을 소개하는 그의 표정에 자신감이 넘친다.
 

▲올해부터 합류한 홍영국 이사(사진 왼쪽)와 김 대표가 소암에서 진행 중인 다른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2012 HelloDD.com

◆하고 싶은 연구·기술개발 위해 출연연 사표 던지고 창업

"1986년 해외 유치과학자로 대덕에 오게 됐습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분야는 많은데 출연연에서는 과제기간이 지나면 연구도 끝내야 하니 아쉬움이 많았죠. 그래서 출연연 근무 16년만에 연구원 생활을 접고 창업을 했습니다." 해외 유치과학자로 대덕과 인연을 시작한 김중열 대표의 창업 동기는 간단했다. 하고 싶은 연구와 기술개발을 위해서다.

TLS 기술도 그의 창업으로 빛을 보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 대표가 TLS 기술을 처음 접한 것은 15년전 독일 출장에서다. 당시 독일의 중소기업과 같이 연구를 하기로 했으나 그 기업이 도산하면서 김 대표에게 숙제로 넘어왔다. 연구소에 근무하면서는 연구를 진행할 수 없었다. 이미 한 물 간 기술이라며 모두들 반대했다. TLS 기술에 확신을 가졌던 김 대표는 연구원 생활을 과감히 정리하고 지인과 창업하기로 마음 먹는다.

이미 축적된 기술 정보를 바탕으로 연구에 집중한 그는 창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 창업 당시 연구소 1호 기업으로 관심이 쏠리기도 했지만 기업 운영은 현실이었고 냉정했다. 기술개발을 완료하고 운영 소프트웨어까지 개발했지만 매출은 없었다. 기존 장비에 비해 비용과 효과면에서 월등히 앞선 기술이었지만 진면목을 알아차리는 소비자는 없었다. 매출이 없으니 당연히 기업 운영도 어려워졌다. 김 대표는 사비를 털어 가며 고집스럽게 기술을 업그레이드했고 마케팅에 나섰다.

그 결과 한국광해관리공단에서 기술의 우수성을 알아보고 적극 적용하기 시작했다. 2002년 창업 후 거의 5년만의 성과였다.  김 대표는 한국광해관리공단에서 받은 예산의 2/3를 다시 연구개발에 쏟아부었다. 물리학을 전공해 기술에 접목할 아이디어가 무궁무진했던 김 대표는 다시 연구에 집중했다. 당연히 마케팅에는 소홀해졌다.

◆우면산 사태 보고 반성, 마케팅 인력 보강 후 적극 홍보에 나서

"현재 광케이블 등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우면산 사태를 보면서 책임감이 느껴졌습니다." 지난해 우면산 사태를 TV로 접한 김 대표는 망치로 한 대 얻어 맞은 것 같았단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대표는 바로 마케팅 인력 보강에 나섰다. 연구원 출신 인력 6명을 채용했다. "매일 밤 12시까지 연구하는 게 버릇이 돼 마케팅에 소홀했던 게 사실입니다. 올해부터 전국 지자체 등을 대상으로 마케팅에 적극 나서고 있습니다. 또 다시 우면산 사태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면서요. 보강 인력 모두 연구원 출신입니다. 기술을 제대로 알아야 관계자들을 설득할 수 있거든요."

우리 나이로 60세를 훌쩍 넘긴 김 대표 역시 마케팅에 나섰다. 사명감 때문이다. 창업 10년을 맞는 김 대표에게 소감을 물었다. 소감 역시 창업 이유만큼이나 명쾌하다. "기업은 연구소보다 시간이 무척 빨리 가는 곳입니다. 또 창의적인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고요. 무엇보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점도 매력적이죠."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