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 신임총장 기다리는건 축포 아니라 후유증·상처·위상 추락
또 외부인 총장에 우려…서총장 "다 잘했다"지만 강총장에겐 다 부담

서남표 KAIST(한국과학기술원) 총장은 임기를 마치고 오는 23일 미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후임인 강성모 총장은 같은 날 한국에 도착해 임기를 시작한다. 성대한 송별식·환영식까지야 언감생심이겠지만 바통터치도 없이 오고가는 모습이 어색하다. 그런게 '미국식'이라면 가타부타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떠나는 서 총장의 뒷모습은 영 개운치가 않다. 최근 여기저기 간담회나 인터뷰에서 쏟아내는 말이 가관이다. 6년 7개월동안 KAIST 총장으로서 영욕의 시간을 보냈으니 할 말이 오죽 많겠는가. 공(功)도 많은데 과(過)만 부각돼 쫒겨나듯 떠나는 심정이야 또 오죽하겠는가. 그래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잘했다"는 자평은 손이 오그라든다. 재임기간 가장 잘된 부분을 묻는 질문에 '모바일 하버'와 '온라인 전기차' 사업이라고 답한 대목에서는 오만함도 읽힌다. "한국에 다시 돌아오지 않겠다"는 말에는 풀리지 않은 감정의 덩어리가 보인다.

빈말이라도 국민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는 흔적은 찾아보기 어렵다. 본인 때문에 상처를 받았거나 지금도 상처받고 있을지 모를 구성원들에게 형식적으로나마 미안함을 표시했다는 흔적도 없다. 아무리 서운해도 떠날때는 "고마웠다"고 말하는게 인지상정이다. 아무리 유능해도 "나는 잘한거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도와줬기 때문"이라고 겸손해 한다. 말이라도 그렇게 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한때 싸웠던 사람들도 "내가 심했구나" 미안한 마음을 품는다. 떠난 이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한국식 작별은 그렇다.

어찌됐든 서 총장은 가고, 강성모 총장이 온다. 그를 맞이하는 것은 취임을 축하하는 꽃다발이나 축포가 아닐지도 모른다. 대학 지도부에 대한 불신, 곱지 않은 외부의 시선, 내부·외부와의 소통 단절 등 당면한 KAIST의 문제들이 먼저 그를 기다린다. 또 서 총장이 펼쳤던 개혁정책을 지속하면서도, 서 총장이 남긴 각종 부작용과 상처를 치유해야 하는 쉽지 않은 임무가 목전에 있다. 떠나는 서 총장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잘했다"고 했다지만, 도착하는 강 총장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손을 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

강 총장은 UC머시드대 총장 시절 '부드러운 캡틴'으로 불렸다고 한다. 총장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총장실 개방이었다. "학생들의 의견을 직접 듣고 대화를 나누겠다"며 학생 대표를 집으로 초청해 저녁식사를 함께 하기도 했다. 지나가는 학생을 붙잡아 차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는 일화도 들린다. UC머시드대 소재지의 한 지역신문은 퇴임을 앞둔 그를 이렇게 표현했다. "정치적이지 않고 사실만 추구하는 과학자이며, 인근 주민에게 보여준 우아한 미덕에 감사를 표한다."

이런 소통형 리더를 신임총장으로 선임한 것은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KAIST 총장 서치 커미티(Search Commette) 위원으로 활동했던 한 기관장은 "지금 KAIST는 힐링이 필요하다.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총장이 되어야 한다"고 자주 언급했다. 어디 그 기관장 뿐이겠는가. 지난 몇년 동안 학생과 교수의 잇단 자살, 구성원간의 반목, 대학 지도부에 대한 불신 등으로 잡음이 끊이지 않았던 KAIST를 지켜봤다면 누구나 그런 총장상을 그려봤을 것이다.

하지만 걱정스러운 대목도 적지 않다. KAIST는 세번 연속 외부인사, 그것도 미국인이나 재미 과학자를 총장으로 맞는다. 러플린 전 총장과 서남표 총장 모두 큰 기대를 받고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하지만 그들의 귀국 표정은 올 때와 사뭇 다르다. 공과는 차치하고라도 문화적·제도적 차이에서 오는 혼선, 구성원과의 소통 부족에 따른 후유증을 남긴 것은 분명하다.

이질감과 차이, 혹은 이해부족이 불러온 측면이 큰데 그렇다면 강 총장도 예외일 수 없다. 실제 올해 68세인 강 총장은 연세대 재학 시절인 20대 중반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미국인'에 가깝다. 그가 와서 분위기에 적응하고, 한국 대학의 문화적·제도적 차이를 이해하고, 내·외부 문제를 파악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총장 집무를 수행해도 될 만큼 지금의 KAIST 문제는 그리 녹록치 않다. 구성원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이번에는 내부인사가 되어야 한다고, 또 될 것이라고 기대를 가졌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서남표 총장은 오는 23일 미국으로 떠난다. 바통을 이어받은 강성모 총장은 서 총장의 개혁을
계승하는 동시에 그가 남긴 후유증과 상처를 치료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사퇴압박에 시달렸던 서 총장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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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소통 못지 않게 외부와의 소통 두절 문제도 심각하다. 실리콘밸리의 스탠포드대학과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지만, KAIST가 그럴 수 있는 역량이나 창구를 갖췄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대덕에서의 KAIST 역할과 위상이 매우 중요한데도 서남표 총장 재임 시절 대덕과의 소통·교류는 한국생명공학연구원과의 통합 시도(결국 실패로 끝났지만)가 거의 유일해 보인다.

서 총장은 KAIST의 세계적 순위를 올리기 위해 동분서주했지만 정작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다. 대덕이 한국의 실리콘밸리처럼 되지 못하는 이유로 많은 전문가들이 KAIST 문제를 거론한다. 대덕 내에서의 위상과 역할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인이면서도 한국이 낯선, 과학자이면서도 대덕과는 물리적·심리적으로 동떨어져 있던 강 총장이 이런 외부와의 소통에도 얼마나 빨리 적응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강 총장은 당연히 서 총장의 개혁정책과 업적을 이어가야 한다. 그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는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서 총장과의 철저한 '단절'이다. 그것은 강 총장이 KAIST의 위상을 다시 세우기 위한 '충분조건'이다. 서 총장 재임시절 남겼던 각종 후유증과 부작용, 그리고 그것을 가져왔던 잘못된 리더십과의 신속한 단절이다. 서 총장의 귀를 막고 입 역할을 하며, 서 총장을 '일방적 소통'의 감옥에 가뒀던 사람들과의 과감한 단절도 당연히 포함된다.

총장실 문을 열어놓고 수시로 구성원과 대화하는 소통의 자세도 필요하지만, 서 총장이 '대못질'을 해놓은 잘못된 사업이나 인사가 있다면 이것을 뽑아내는 결단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급하지만 강 총장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탈 때 어떤 인터뷰를 할까 궁금하다. 임기 동안 분명 잘한 일도 있고, 못한 일도 있을 것이다. 다른건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잘했다"고 자평하는 인격의 소유자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잘한 일은 다른 사람의 공으로, 못한 일은 자신의 허물로 삼을 줄 아는 인격의 소유자이길 바란다. 그래서 퇴임 인터뷰에서는 자기의 치적이 아니라 구성원과 국민들에게 고마움을, 혹은 미안함을 우선 표시하고 "수시로 한국을 찾겠다"고 얘기할 수 있는 총장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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