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단 '유치과학자' 정연세·전동오 박사
"사업 얘기 나왔을때 내 일이라 생각…사명감에 흔쾌히 수락"

고민 할 필요는 없었다. 국가를 위해 새로운 형식의 가속기를 만들어보자는 요청이 왔을 때 '바로 이 일이다' 싶었다.

지난 해 귀국하기 전까지 20여 년간 미국에서 살아왔던 전동오 IBS 중이온가속기구축사업단 가속기부장은 국가의 부름에 일말의 고민없이 짐을 쌌다. 가족들의 불평은 그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었다. "아이들은 미국에서 나고 자랐으니 당연히 한국으로 들어가자는 말에 반발할 수 밖에 없죠. 친구들도 미국에 있었고, 한국말도 잘 못했거든요. 차근 차근 설명했어요. 아빠가 들어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말하고, 이해해달라고 했죠.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해해주더라고요. 가족이 서로 떨어져 있으면 안되잖아요. 기러기 아빠는 사양입니다."

오로지 국가를 위해 돌아온 그는 그보다 더 앞서 합류한 정연세 박사와 함께 사업단 내 가속기 유치과학자로 통한다.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에서 1조6000억 달러 상당의 SNS 가속기 시설을 구축하는 데 참여했었던 그의 경험은 국가의 입장에서 봤을 때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또한 그는 가속기물리학을 전공한 전문가이기도 한데, 그의 말에 따르면 국내 대학에는 가속기 물리학 전공이 전무하다. 전 박사는 "가속기 이야기가 나올 때 부터 국외에 계신 몇몇 과학자들에게 컨택이 간 걸로 알고 있다"며 "시기를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한국에 가서 이 일을 해야겠다고 바로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으로 건너왔지만 그의 고생은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사업단의 상황은 열악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중압감을 느꼈다. 2월에 사업단에 들어왔는데, 계획에 따르면 3개월 만에 결과를 내야했다"며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한국 사람들은 남달랐다. 좋은 사람들이 합류해 목표들을 무난히 달성해 나갔다. 기적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정 박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 페르미랩에서 LHC 실험을 주로 해온 그는 사실 가속기와는 거리가 먼 입자 물리를 전공한 검출기 분야 권위자다. 지난해 1월 귀국한 그는 김선기 사업단장의 권유로 합류한 케이스다. 정 박사는 "김 단장은 지난 25년동안 해외 입자가속기를 사용한 여러 연구에 참여, 과제를 성공적으로 이끈 고에너지물리(핵·입자물리)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로 같은 분야에 오랫동안 있어왔다"며 "외국에서 항상 이야기했던 것이 한국에서 연구소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가속기 관련 연구소를 꿈꿨다. 평소 이야기했던 것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당장 수락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2011년 12월 13일 사업단장에 임명된 김 단장은 정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고, 정 박사는 전화를 받자마자 보름 만에 짐을 꾸려 귀국했다. 1년 정도 기러기 가족 생활을 한 정 박사는 최근에야 가족이 모이게 됐다고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그는 "전 박사와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막막했다. 없는 상태에서 사람이 하나, 둘 늘어나기란 쉽지가 않다. 처음으로 구축되는 조직에는 사람들이 잘 오지 않는다"며 "그래도 후회하진 않았다. 꼭 해야만 하는 부분이 명확했기 때문이었다. 사업단 내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 같다"고 강조했다.

◆ 가속기는 기초과학 선점을 위한 필수 장비…우리나라 경쟁력 있다

미국 에너지부에서 2010년에 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약 3만대의 크고 작은 입자가속기가 있으며, 가속기 시장은 약 35억 달러 이상, 가속기 빔을 이용해 생산, 처리, 검사되는 상품은 매년 약 5000억 달러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많은 가속기가 치료 또는 진단을 위한 의료용 가속기와 이온주입 등 산업용 가속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전체 1% 에도 못 미치는 라온과 같은 기초과학 연구용 가속기가 기술 개발을 이끌어 가고 있다. 이런 자료를 보더라도 가속기 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할 필요가 있다.

그들에게 있어 중이온가속기는 한국의 기초과학을 한 층 더 업그레이드 시키기 위해 있어야 할 가장 필수적인 장비다. 전 박사는 "한국의 중이온가속기 '라온'이 건설되면 희귀동위원소를 발견할 뿐 아니라, 다른 원소들과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며 "예를 들어 초신성 폭발에서 무거운 원소들이 정말로 만들어지는지를 밝힐 수 있게 되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과정도 밝힐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고 설명했다. 보통의 원소들과 성질이 같으면서 질량이 다른 원소들이 존재하는데 이를 동위원소라고 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동위원소는 약 3000종에 이르며 전체 동위원소의 수는 7000개 이상이 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초기에는 원자로를 통해서 발견됐지만 최근에는 가속기를 통해 발견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3000여 개 중에 단 하나의 동위원소도 발견하지 못했다. 연구용 가속기 구축이 시급한 이유다.

그는 "라온은 세계적으로도 선도적인 시설이다. 가속기와 관련된 일을 하는 입장에서 볼 때, 라온은 전 세계 가속기 시장에서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거라 자신한다"며 "가속기 분야는 먼저 선점하는 게 중요하다. 구축만 된다면 세계 유수 과학자들이 실험을 위해 한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박사는 "한국의 가속기 사업 경쟁력 있다. 업체들을 만나고 나서 느낀 부분은, 우리나라 국내 업체들의 기술 수준이 상당히 높다는 것"이라며 "조금만 더 발전하면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격면에서도 저렴하다. 가속기 핵심 부품 산업을 국내에 뿌리내리게 해서 한국의 산업체를 전 세계에 알리면 국부 창출 면에서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피력했다.

◆ 중이온가속기 부지 논란…"잘은 모르지만 빨리 해결됐으면"

사업단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바로 가속기가 들어 앉을 부지 확보 부분이다. 부지 매입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기본적인 조사도 임의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올해 초 이미 가속기가 들어갈 건물에 대한 기본설계에 들어갔어야 하고, 하반기부터는 건물 상세설계를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에서 부지매입비 전액 부담에 난색을 보이는데다 정부조직 개편작업이 늦어져 사업이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중이온가속기에 대한 상세설계는 오는 6월이면 끝날 예정이지만, 부품 조립이 끝나도 보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결국 설계가 끝난 가속기의 작동 여부를 실험하는 테스트 시설은 신동지구가 아닌 인근 고려대 세종캠퍼스 내에 마련됐다.

2017년 완공을 목표로 추진해왔던 중이온 가속기 구축 계획도 1년 이상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 전 박사는 "가속기 부분만 신경쓰고 있기 때문에 부지 부분은 사실 잘 모른다. 그러나 빨리 해결됐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며 "더 큰 대의를 위해 움직여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가속기 하나만을 보고 달려온 그에게 현재의 상황은 가혹하리만치 냉혹했다. 그래도 성공리에 완공되는 모습을 늘 꿈꾼다는 전 박사는 "중이온 가속기를 잘 만들어서 전 세계 앞에 내놓고 싶다"며 "개인적으로는 이런 가속기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앞으로 한 번 더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정 박사 역시 중이온 가속기 완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계획이다. 그는 "빨리 구축해서 세계적인 연구자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실험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라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 기초과학 레벨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 연구자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연구자들도 라온을 통해 연구 수준을 한 층 더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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