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민화 KAIST초빙교수(벤처기업협회 명예회장)

2009년 미국 발 금융위기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암울한 경제의 환경 속에서 작은 모임인 창조경제연구회를 시작하였다.

창조경제연구회가 추구했던 목표는 대한민국의 선진국 진입 전략 연구였다. 대한민국은 최빈국에서 최단 시간에 2만불대 중진국 진입한 효율경제의 최우등생이었으나 2000년 이후 정체상태에 있었다. 혁신의 기업가 정신은 급감하고 있었다.

2018년으로 예상되는 고령화 사회 진입까지 남은 기간은 불과 10년 미만이다. 뭔가 획기적인 대안없이 과연 대한민국이 일류국가로 도약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화두였다. 마이클 포터는 경제 발전단계로서 요소주도 경제에서 혁신주도 경제를 거쳐 효율주도 경제로 발전한다는 이론을 제시한 바가 있다. 이러한 경제발전단계에 창조경제라는 또 하나의 경제발전 단계를 제시해 보고자 한 것이다. 통상적인 혁신 주도 경제를 넘어 창조경제로 진입하는 지름길을 찾고자 한 것이다.

그렇다면 혁신경제와 새로운 창조경제는 무엇이 다를까? 혁신에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창조적 아이디어와 강인한 실천력이다. 지금까지 혁신에서 이 두 가지 요소 중 대체로 실천력이 더 중요한 요소를 차지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돈과 사람과 시간이 필요했다. 새로운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실험 설비를 구비해야 하고, 이를 시험생산하기 위한 파일럿 플랜트가 필요하고 이어서 대규모 생산시설과 이를 판매하기 위한 판매조직이 필요했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창조적 아이디어가 차지 하는 비중은 그다지 크지 않았고 실천력이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 창조적 아이디어를 구현하기 위하여 숱한 실험을 해야 되고 시제품을 만들고 생산 공장을 구축해야 한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글로벌 유통은 또 하나 넘기 힘든 과제이다.

그런데 세상이 바뀐 것이다. 창조적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비용과 시간이 극적으로 감소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생태계 중심의 새로운 창조경제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창조경제'란 단어는 2001년 존 홉킨스가 영국에서 처음 주창한 개념이었다.

IT버블 붕괴 이후 영국의 새로운 산업을 문화 컨텐트와 같은 창조산업 중심으로 발전시킨다는 전략이고 모든 사람들이 창조적 업무에 몰입하는 경제구조를 창조경제라고 명명한 것이다. 실제로 해리포터와 같은 막대한 문화수출을 하는 영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훌륭한 전략설정이 아니었던가 한다.

불행히도 영어권이 아닌 한국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핸디캡이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창조성이 쉽게 구현되는 분야가 문화산업이었던 것이다. 호킨스의 15개 창조산업 분야 중 기술 분야가 1개에 불과한 이유가 바로 창조성 발현 과정의 어려움 때문이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2009년 창조경제연구회에서는 이런 상황이 바뀌었다고 결론 내리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로 생태계 기반 혁신 때문이다. 수많은 전략적 제휴와 아웃소싱이 창조적 아이디어의 구현을 극적으로 쉽게 만들어 주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서 당시 아이폰을 주목하였다. 아이폰이 앱스토어를 열기 전까지는 컴투스와 게임빌과 같은 한국의 모바일 게임업체들은 전세계의 개별 통신사에 수많은 상이한 피처폰을 상대로 게임을 올리기 위해 악전고투를 거듭하고 있었다. 엄청난 시장 진입 비용이 소모되는 과정이 글로벌화였다.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경제 규모가 되지 못했다.

그런데 앱스토어는 전세계에 단일 플랫폼으로 통신사업자에 관계없이 창조적 아이디어에 의거한 앱을 올리면 간단히 유통이 된다. 유통의 장벽이 돌파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소프트웨어는 아이디어가 구현능력보다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소프트웨어, 즉 메타 기술의 발전이 극적으로 생산성을 향상 시켰다.

