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즈 우주선 발사현장.
소유즈 우주선 발사현장.
박근혜  정부의 최대화두는 창조경제이다.
창조경제는 상상력과 창의력에 기반한 성장전략 동력이니 만큼 상상력은 창조경제에서 아주 중요한 핵심이다. 스마트폰도 결국은 스티브잡스의 상상에서 나온 산물이다. 전화기 표면을 어렸을 때 책장 넘길 때 하듯 옆으로 밀면 새로운 화면이 나오게 하는 것이다.

가끔 상상은 곧 현실이 되기도 한다. 세상살이가 상상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많지는 않아도 상상이 현실이 될 때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놀라기도 한다.

2008년 4월 8일 저녁 8시 16분 39초 한국의 첫 우주인 이소연을 태운 소유즈TMA-12호 우주선이 카자흐스탄 바이코누르 우주센테에서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당시 필자는 바이코누르 우주센터를 가서 우리나라의 첫 우주인이 우주로 떠나는 모습을 실제로 보았다. 그러나 쉽게 그곳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이코누르 우주센터는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인 스푸트니크 1호와 인류 최초의 우주인인 가가린이 우주로 발사된 곳이다. 우주개발의 성지인 셈이니 로켓과학자로써 한번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사실 우주인 배출사업도 항우연 원장시절 필자가 시작했으니 우주인이 우주로 떠나는 그곳에 가보고 싶었던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구원에서는 관련 예산의 부족으로 발사장 방문이 어렵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주인사업 주관 방송사인 SBS에서 필자에게 우주인 사업관련 기술적인 자문을 요청하였다.

맨 왼쪽이 방송 당시 필자.
맨 왼쪽이 방송 당시 필자.

첫 번째 자문은 우주인 사업과 관련된 수십개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작가들에게 우주인과 우주비행에 관한 내용을 설명한 것. 우주인을 우주정거장으로 보내기위해 우주선과 로켓을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과정을 밟아서 발사하는지, 우주와 무중력 상태의 특징 소개했다.

강연 이후 우주 프로그램의 작가들로부터 수많은 문의를 받았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방송국에 가서 직접 자문을 하였다. 방송국에서 제작한 우주비행관련 동영상도 자문 하였다. 열심히 도와준 덕분인지 발사장에서 우주선을 발사할 때 우주기술을 해설하는 해설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쉽게 바이코누르로 출발 할 수는 없었다. 웬일인지 연구원에서 출장허가가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출발 하루 전날까지도 출장허가가 나오지 않아서 방송국에 연락을 하였다. 출장허가가 나오지 않아 발사장에 함께 갈 수 없다고….

방송국에서 어떻게 처리를 하였는지 퇴근 무렵에 정식으로 출장허가가 떨어졌고 우주개발의 성지인 바이코누르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우주개발의 성지를 보고 싶었던 간절한 상상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우주인 중계방송팀은 모스크바를 거쳐 바이코누르 우주센터에 갔다. 그리고 4월 6일 오전 7시에는 소유즈 우주로켓 조립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조립된 소유즈 우주로켓이 기차에 실려 발사장으로 옮겨지는 날이다.

2시간 뒤 우리는 발사대로부터 1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기찻길과 도로가 만나는 곳에서 소유즈 로켓을 만날 수 있었다. 중계팀 일행은 30분전에 이곳에 와서 소유즈 우주선을 실은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철도변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러시아로 오기 얼마 전에 '1960년대에 이곳 발사장에서 우주로켓을 발사하려다 폭발해서 100여명의 기술자가 사망'했다는 신문기사를 본 것이 기억났다.

그렇게 큰 폭발이 있었으면 로켓의 파편이 이곳까지 날아 올수도 있었고 혹시 이 주변에 로켓의 파편이 남아있을 수도 있겠다는 상상을 하였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것이 웬일인가 내가 서있던 곳에서 2m 떨어진 곳에 손바닥 크기의 금속 파편이 보이지 않는가? 상상이 또다시 현실이 됐다. 정말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인데 내 몸에 소름이 돋는다.

발사는 4월 8일 오후 5시 16분 39초(현지시간)에 성공적으로 이루어 졌다. 이날 밤 중계팀은 소유즈 우주선이 우주정거장과 도킹하는 것을 중계방송하기 위해서 발사장을 급히 떠나서  모스크바로 갔다.

중계방송 전날 호텔에서 소유즈 우주선의 도킹 비디오를 분석하여 화면에 나오는 많은 숫자 중에 우주정거장과 소유즈우주선의 거리를 나타내는 숫자가 어떤 것인지를 찾아냈다. 그리고 10일 오후 5시 중앙 통제동에서 도시락으로 저녁을 하고 중계방송실로 올라갔다.

MC는 박진호기자(현재 미국 특파원)와 윤현진 아나운서였고 러시아 통역과 함께 필자가 앉았다. 중계방송은 중앙통제동에서 러시아 말로 나오는 소리를 러시아 통역이 통역해서 진행할 예정이었는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중앙통제동에서 화면만 내보내고 소리는 올라오지 않는 것이었다.

사전에 준비한 방송대본이 없어서 MC가 아무 말도 못하는 긴장한 상황이 계속 되었다. 그런데 화면에 소유즈우주선과 우주정거장의 도킹장면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화면을 보면서 지금 소유즈 우주선과 정거장이 얼마나 떨어져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이야기 하면서 위기상황을 잘 해결 할 수 있었다. 우주기술 해설자로 참여한 보람이 있었고, 미리 상상하고 미래를 준비 하는 것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 출장이었다.

채연석 박사
채연석 박사
채연석 박사는 2005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수장을 지낸 바 있으며, 현재에는 연구원에서 전문연구위원으로 UST 교수로 활동 중 입니다. 로켓 박사로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2005년 KSR-Ⅲ 프로젝트를 진두 지휘하기도 했습니다. 우주소년단 부총재로 우리나라의 국가 과학기술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우주시대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채 박사는 '채연석의 로켓과 우주개발'을 통해서 우리나라의 국가 과학기술의 미래인 아이들에게 우주시대의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글로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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