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수석대표단 美서 재개…재처리·농축 핵심쟁점
내년초 협정만료 처리불발시 원전운영·수출 '빨간불'

한·미 양국의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이 14개월만에 재개된다.

외교부에 따르면 한미 정부 수석대표간 협상이 16일(현지시간)부터 이틀간 워싱턴에서 개최된다. 한국은 박노벽 한·미원자력협정 개정협상 전담대사, 미국 측은 로버트 아인혼(Robert Einhorn) 국무장관 특보가 수석대표로 나선다. 5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약 1년만에 재개되는 이번 제6차 협상에서 양국은 2010년 첫 회담 이후 지난해 2월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진행된 협상 경과를 점검하고 핵심쟁점을 조율할 예정이다.

현행 한미 원자력협정은 1973년 3월 발효됐고 내년 3월 만료된다. 한국은 41년 만인 이번 개정협상에서 사용후핵연료 재처리와 저농축우라늄 생산에 대해 미국의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의 승인 없이 핵연료의 농축과 재처리를 못한다'는 한미 원자력협정 제8조의 개정이 필요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29일 밥 코커 미국 상원 외교위 간사와 접견한 자리에서 "한미원자력협정이 한국에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확대할 수 있게 선진적으로 개정될 수 있도록 미국 의회가 관심을 가져달라"며 한미원자력협정의 선진적 개정을 요청한 바 있다. 이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확대할 수 있도록 협정을 개정하자는 우리측 입장을 피력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23기 원전에서 약 1만2000톤의 사용후핵연료가 배출됐으며 매년 700여톤이 추가로 나오고 있다. 현재 이들 사용후핵연료는 각 원전 부지 수조에 임시 보관중이다. 하지만 오는 2016년 고리원전을 시작으로 2018년 영광·월성원전, 2024년경이면 전국의 원전폐기물 저장소가 모두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내로 중간저장시설 건설, 영구처분, 또는 재처리 여부를 결정하지 않으면 핵폐기물을 보관할 곳이 없어 가동중단 사태를 맞을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지난 2010년부터 10년간 국제공동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파이로프로세싱'(건식재처리) 방식으로 사용후핵연료를 재처리해 저장공간 포화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우라늄 농축의 경우는 한국이 직접 하지 않고 농축사업을 하는 해외기업의 지분을 매입하거나 위탁처리하는 등의 우회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반면 미국은 사용후핵연료에서 추출되는 플루토늄과 농축 우라늄이 핵무기 원료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핵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협정문에 명문화하자는 우리측 요구에 반대하고 있다. 핵비확산 정책의 일관성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동북아 3개국을 순방중인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지난 12일 한미 외교장관 공동기자회견에서 "지금은 이란 및 북한 핵 문제를 다루고 있는 민감한 시점이기 때문에 이들 국가에 대한 우리의 접근을 바꿀 수 있는 내용이 들어가는 것에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미국이 한국에 재처리 및 농축 권리를 부여할 경우 북한의 핵개발 저지와 중동국가들의 핵개발 요구를 거절할 명분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원자력협정 상대국에 대해 핵연료 농축과 재처리 권한을 포기하도록 하는 '골드 스탠더드'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는 한국이 소규모 원전 운영국가와 다른 세계 5위의 원자력 대국인 만큼 그에 걸맞는 협정 개정을 원하고 있다. 또한 원자력계는 파이로프로세싱 방식으로 재처리를 하면 핵무기 원료인 플루토늄을 단독으로 추출할 수 없어 핵확산의 우려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협정 만료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가운데 양국이 팽팽한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만큼 따라 일각에서는 이번 협상에서 현행 협정의 만기를 2년간 한시적으로 연기하는 방안도 거론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한미원자력협정은 개정안 도출에 실패하면 내년 3월 자동으로 만료된다. 만일 한미 양국이 개정안 또는 협정 연기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원전가동에 당장 문제가 생기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파장이 상당할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에서 수입해온 농축우라늄 원료와 기술, 원전고장시 자재 공급이 모두 중단될 뿐 아니라 아랍에미레이트(UAE)에 짓고 있는 원전과 기타 원전 수출 프로젝트도 큰 차질이 생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약 3년간 전기생산을 위한 수명을 다하고 배출된 핵연료. 사용후핵연료는 핵분열을 일으키지 않는 잔여 우라늄 등의 안정원소 약 98%와 함께 플루토늄 1.2% 및 반감기가 긴 미량의 핵물질들이 소량 포함되어 있다. 미국은 플루토늄이 핵무기급 물질로 전용될 수 있다고 판단해 사용후핵연료의 어떤 형질 변경도 수용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을 포함한 다른 나라들에도 형질 변경을 하지 말도록 권고하고 있다.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 
500∼650 ℃ 고온의 용융염을 이용해 사용후핵연료에서 우라늄 등 유효한 성분을 회수하는 건식재처리 기술이다. 회수된 핵물질은 차세대 원자로인 고속로의 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으며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양과 독성·발열량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사용후핵연료에 포함된 플루토늄만을 단독으로 분리해낼 수 있는 기존 재처리 기술과 달리 파이로프로세싱 공정상 플루토늄이 다른 핵물질과 함께 추출될 수밖에 없어 핵확산 위험성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은 1997년부터 파이로프로세싱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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