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미국군은 예멘에서 알카에타 요원 6명이 탑승한 지프차를 폭격했다. 하지만 그들을 폭격한 소형 전투기에는 조종사가 탑승하고 있지 않았다. 그것은 미군의 무인 전투기 프레데터였다. 최근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전직 무인전투기 조종사가 그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고통스러운 경험을 고백한 기사가 실려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브랜든 브라이언트라고 알려진 이 미군 조종사는 뉴멕시코 주의 작은 사무실, 즉 무인전투기 조종실에 근무하였으며, 십 여 개의 모니터와 복잡한 계기판들을 보며 지구 반대편을 날아다니는 무인전투기를 조종하는 일을 5년 동안 했다고 한다. 어느날 그는 아프가니스탄 상공을 날고 있는 무인전투기에서 보내온 화면을 통해 폭격목표를 확인하였고 명령을 내리는 버튼을 눌렀다. 16초가 되면 무인전투기에 장착된 헬파이어 미사일이 발사되며, 발사 7초전까지는 발사를 중지시킬 수 있다. 발사 3초전, 모니터 한 쪽 모서리에서 어린 아이가 걸어나왔다. 다음 순간 먼지 구름이 피어올랐고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이 일로 브라이언트는 자신의 일에 대해 회의감을 갖게 되었고 결국 일을 그만뒀다고 한다.

◆미래 전쟁의 주역은 로봇이다
 

원격 조종되는 무인 폭격기 프레데터. ⓒ2013 HelloDD.com
군사용 로봇 분야에서 가장 앞선 미국은 현재 프레데터와 리퍼같은 원격 조종되는 무인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다. 또한 원격 조종로봇인 팩봇처럼 보병 수색대를 대신해 위험지역을 정찰하는 정찰 로봇도 있다. 미국은 2001년 '미래전투시스템(Future Combat Systems)'계획이 의회의 승인을 얻으면서 전투로봇 개발을 본격화하였다.

미래전투시스템은 전투의 개념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비전을 갖고 시작된 것이다. 미래전투시스템으로 인해 미국은 타국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투력을 갖게 되고, 미국군의 희생은 최소화할 수 있다. 압도적으로 우월한 전투력이란 로봇을 전투에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달성될 것이다. 현재 미군은 전 세계적으로 대략 2만 대에 육박하는 군사용 로봇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대부분 직접 전투를 수행하는 로봇이 아니라 군용 장비를 운반하거나 정찰을 하는 등의 전투 보조 로봇들이다. 하지만 무인 전투기나 무인 장갑차 등 전투에 직접 투입될 수 있는 것들도 있으며, 앞으로 전투를 직접 수행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하는 것을 미국군은 목표로 삼고 있다.

전투에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로봇을 개발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 아니다. 프랑스, 이스라엘 등의 나라가 군사용 로봇 기술에서 미국을 바싹 추격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2003년부터 국방로봇이라는 이름의 바퀴형 견마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전투로봇은 군사적 유용성이 매우 클 뿐만 아니라 인간(아군)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 나라에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런데 로봇에게 전투력을 부여하는 것이, 다시 말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것이 올바른 일인지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전투 로봇은 아무리 자동화되었다고 하더라도 인간 없이 작동하지는 않는다. 무인 전투로봇은 사람에 의해 원격제어 된다. 하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 인간의 개입 없이 전투를 수행하는 자율형 전투로봇이 등장할 것이다. 자율 전투로봇은 인간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스스로 상항을 파악하고 공격 목표를 결정할 것이다.

무인 전투로봇이건 자율형 전투로봇이건 간에 전투로봇을 개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득은 분명하다. 아군 병사의 희생을 줄일 수 있다. 작전의 난이도나 전투요원의 전투수행 능력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로봇 병사는 지휘관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며 무슨 일이든 수행할 것이다. 고도로 숙련된 전투요원도 감당하기 어려운 작전도 로봇 병사는 무난히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로봇 병사는 감정이 없으므로 망설임이나 심리적 동요로 인해 작전을 망치는 경우가 없을 것이다. 또한 로봇 병사의 전투력, 파괴력은 인간 병사와 견줄 것이 못된다. 전투의 효율성 면에서 볼 때 로봇 병사는 특급 병사를 훨씬 능가하는 매우 훌륭한 군인이다.

