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업계부터 예술인까지…주1회 '열린 대화' 이색 시도
"좁고도 넓은 대덕" 이웃영역 이해하며 과학동네 문호 '활짝'

문제 하나. 여의도 면적의 24배 크기. 50여 곳의 연구·교육기관과 1400개의 첨단기술기업들이 밀집해 있다. 전체면적 중 절반 가까운 40%가 녹지이고 주택과 자녀교육, 문화복지시설 또한 두루 갖춰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쾌적한 계획도시의 전형으로 불리는 이곳은?

문제 둘. 자칭타칭 대한민국 최고 두뇌들의 집합소. 전체 종사자 6만여 명 가운데 석사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만 2만 명이 넘는다. 우리나라 석박사 10명 중 1명이 모여 있는 셈. 그러나 구성원 대다수가 "자연도 좋고 살기도 편한데 딱 하나, 이웃들이 어디서 뭐 하는 사람들인지 도통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이곳은?

12년째 과학동네의 크고 작은 소식을 전국에 발신해온 대덕넷도 궁금했다. 내년이면 40주년을 맞게 되는 대덕이 현재 가진 자산은 얼마이고 역량은 또 어디까지인가. 기자들이 발냄새 나게 뛰어다니며 '대덕의, 대덕에 의한, 대덕을 위한' 기사들을 수없이 생산했지만 사안별 접근만으로 대덕의 광범위한 퍼즐을 온전히 맞추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시작된 대덕넷의 자유 소통 프로젝트 '쉘위토크(Shall we talk)'가 26일 이호성 KIST유럽연구소장과의 대화를 끝으로 1년간의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지난 4월 17일 장세정 한국원자력연구원 선임기술원을 시작으로 9개월간 모두 36명의 과학동네 구성원들이 이른 아침 대덕넷을 다녀갔다.

◆높으신 기관장부터 대학교 초년생까지…쉘위토크에서 맞춰보는 '과학동네 퍼즐'
 

ⓒ2012 HelloDD.com

매주 수요일 오전 8시30분. 대덕넷 교육장은 늘 부산스러운 열기로 가득해졌다.

'대덕의 열린 소통과 이해'를 추구하는 프로그램 취지에 십분 공감한 강연자들은 때로 정해진 시간을 훨씬 넘겨 가면서까지 열정적으로 소속기관과 자신을 소개하고 이해와 협조를 요청했다. 이른 아침부터 눈빛이 빛나기는 대덕넷의 기자들과 구성원 역시 마찬가지. 강연자들과 나누는 대화와 질문답 속에서 늘 잘 안다고 생각했던 대덕의 놀라운 면모들을 새롭게 알아가는 기쁨에 푹 빠졌다.

KAIST의 제1호 박사이자 대덕연구단지의 오랜 터줏대감인 양동렬 교수는 준비된 원고 없이도 특유의 달변과 유머로 상대를 무장해제시켰고, 이승종 연구재단 이사장은 어린이용 과학실험 도구 하나만으로 기관의 목적과 지향점을 고스란히 이해시켰다.

쉘위토크 초반기인 4월에는 특히 과학계의 이슈 인물들이 대거 대덕넷을 찾았다. 과학벨트의 중핵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의 오세정 초대원장이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와 노벨상'을 주제로 청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강대임 표준과학연구원장이 알쏭달쏭한 '표준의 세계'를 설명하며 산업과 일상생활 곳곳에 숨어 있는 표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쉘위토크는 예상밖 큰 앎의 즐거움 속에 한 회 한 회 열기를 더해가던 중, 또 전혀 눈치채지 못했던 큰 슬픔과도 함께했다. 벚꽃이 화사하게 꽃망울을 터뜨리던 봄, 예의 그 감자같은 소탈한 웃음과 언변으로 대덕넷 모두를 감화시켰던 故 정혁 생명공학연구원장. 그는 불과 수개월 뒤 다시 올 수 없는 먼길을 떠나기에 앞서 쉘위토크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연구자는 누구보다 성실한 자세와 윤리의식을 갖춰야 한다. 크든 작든 책임을 남에게 미루지 말아야 한다."

◆과학기술 이해하고 문화예술은 음미하고…대덕에 활짝 열린 공감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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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여름으로 접어들며 쉘위토크는 더 활짝 문을 열었다. 과학기술계 인사들이 주축이 됐던 초반과 달리 기업인과 문화예술인,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대덕과 살을 섞고 있는 이라면 누구에게나 문호를 개방한 것이다. 강연자뿐 아니라 청중 속에도 알음알음 소식을 듣고 온 일반인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자전거 기자'로 유명한 윤희일 경향신문 기자를 비롯, '나무박사'인 서병기 배재대 조경디자인학과 교수, 박상언 대전문화재단 이사장, 계룡산 도예촌의 윤정훈 도예가, 대흥동 원도심의 전창곤 프랑스문화원장, 이지호 이응로미술관장 등이 대덕넷을 찾아 자신들의 치열한 삶과 문화예술세계를 나눴다. 연구단지와 함께 대덕의 큰 축을 이루는 대덕밸리 기업인들의 발길 역시 끊이지 않았다.

정태희 삼진정밀 대표는 '더럽다, 힘들다'는 오해와 편견 속에서도 R&D를 통해 끊임없이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는 제조업계의 현장 소식을 실시간으로 전했고, 국내 최초로 전자현미경을 상용화한 이준희 코셈 대표는 모범적인 산학연의 역할모델을 제시했다. 대덕의 주인공들이라 할 수 있는 연구소의 핵심인재들은 끊임없이 기관의 비전과 특징을 홍보하며 자신의 인생이 깃들어 있는 일터에 대한 깊은 애정을 표현했다.

최병관 지질자원연 팀장, 이상민 KISTI 팀장, 이정원 ETRI 연구원, 윤현진 KIRD 박사, 이성휘 기계연 선임기술원 등이 그들이다. 쉘위토크의 가장 어린 강연자는 김진은 KAIST 학생의 차지였다. 재학생들만의 힘으로 꾸리는 'ICISTS-KAIST' 행사를 더 넓게 알리기 위해 대덕넷을 찾은 김 양과 동료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은 '과학동네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역할과 활동으로 고민하는 대덕넷 식구들에게도 새로운 아이디어와 감동을 선사했다.

◆'소통과 공감'은 성공의 또다른 이름…"내년엔 우리, 더 자유롭게 얘기할까요?"

26일 열린 올해 마지막 쉘위토크에서 한 외부 참석자는 이런 바람을 남겼다. "대덕이 성공하려면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정보의 소통, 서로에 대한 이해 역시 함께 발전해야 한다.

" 26일을 끝으로 잠시 휴지기에 들어가는 대덕넷의 자유 소통 프로젝트 '쉘위토크(Shall we talk)'는 올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에는 화자와 청자의 외연을 더 넓게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대덕의 과학기술인·기업인과 6만여 구성원뿐만 아니라 과학동네와 이웃해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참여를 통해 '대덕'의 큰 퍼즐을 이해하고 완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대덕 대표 소통 프로그램'으로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2012 'Shall We Talk'를 통해 과학동네 소통과 공감의 다리를 놓은 36명
대덕구성원들의 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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