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역대 두번째 산업계출신 이부섭 동진쎄미켐 회장
공업화학회 활동으로 과총 참여…과학+기술 화학결합 기대

"아직 취임까지 1년이나 남았기 때문에 제가 포부며 계획을 말할 시기가 아닙니다. 또 현재 회장님께서 잘 이끌어주고 계시고요. 다만 중견기업 CEO인 제가 이공계를 대표하는 단체의 수장이 된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희망과 자신감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27일, 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이하 과총) 정기총회에서 제18대 회장으로 이부섭 동진쎄미켐 회장의 선출이 확정됐다. 이 회장은 과총이 47년 역사를 거치며 배출한 총 13명의 전·현직 회장들 중 두 번째 산업계 출신이며 유일한 중견기업CEO다. 과총은 학술단체의 모임으로 시작되었으며 현재도 780여개의 학술단체가 소속돼 있는 특징 덕에 대체로 교육계나 연구계 출신 인사들이 이끌어 왔다.

이번에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전형적인 자수성가(自手成家)형 인물인 이부섭 회장이 당선되자 주변에 과총의 변화, 특히 과학계를 넘어 기술 분야를 아우를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 회장의 포부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찾아가보았으나 그는 특유의 인자하고 겸손한 미소를 지으며 "아직은 의견을 내거나 결심을 전할 단계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전했다. 이어 "과총 회장이 대통령직보다 인수기간이 더 길다"고 농담하며 "취임 전에는 내게 맡겨진 일들에 충실하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대신 그가 해소시켜준 궁금증은 그의 당선 과정. 그는 중견기업의 CEO인 그가 어떤 과정을 통해 과총에 참여했으며, 인지도나 경력 면에서 앞서는 후보들 사이에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는지에 대한 배경을 설명했다.

이 회장은 서울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화학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일찍부터 신제품 개발이나 사업화 등에 관심이 많았다. 1967년 자택 연탄창고에 실험실과 기계를 차려놓고 창업하기 전에도 한국생산성본부 기술부장, 한국사진필름 공장장 등 주로 산업계에서 일했기 때문에 학회 경험은 적었다. 그런 그가 학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10여년 전, 공업화학회 활동을 하면서부터다.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의 부름으로 찾아간 학회에서 그가 놀랐던 것은 두 가지. 학회의 열악한 사정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회원들의 열정이었다. "학회사무실에 갔더니 20평이 조금 못되는 공간에 논문과 책만 가득 차 있더군요. 가구는 책상과 책장이 전부고요. 한 달에 두 번 회의를 하는데 교수들이 강릉, 삼척, 대구 등등 전국 각지에서 올라와요. 오후 5시에 와서 9시까지 회의하고 다시 야간차를 타고 내려가는 거죠. 열악한 환경에서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논문 내는 것을 보니, 산업계에서도 함께 참여하면 내실도 다지고, 성과도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공업화학회는 이 회장을 시작으로 기업 CEO들과 교수들이 번갈아 간부를 맡으며 외연을 넓혀갔고, 10년 만에 5배 넘는 연간 예산 확보와 더불어 학회 발간 학술지 논문의 IF(Impact Factor)지수 상승 등 질도 높아졌다. 지금은 과총 내에서도 산업계-학계의 고른 참여를 통해 우수한 성과를 내는 학회로 손꼽힌다.

이 회장이 지난 10년간 꾸준히 공업화학회에 참여하며 발전을 이뤄낸 것과 함께 이번 선거에서 과총 이사진들의 신뢰를 얻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은 한국엔지니어클럽과 대한민국과학기술대연합(이하 대과연) 활동이다. 한국엔지니어클럽은 인지도가 높은 단체는 아니지만 1974년에 설립된 역사 깊은 모임이다. 경제개발계획이 진행되며 전국에 공단이 1만 여개가 만들어질 당시 정부에서 전문가인 엔지니어들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출범 직후엔 직능대표(비례대표)로 클럽에서 국회의원도 매번 3~5명씩 지명될 정도였지만 이후 신규 회원들이 줄어들며 2009년 이 회장이 클럽을 맡을 당시엔 65세 이상 비중이 75%인 고연령 단체였다.

이 회장은 취임 후 비즈니스포럼이라는 별도 분과모임을 만들어 100여명의 젊은 회원들을 모집했고,구미·울산·부산·창원·여수·전주·대덕·천안·수원·인천·제주·광주·오창·수도권서남부(안산·반월·남동) 등 지역클럽을 구축해 전국 조직으로 확대했다. 여기에서 얻은 노하우가 대과연 출범에 활용돼, 21개 과기단체, 140만명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역할을 했다.
 

▲이 회장은 매일 새벽 등산으로 다져진 체력 덕분에 동년배는 물론이고 젊은사람들 보다도 활동적이다. ⓒ2013 HelloDD.com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제가 연탄창고에서 시작한 회사를 45년 동안 운영해 국내외 6개 공장을 갖춘 7000억원대 매출의 중견기업으로 키웠습니다. 이건 다른 사람에게는 없는 경력이지요. 그리고 공업화학회도 한국엔지니어클럽도 제가 참여할 당시부터 주목받았던 모임은 아니었습니다. 시간과 노력을 통해 이룬 것이지요." 이 회장은 "어려움 속에서도 작은 것부터 성공을 만들어 가면 분명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 스스로의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다"며 "어떤 일도 허투루 여기지 말고 주어진 것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우리 나이로 77세인 이 회장은 매일 새벽 등산을 거르지 않는 탁월한 자기관리 덕에 여전히 젊은 사람 못지않은 체력을 갖고 있다. 이번에도 6개월의 선거기간 동안 국내외 업무 출장은 물론이고, 선거와 관련된 미팅까지 하루 평균 3~4건의 일정을 소화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가장 중요하다"며 마지막으로 "모든 일,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절대 과소평가 하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골프를 예로 들면, 스스로 체력이 부족하다고 생각될 때 골프채를 평소보다 낮은 숫자로 잡고 싶은 유혹에 빠집니다. 제어는 더 어려워지지만 운이 좋아 잘 맞으면 더 멀리 나가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순간 능력은 퇴화됩니다. 자기 스스로를 낮추면 능력이 있어도 최대치로 활용하지 않게 되고 점점 자신감도 잃게 되죠. 노력도 않고 나이 탓이나 상황 탓을 하지 말고, 자신감 있게 해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저를 보며, 작은 것의 성공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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