◆인간을 죽일 권한을 부여받은 로봇
 

▲미래에는 전장에 전투하는 로봇이 투입될지 모른다. ⓒ2013 HelloDD.com
 하지만 전투로봇, 특히 자율형 전투로봇과 관련하여 우려되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간 살상을 목적으로 전장에 투입된 전투로봇이 정말 작전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을까? 로봇 병사는 적군과 아군을 어떻게 구별할까? 군인과 민간인을 구분할 수 있을까? 전쟁 중이라고 해도 전투와 무관한 민간인을 살상하는 것은 국제법상 심각한 문제로 취급되고 있다.
 
전투지역과 비전투 지역을 구분해서 로봇에게 알려주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지만, 실제 상황에서 전투 지역과 비전투 지역이 그렇게 분명하게 구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전투 지역에 발을 들여 놓은 그 순간 전투 요원으로 간주되어도 될까? 그리고 전투 지역은 전쟁 중에 수시로 바뀐다. 이 점을 로봇이 이해할 수 있을까? 로봇 병사의 압도적인 전투력과 무감정에서 비롯되는 무자비함을 감안할 때 이런 물음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져야 한다.
 
로봇에게 인간을 살상할 권한을 주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인간에게 다른 인간을 살상할 권한을 주는 것도 올바르다고 할 수 없는데, 그 권한을 로봇에게 줄 수 있을까? 인간과 로봇이 벌이는 전투를 정말 전투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것은 처형 내지는 살육이 아닐까? 인간과 로봇이 벌이는 전투를 살육이 아닌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고민은 로봇이 갖고 있는 압도적인 전투력 때문이다. 전투로봇이 갖게 될 전투력은 기술적 우위라는 말로 다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자율형 전투로봇이 등장한다면 그런 로봇의 압도적 능력은 기술적 우위라는 표현으로 덮어지지 않는다.

고대 시대에 사자같은 맹수에게 사람을 죽이게 하는 처형 방법이 있었다. 적진에, 그것도 기술적으로 낙후하여 전투 로봇을 생각할 수 없는 적진에 로봇 병사를 투입해 인간인 적군과 로봇인 아군이 교전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이것은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등장한 그많은 전투의 한 장면일까, 아니면 일종의 처형 장면일까? 전쟁과 처형은 같은 것일 수 없다. 전쟁은 국가 혹은 그에 준하는 권위를 갖는 집단 간에 발생하는 무력을 수반한 분쟁을 의미한다. 전쟁에는 모종의 규칙이 존재하며, 그래서 국제법에서도 전쟁에 관한 규제가 있다. 전쟁은 힘의 우열은 있지만 쌍방간에 벌어지는 교전이다. 처벌은 죄를 지은 자에게 그 죄에 상응하는 벌을 내리는 일방적 제재이다.

◆현실 같지 않은 전투 상황
 

▲프레데터와 리퍼 같은 무인폭격기를 원격조종하는
 조종실.
ⓒ2013 HelloDD.com
전투 로봇과 관련된 또 하나의 문제는 로봇의 문제 있는 행동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전투 로봇이 작전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문제 있는 행동, 이를테면 전쟁범죄에 준하는 행동을 했을 때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책임의 주체를 분명히 해야 하지만 책임 소재를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 전투 로봇을 만든 제작자나 프로그램을 작성한 프로그래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아니면 전투 로봇에게 명령을 내린 지휘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 작전의 목표를 알려주고 그것의 달성을 종용하였으므로, 실전 상황에서 자유로운 판단의 권한을 부여하였으므로 명령권자인 지휘관이 모든 책임을 지고 전범이 되어야 할까? 아니면 인간에 못지않은 자율권을 부여받고 실제로 그 권한을 행사한, 자율적 의사결정 능력을 가진 로봇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할까? 그래서 우리는 불의한 행동을 한 전투 로봇을 재판정에 세워야 하나? 비인도적 행위를 한 전투 로봇에게 어떤 처벌이 적당한가? 책임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는 행위나 사건에 관해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은 자동차에 제동장치가 없다는 말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버트 스패로우(Robert Sparrow) 같은 학자는 전투로봇의 행동과 관련하여 책임의 문제에 대한 분명한 답을 줄 수 없기 때문에 로봇을 전투에 사용하는 것 자체가 비윤리적인 행위라고 주장한다.

