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등 지원 강화 기대에 앞서 자기 역할 고민해야
기다리기 보다 먼저 국가발전 기여 방안 찾는 역발상을

체계적 이공계 수업을 받은 최초의 이공계 대통령이 탄생하게 됐다. 박근혜 18대 당선자가 그 주인공. 이전에도 이공계 성향의 대통령이 있기는 했다. 군인 출신의 대통령은 반(半) 이공계였다. 포술 등을 배우며 수학 등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학에서 전문적으로 공부를 한 사람은 박 당선자가 처음이다. 이공계 출신인 만큼 이공계에 대한 이해가 남다를 것으로 기대된다. 주요 의사결정권자가 이공계일 경우 과학계가 받게 될 이익은 무엇일까? 이전에 모 출연연구소 분소의 개소식에 참석한 일이 있다.

당시 이공계 출신의 홍창선, 서상기 두 의원이 축사를 했다. 연설 내용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연구소의 중요성과 책임자와의 인연 등을 이야기하며 필요성을 공감하는 만큼 적극 돕겠다고 말한다. 한결 설득력이 있었고, 이를 보면서 이래서 업계 출신이 의사결정권자가 될 필요가 있구나 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 박 당선자를 맞이하는 이공계 사람들의 심정도 이와 같으리라고 여겨진다. 인문계 출신의 최고 의사결정권자에게는 구구절절이 필요성과 중요성을 설명해야 한다. 어려운 용어도 쉽게 바꾸어야 하고, 다른 분야와의 관계도 설명해야 하는 등등. 게다가 자투리 시간이라도 얻어내기 위해 가뭄의 마른 물줄기와 같은 부족한 인맥을 총동원해야 한다.

더욱이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설명을 들어도 맥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할 수밖에 없기에 공감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실행에는 시간이 걸리는 게 현실이다. 립서비스에 그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바쁜 만큼 현장에 오는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가깝게는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 취임사에서는 과학의 중요성을 언급하고 관심 표명도 약속했으나 취임후 6개월 동안 '과학'이란 용어는 아예 사용도 안했던 씁쓸한 기억이 남아 있다. 박 당선자에게는 최소한 이같은 번거로움과 의례적인 관심 표명은 없을 것으로 기대된다.

본인의 전공도 그러하지만 부친인 박정희 대톨령이 경제건설과정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알고 과학자들의 사기를 올려주며 과학기술을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삼은 선례도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은 예산도 예산이지만 잦은 현장 방문으로 과학자들의 사기를 하늘 높이 끌어올렸다.

최형섭 전 장관은 과학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틈나는 대로 연구현장을 방문해 관심을 표명한 것이 과학발전의 중요 요소였다고 증언한다.
 


 

과학기술분야 종사자들이 대체로 박 당선자를 지지한 이유는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과거의 영광을 재현해보자고 하는 공감대가 있고, 거기에는 박 당선자가 적임자일 것이라는 기대가 아닌가 여겨진다.

박 당선자의 이공계 관련 행보가 기대되는 가운데 이공계, 특히 과학현장에 있는 과학자들의 자세변화도 요구된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은 수동적 입장이었다. 예산 등 지원은 많을수록 좋고, 연구에 있어서도 간섭하지 말고 자유롭게 연구하게 해달라고 주장해왔다.

그 결과 이전에도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기는 했으나 1993년의 문민정부 이후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이명박 정부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 예산은 가파르게 늘었다. 약 20년간 끊임없이 증가하며 GDP 비율로 세계 4위에 이를 정도이다.

하지만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시간을 두 번 지나며 과연 지원에 걸맞는 성과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국민이 묻기 전에 과학자들 스스로가 자문하고 답을 내놓을 필요도 있다. 과학기술계를 10여 년 지켜본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과학계 스스로의 노력이 아쉽다.

과학기술이란 것이 성과를 얻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임을 백분 인정하면서도, 이 투자가 언제 가시화가 될 것인가를 생각할 때 해답이 명료하지가 않은 게 현실이다. 이공계 출신 대통령을 맞이하며 지금 과학계가 해야할 일은 기대와 요구에 앞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를 거꾸로 물어보는 일이 아닐까한다.

케네디 대통령이 국가에 무엇을 바라기에 앞서, 국가에 무엇을 기여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 달라고 했는데, 그 말이 그대로 과학계에 적용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이공계 대통령을 맞이하며 과학기술이 21세기의 진정한 성장엔진이 되기위해서는 과학계가, 현장의 과학기술인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를 논의하고 해답을 구해야 한다.

과학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 등 기본을 다시 한 번 되돌아 보고, 이공계 대통령이 성공해 역사에 남도록 하기 위해서는 같은 분야에 속하는 사람들이 능동적으로 자기 역할을 재점검하는 역발상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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