소프트웨어 생태계에서 수많은 오픈 소스 프로그램들이 공유되고 있다. 이들 오픈 소스를 활용하면 과거 IBM의 방대한 연구진들이 하던 수준의 제품을 개인이 일주일이면 만들 수 있다. 유통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의 개발 플랫폼이 생태계 형태로서 생성된 것이다. 그런데 하드웨어의 경우에도 상황은 돌변하고 있었다.

과거 필자의 메디슨 창업 당시에는 아웃소싱과 제휴 파트너가 없었기에 키보드에서부터 케이스까지 직접 만들어야 했다. 우리의 핵심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것 보다 비 핵심 분야를 구현하는데 더 많은 돈과 시간이 투입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하드웨어의 개발 플랫폼이 형성되어 있다.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필요한 요소 기술들을 제공한다. 3D 프린터와 같은 차세대 생산수단이 프로토타입(prototype)을 신속히 만들어준다. 심지어는 만들어보지 않고도 성능을 검사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기술들이 극적으로 발달하고 있다. 고난도의 비행기술 교육도 직접 위험한 비행기를 몰지 않고도 시뮬레이터를 통해서 훈련이 가능하다. 위험한 외과 수술을 실제 환자 없이 교육시킬 수 있다. 한마디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개발 생태계가 급속히 다양화되어 구축되었기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에 투입되는 돈과 시간과 사람이 극적으로 감소하게 되었다.

선진국일수록 직업의 종류가 많은 이유는 바로 생태계 중심의 경제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디어의 구현이 극적으로 쉬워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제는 창조성이 경쟁력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경제를 창조경제라고 명명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창조적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들이 쉽게 창업을 하게 된 것이다. 바로 생태계 기반의 가벼운 창업(Lean Startup)이 창조경제 현상 중 하나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1인 창조기업 정책이 탄생하게 된다. 창조경제의 대표적인 현상은 수익의 원천이 기술에서 지식재산권으로 이전되는 것이다. 이제 지식재산권 거래 산업은 연간 1조 달러를 넘어 세계 최대 산업으로 부상하고 있다. 삼성과 애플의 특허전쟁도 그 한 단면일 뿐이다.

S&P 500대기업의 연구개발투자는 감소하나 지식재산권 투자는 증가하고 있다. 이제 연구개발 그 자체는 수많은 외부 벤처 기업에 아웃소싱하거나 인수합병이라는 개발혁신을 통해서 획득해 나가고 있다. 경제의 중심이 지식재산권과 고객관계로 이전하면서 기업의 경쟁 패러다임은 창조성을 중심으로 전개되게 된다. 경쟁을 위한 가장 중요한 전략이 바로 협조가 되는 ‘초협력 사회’로 접어 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창조경제에서는 경쟁방정식이 과거 산업 사회와 완전히 달라진다. '인건비 더하기 재료비'라는 산업사회의 경쟁방정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창조경제에서는 혁신 비용을 판매 수량으로 나눈 창조원가가 경쟁력을 좌우한다.

여기서 창조경제 패러독스가 발생한다. 창조경제 패러독스란 분자인 혁신과 분모인 시장규모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기업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혁신에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중소 벤처는 시장에 취약성을 가지고 있다.

결국 창조경제에서는 필연적으로 기업들은 분할된다. 영화산업이 분할되었고, 섬유산업이 분할되었고, 게임산업이 분할되었고, 방송산업이 분할되었다. 분할된 기업들이 서로 협조를 한다면 창조경제는 협력의 경제로 진화하게 된다.

이제 개별기업의 경쟁이 아니라 기업생태계간의 경쟁으로 이전되면서 경제는 초 협력 공생경제로 진화하게 되는 것이다. 창조경제 연구회가 출범한 이유다. 창조경제에서는 창조경제 패러독스를 만족시키기 위한 대안으로 혁신과 시장역량이 분리된다.

앱스토어와 같이 시장을 담당하는 기업과 앱과 같이 혁신을 담당하는 기업들이 분리된다. 혁신을 담당하는 기업 중에서도 앵그리버드의 로비오와 팜빌의 징가와 같이 거대기업들도 등장한다. 그들은 플랫폼내에 또하나의 플랫폼도 형성하기도 한다.