자율형 전투로봇이 등장하기 전 단계에서는 원격제어 로봇의 활용도가 클 것이다. 로봇이 전장에서 전투를 하고 안전한 지역에 위치한 조작실(cubicle)에서 인간이 전투 로봇을 조종하는 방식이다. 이런 전투방식은 작전 수행의 용이성과 전투의 간접성으로 인해 상상 밖의 문제들을 낳을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브라이언트의 사례처럼 오판의 가능성이 언제나 존재한다. 브라이언트의 오판은 매개 문제(mediation problem)에서 발생한 것이다. 브라이언트는 지구 반대편 상공의 무인전투기에 장착된 카메라에서 2~5초 간격으로 보내오는 화면을 통해 전장을 확인하고 상황을 파악하였다. 브라인언트처럼 조작실에 있는 인간 병사의 의사결정의 토대가 되는 정보는 지극히 제한적이다. 컴퓨터와 통신 장비가 알려주는 수치와 분석 정보에 토대를 두고 의사결정이 이루어진다. 이런 방식의 의사결정은 오판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파키스탄 주둔 미군의 무인폭격기 출격
 현황(2004-2011년) 출처: The Economist
ⓒ2013 HelloDD.com
조작실의 인간이 화면을 통해 전장을 확인하고 키보드나 마우스, 혹은 조이스틱을 이용해 화면 속 전장의 적군(인간)을 살상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실제로 적군을 살상하는 것은 조작실의 인간 병사이지만 전장에 참여하는 체험의 직접성은 로봇 병사의 몫이므로 조작실의 인간 병사는 전쟁의 참혹함이나 적군에 대한 공포, 죽음이나 고통에 대한 두려움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브라인언트는 실수로 어린 아이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혔지만, 이런 방식의 전투가 지속되고 내성이 생기면 조작실의 인간 병사는 전투를 실제 전투로 인식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조작실의 인간 병사에게 나타나는 결여된 현실성은 실제 전투에서 과도한 폭력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스타크래프트 같은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듯이, 카운터 스트라이크 같은 FPS(first person shooter) 슈팅게임을 하듯이, 혹은 스틸 팬더스와 같은 워 게임을 하듯이 로봇의 시각 장치를 통해 전달된 영상 속의 인간들(적의 군인이나 민간인)을 게임 속의 몬스터나 캐릭터 정도로 인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원격 조작실 안의 인간 병사는 화면 속의 적군들에 대해 인간성에 대한 존경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연민이나 동정심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인 폭격기 같은 원격제어 로봇을 통한 전투는 작전 수행의 용이성으로 인해 작전 횟수를 증가시키고, 전투의 간접성, 다시 말해 아군의 인명 손실 부담 없이 전투를 벌일 수 있음으로 인해 폭격과 같은 작전 수립의 기준을 완화시킬 것이다. 실제로 최근 9년간 미국 국방부는 무인 폭격기의 숫자를 13배 늘렸으며 관련 예산도 매년 크게 늘리고 있다.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미국의 오마바 행정부는 무인 폭격기를 대테러 작전의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파키스탄의 미군 기지에서 무인 폭격기의 출격 횟수만 보더라도 조지 부시 행정부에 비해 오마바 행정부에서는 10배 이상 증가하였다.

◆정의로운 전쟁

전투로봇 기술을 비롯해 전쟁 기술의 발전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오히려 인도적 목적에 부합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목표물을 더 정밀하게 찾아내서 타격할 수 있는 기술은 전쟁에서 항상 문제가 되는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현대 무기는 점점 소형화되어 가고 있는데, 그것은 폭탄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정밀 타격이 가능해짐으로써 더 적은 폭약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3.4미터 길이의 폭탄이 지금은 0.5미터짜리 폭탄으로 대체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전쟁은 국제법을 통해 규제되고 있는데, 이것은 서양의 정의로운 전쟁(just war)의 전통과 관련되어 있다. 서양 중세에서부터 시작된 정의로운 전쟁에 대한 논의는 전쟁을 단순히 정치적 영역으로부터 도덕적 영역으로 옮겨왔다. 중세 서양인들은 전쟁에서는 상대적으로 올바른 쪽과 그릇된 쪽이 있다고 믿어왔다. 그러므로 전쟁을 통해 그릇된 쪽을 징벌하고, 전쟁 중에서 올바른 쪽을 지원하는 것을 명예로운 것으로 생각하였다.

