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터득한 삶의 지혜 중에 하나는 똑똑한 사람과 사귈 때는 그로 인해 마음에 큰 상처를 입을 수도 있음을 각오해야 한다는 것이다. 천재들은 자기중심적이어서 자주 주위사람들의 가슴에 심한 상처를 주면서도 정작 자신은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의 천재성에 매료되어 그를 가까이 한다면 감정에 생채기가 나는 것쯤은 아랑곳 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천재는 사회성이 매우 부족한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어쩌랴! 우리가 누리고 있는 문명뿐만 아니라 사상과 문화에서도 괴팍한 천재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들이 부지기수인 것을. 융합과학은 어쩌면 천재와의 사귐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만나 상호 교류를 통해 두 영역을 아우르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것이 융합과학이라면 해당 연구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으로 사회성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강도 높은 융합을 원한다면 그에 걸 맞는 상호간의 사귐이 전제되어야 하며, 융합과학은 결국 서로 다른 영역의 연구자들 간의 소통에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자기주장을 펼치기에 급급한 사람들이 상호 합의점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상대방의 생각에 대해 비판이 앞선다면 융합과학은 더욱 멀어진다.

다른 사람들과 잘 사귀고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바른 대화법을 익혀야 한다. 대화법의 핵심은 자기주장을 펴기에 앞서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방송인 이숙영씨는 그의 저서 '맛있는 대화법'에서 재치 넘치는 '1:2:3의 법칙'을 제안하였다. '하나를 이야기했으면 둘을 듣고, 셋을 맞장구치라는 뜻'이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는 공감을 표시하거나 혹은 맞장구를 쳐야 하는 순간에 '그런데'라고 하고 상대방이 잘 모르고 있다고 생각되는 것에 대한 자기 설명을 늘어놓는 것이다. 혹 '그런데'를 굳이 언급해야겠다고 생각되면 다음에 만났을 때 하면 어떨까? '그런데'를 이 순간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강한 욕구를 주체하기 어렵다면 적어도 5분 정도는 지난 후에 하는 것이 바른 대화법이 아닐까? 많은 짐승들은 긴 주둥이를 가지고 킁킁대며 항상 주위에서 먹을 것을 찾고 있다.

인간은 진화과정에서 이 주둥이를 다른 곳에 감추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심리적인 주둥이가 퇴화되지 않은 채 남아서 지속적으로 주위로부터 자기에게 공감할 대상을 찾고 있다. 상대방을 무시하는 거친 대화를 하는 사람일수록 실상 주위의 공감에 더 굶주려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무튼 상호 공감하는 대화법을 익히지 않고 융합과학을 논하기는 어렵다. 바른 대화법에 기초하지 않은 융합과학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른 대화법을 지속적으로 가능케 하는 대화법은 기교가 아닌 상대방에 대한 사려깊은 배려와 존중이다.

이런 맥락에서 융합과학은 천재들의 게임이 아니라 남을 존중할 줄 아는 연구자들이 가장 민주적으로 펼치는 소통의 매개이다. 융합과학에는 조화로운 인간미와 정신적인 성숙함이 농축되어있다. 차가운 논리에 감성이 짓눌린 자신만의 과학에 너무 오래 머물러있었다고 느낀다면, 몇 주씩 계속되는 추위에 한번쯤 계획해보는 '따뜻한 남쪽나라'로의 일탈이라고 여기고 융합과학으로의 여행을 함께 나서보자.
 

유장렬 생명연 박사
유장렬 생명연 박사
융합과학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지만 현장에서 접목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유장렬 박사는 서로 별개라고 여겨지는 다양한 분야가 모여 합목적인 새로운 성과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장렬, 융합과학의 첫걸음'을 통해 연구자들의 고민을 파헤쳐보고 실현가능한 방법을 함께 모색해 볼 예정입니다. 유장렬 박사는 서울대 식물학 학사, 캘리포니아주립대 생물학 석사을 거쳐 미시간주립대에서 농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85년부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근무중이며 한국식물생명공학회 회장, 한국생물정보시스템생물학회장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SCI 등 주요학술지에 128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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