이제 창조경제는 다양한 혁신과 거대한 시장들로 연결되는 구조로 진화한다. 혁신과 시장을 담당하는 벤처와 대기업이 가장 효율적으로 협력하는 국가가 21세기 강국이 된다. 국가를 넘어서 협력할 줄 알 때에 진정한 글로벌 강국이 된다.

여기에 반드시 필요한 단어가 공정거래이고 그 결과가 바로 경제민주화다. 경제민주화란 제로섬게임에서 부의 분배를 놓고 갈등하는 구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경제민주화는 혁신과 시장이 결합하면서 부의 창출과 분배가 선 순환되는 구조가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창조경제는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 경제민주화라는 꽃을 피우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혁신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혁신에 대한 보상이 달콤해야 한다. 수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이 벤처에 뛰어드는 것은 자기의 창조적 아이디어를 구현했을 때 이를 수천 만불, 수 억불에 사주는 인수합병(M&A)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작년 불과 직원 13명의 인스타그램을 페이스북이 12억불에 인수한 사례를 보라. 젊은이들은 열광하고 몰려들게 된다. 혁신이 촉진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마도 엔지니어 열두 명을 100만 불씩 주고 데려오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비용이 1%밖에 안 든다.

그러나 이는 단기적인 시각이다. 사람 빼오기는 당장 대기업의 비용절감을 시켜줄지 모르지만 더 이상 창조경제에 지속 가능한 혁신이 확대되지 않게 된다. 또한 이는 영업기밀 침해라는 명백한 불법이다. 혁신이 확대될 때 대기업의 시장이 빛을 발하고 대기업의 시장이 확대될 때 중소벤처의 혁신이 힘을 받는다. 대기업과 중소벤처는 상호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협력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다.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혁신성은 20배 이상 차이 난다는 것은 많은 혁신 연구에서 확인 된 바 있다. 반면에 시장역량에서는 대기업이 수 십 배의 역량을 갖는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이 둘을 결합하면 모두에게 상생구조가 된다.

벤처기업이 스스로 개발한 창조적 제품으로 전세계 시장을 개척 하려 한다는 것은 고비용 구조일 뿐만 아니라 실제로 가능성이 높지 않다. 대기업이 모든 혁신을 내부에서 하려는 것은 기업 문화상 힘들기도 하거니와 벤처기업에 비해 10배 이상의 고비용 구조가 된다.

결론은 오직 하나다. 바로 대기업의 시장과 중소벤처의 혁신이 결합하는 개방혁신이다. 이러한 개방혁신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창업활성화의 비밀이다. 혁신의 성과를 사주는 시장이 활성화되면 혁신은 더욱 활성화 된다.

여기서 창조경제, 경제민주화에 이어 또 하나의 화두인 혁신시장이라는 화두가 설명이 될 것이다. 혁신시장을 구축하는 능력이 21세기 국가의 능력이다. 과거 산업사회의 재화의 시장형성이 국가의 경쟁력이었던 것 같이 이제는 혁신시장의 형성이 국가 경쟁력이다. 혁신시장에서는 지식재산권이 거래될 수도 있고 공동개발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공동시장 개척이 이루어질 수도 있고 더 나아가 인수합병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

인수합병과 같은 개방혁신은 국가의 부를 증대시킨다. 인수합병이 활발해지면서 창업벤처에 투자한 엔젤 자금들이 이익을 회수하게 된다. 이들의 이익을 다시 새로운 엔젤 투자로 선 순환시키면 창업은 더욱더 촉진된다. 바로 미국과 이스라엘의 벤처 생태계의 힘이다.

여기에 새로운 시도를 허용하는 유연한 국가의 구조가 필요하다. 국가는 이제 사전규제를 줄이고 사후평가를 확대해야 한다. 이러한 개방정부를 정부 3.0이라는 단어로 축약한다. 창조경제, 경제 민주화, 혁신시장, 정부 3.0은 21세기의 미래한국으로 가는 한가지 목표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인류사적 대변화인 스마트 혁명의 거대한 물결을 창조경제로 맞이하는 슬기로운 국가가 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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