어떤 전쟁이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세 가지 요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첫째, 전쟁이 국가의 법적 권위에 의해 선포되어야 한다. 둘째, 정당한 명분, 좋은 의도를 가지고 수행되어야 한다. 셋째, 올바른 수단을 사용하여야 한다. 이 세 가지 요건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충족시키지 않은 전쟁은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정의로운 전쟁의 관점에서 보면, 불필요하게 심각한 손상을 입히는 행위나 무기, 무차별적인 살상을 초래하는 이른바 대량 살상무기는 전쟁을 수행하는 올바른 수단이 될 수 없다. 재래식 폭탄과 핵무기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무차별적 인명 살상을 초래하는 무기들에 대한 국제적 규제는 이런 전통 속에서 시작된 것이다. 전투요원과 민간인의 구분, 전쟁 중이라고 하더라도 민간인을 보호하고 살상해서는 안 된다는 금지 규정도 이런 전통 속에서 생각된 것이다.

원격 조종되는 무인 폭격기를 사용하여 작전을 수행하는 경우, 아군의 인명 피해는 거의 없다. 또 무인 폭격기의 장점 가운데 하나가 소형이라서 적에게 발각될 염려가 적다는 것이다. 무인 폭격기에 장착되어 있는 미사일 역시 소형이다. 미사일에 의해 피해 범위를 최소화하여 민간인 등 작전에 무관한 인명이나 재산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이런 점들은 바로 정의로운 전쟁의 관점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미래의 자율형 전투로봇은 인간보다 월등한 전투력과 작전수행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전쟁이 수행될 가능성이 크다. 아마 지루한 공방전은 줄어들 것이다. 확실한 목표에 압도적인 피해를 입힘으로써 전쟁은 단기전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전쟁으로 인한 인명 피해와 재산상의 손실이 줄어들게 된다. 전쟁 기술의 발전, 전투 로봇의 개발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이렇게 주장할 것이다.

◆트루먼 대 앤스콤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관점은 전쟁을 정치적 영역으로부터 도덕적 영역으로 옮겨 놓음으로써 무분별한 전쟁을 막고, 전쟁에서 비인도적 행위를 감소시키는데 기여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제한된 경우이긴 하더라도 전쟁을 도덕적으로 정당화하는데 활용된 것도 사실이다. 정의로운 전쟁의 개념은 전쟁을 부정하기보다는 오히려 전쟁을 인정하고, 전쟁이라는 극단적 상황 안에서 한쪽의 상대적 정의를 함축한다. 그래서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개념이 주전론자들의 단골 논거로 사용되어 왔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정의로운 전쟁을 옹호하는 논거들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다소 과장해서 말하면,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였다. 인간 사회 도처에서, 거의 모든 시기에 크고 작은 전쟁이 있었다. 호전적이고 폭력적인 무리들로부터 가족의 생명과 재산, 국가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전쟁은 필요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전쟁은 도덕적으로 요구되기보다 실용적으로 요구되는 것처럼 보인다. 전쟁을 도덕적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옹호할 길은 쉽게 찾아지지 않을 듯하다.

만일 전투 로봇과 전쟁 기술의 개발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정의로운 전쟁의 개념을 들고 나온다면, 그것은 결과주의적 관점에서 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관점은 전쟁의 불가피성에 대한 가정을 바탕에 깔고 있다. 인간 세상에서 정말로 전쟁은 불가피한 것일까?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까? 평화주의자들은 이런 질문에 '아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그래서 평화주의자들은 정의로운 전쟁의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의 옥스포드대학에서 일어난 사건은 이 쟁점과 관련해 시사하는 바가 있다. 1956년에 옥스퍼드대학이 미국의 전직 대통령 해리 트루먼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로 결정하자 20세기 최고의 여성 철학자로 기록되는 앤스콤은 두 명의 다른 교수와 함께 반대 운동에 나섰다. 앤스콤은 트루먼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를 명령하였기 때문에 살인자라고 설명한 소책자도 제작하기도 하였다.

▲영국의 철학자 엘리자베드 앤스콤. ⓒ2013 HelloDD.com
트루먼은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대한 원폭이 정당했다고 주장했다. 원폭으로 인해 좀더 빨리 전쟁을 끝낼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많은 목숨을 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트루먼과 달리, 앤스콤은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고 하더라도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무고한 이들을 죽이는 것은 허용될 수 없으며, 그런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살인 이외에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앤스콤은 모든 종류의 전쟁에 반대하였다. 전쟁을 통해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될 것이기 때문이다. 트루먼은 전쟁의 조기 종결로 원폭으로 죽은 목숨보다 더 많은 인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앤스콤은 그런 주장은 수 천 명, 아니 수 백만 명을 무시무시한 재앙에 처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 한 명의 아기를 끓는 물에 던지는 행위가 바람직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반박하였다. 우리는 결과에 대한 지나친 고려나 결과에 현혹되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

◆전쟁 없는 세상의 꿈

정의로운 전쟁을 옹호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전쟁 기술의 발전, 공격기술의 정밀화와 무기의 소형화와는 다른 방향으로 생각을 전개하는 이들도 있다. 이들도 전쟁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전쟁이 반드시 인명살상과 파괴로 귀결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보는 듯하다. 이들은 정의로운 전쟁의 원리 하에서 치명적이지 않은 무기의 개발과 사용을 주장한다.

1928년 프랑스의 외무장관 A. 브리앙과 미국의 국무장관 F.B.켈로그는 국제 사회에서 '전쟁 포기에 관한 조약'을 이끌어냈다. 부전조약으로도 불리는 이 조약에 당시 세계 63개국이 비준을 하였다. 전쟁을 국제관계에서 명예로운 하나의 제도로 인정하는 대신에 전쟁의 불법화를 추구하려는 움직임도 여전히 존재한다. 전쟁 불법화 추진자들이 보기에 전쟁은 악의 근원이며, 전쟁의 종식은 전쟁을 불법화하고 어떠한 전쟁이라도 용인하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될 길이 열린다.

오늘날 전쟁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며, 전쟁 무기는 더욱 위력적이 되어 가고 있다. 좋은 의도로 개발되었다고 하더라도 전쟁 무기는 결국 인명을 살상하는데 사용된다. 인간의 진보라는 환상이 창과 유도탄의 차이에 의해 깨어졌으며 인간은 역사를 통해 지혜로워진 것이 아니라 더 교활해졌다고 한 아도르노의 말을 다시 한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참고 자료

마이클 왈저(유홍림 옮김), '전쟁과 정의', 인간사랑, 2009.
박정순, '마이클 왈쩌의 정의전쟁론: 그 이론적 구성체계와 한계에 대한 비판적 고찰', 철학연구 제68집, 철학연구회, 2005.
이상헌, '융합시대의 기술윤리', 생각의나무, 2012.
James T. Johnson, 'Just War', Encyclopedia of Science, Technology, and Ethics, pp.1097-1101.
'The ethics of warfare: Drones and the man', http://www.economist.com/node/21524876/print.

 

이상헌 교수
이상헌 교수
이상헌 교수는 서양철학을 전공했으며 현재 동국대학교 교양교육원 강의전담교수로 재임 중입니다. 연구 분야는 신생과학기술을 대상으로 하는 기술윤리, 기술철학, 비판적 사고와 글쓰기입니다. 주요 저서로는 '기술의 대융합(공저)' '인문학자, 과학기술을 탐하다(공저)', '대학생을 위한 과학글쓰기(공저)' 등이 있습니다.

이 교수는 '이상헌의 과학기술 속에서 윤리읽기'를 타이틀로 신생과학기술들을 윤리적 관점에서 되새겨 보며 인간의 행복 증진을 위해 최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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