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자리 잡은 현 정부는 이제서야 각종 과학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창조경제를 정책의 기치로 내건 박근혜정부는 2017년까지 기초연구지원 비중을 40%로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 금액은 2008년의 3640억원에 비하면 2배이상 늘어난 수치다.

연구재단을 중심으로 구축된 국내의 연구개발사업들은 개인연구자의 연구단계별 도약을 지원하는 체제와, 개인연구와 그룹연구 체제의 연구를 포함하고 있다. 대학에 자리를 잡은 연구자로서 이러한 기초연구비의 증가에 대해서 환영하는 바이고, 이 컬럼을 통해서도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연구지원 대상의 확대에도 부합하는 조치라고 생각한다.

창조경제때문이 아니더라도, 미래사회를 이끌어갈 동력이 과학기술이라는 점에 모두가 동의하는 상황에서 결국 필요한 것은 장기적인 연구토양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 과학계 일각에서 다시 '노벨상' 관련 언급들이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하고 싶다. 일부 지면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노벨과학상의 근간인 기초과학' 이라던가 '노벨과학상을향해 뛰자' 등의 구호와 '어떻게 하면 노벨상을 수상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과학자들에게 던지는 기사들은 어렵사리 다잡은 연구지원의 기조를 또다시 흔드는 것이라고 본다.
 
우수한 연구자의 기준이 노벨상 수상자여야 하는 당위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지난 2000년 이후 노벨상 수상자를 16명이나 배출한 일본과 비교하며 우리나라에서 아직까지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되지 못한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어떤 연구자는 노벨과학상이 과학기술의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라고 인터뷰어의 유도성 질문에 무심히 답변하기까지 한다.

명확한 목표가 부재한 정책입안자들에게 노벨과학상은 지난 수십년간 내세워온 과시용 수사다. 마치 SCI 논문은 곧 우수 연구실적이라고 판단하듯 최고의 연구실적은 노벨과학상이라는 손쉬운 등식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노벨과학상은 대내외적인 연구실적의 과시를 위함에 다름 아니다.

노벨상 논란에 경계를 표하는 것은 이 논란이 일부 스타연구자에 연구비 지원이 집중되거나, 단기간에 연구실적을 만들어 내려고 무리하게 연구일정을 추진하는 등의 조급증이 재발할까 걱정이기 때문이다. 그 동안 우수과학기술연구를 위해 국가가 쏟아 부은 연구비를 생각하면 이제는 노벨상 하나쯤 나와줘야 하니 전략적으로라도 추진해야겠다는 생각은 본말이 전도된 얕은 꾀에 불과하다. 연구자에게 얕은 꾀는 달콤한 독약과도 같이 연구의 깊이를 갉아 먹는다.
 
연구의 결실을 맺기 위해 이루어져야 하는 연구정책 관련 활동들은 농부들의 수확을 위한 노동과 닮아 있다. 같은 채소를 재배하더라도 토질을 개량하고, 비료를 충분히 주어 기름진 땅을 만든 곳에서 실한 열매를 맺는다. 실한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수분과, 비료를 공급해야 하고, 충분한 기간동안 햇볓을 쬐어주어야 한다.

병충해를 막아주고, 강풍과 태풍 등에서 보호하고 지지해주는 수고가 필요하다. 수확이 급하다고 설익은 열매를 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우수한 연구실적을 위해서는 좋은 토양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연구자들에게 좋은 토양이란 자유로운 연구를 보장하는 연구비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다. 우리가 겨냥해야 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우수한 연구의 결실을 거둘수 있는 체제의 구축이다.

속성재배를 겨냥하거나, 일부 특수 품종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일부 성과가 있을 지언정, 지속적인 연구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체제의 구축은 하지 못할 수 있다. 초기의 계획과 달리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계획하지 않았던 비료를 사야 한다면 살수 있어야 한다.

기초연구비의 증대를 통해 보다 많은 연구자들을 자유연구주제로 끌어들이고 난 뒤에는 연구자들의 연구의지를 북돋을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 연구비를 사용하면서 쌓여있는 영수증 뭉치를 언제까지 연구책임자가 관리하도록 해야 하는지, 국내 출장에 렌터카를 사용하면 왜 안되는지, 이 항목으로 결재를 하면 무엇이 문제인지, 연구책임자의 관리책임자라는 명분으로 연구자들은 행정의 부담을 안고 연구를 수행한다.

SCI논문과 영향지수(IF)를 계량형 평가지표로 사용하는 관행도 반드시 개선되어야 하는 연구지원체제다. 최근 전세계 과학계 유력인사 155명과 미국과학기관 관계자들이 학술지 IF로 연구의 수준을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샌프란시스코 선언'을 발표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연구자는 그저 자기가 생각하는 새로운 분야의 연구에 매진하고, 결과를 학회건, 학술지건 발표하면 되며, 그 연구결과의 우수성은 다른 전문가가 하게 될 것이다. 그 전문가는 SCI 논문에 실적이 발표되었는지 상관하지 않을 것이며, 그 학술지의 IF가 얼마나 높은지에도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이런 풍토가 조성되는데 앞으로도 수십년이 걸린다 하더라도 토양이 성숙할 때까지 필요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그 비옥한 토양이 일단 만들어지면, 많은 실한 열매가 지속적으로 맺힐 것이다. 비록 노벨상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사회는 창조경제를 이끌 혁신적인 과학적 결과물들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김형신 교수
김형신 교수
김형신교수는 KAIST 전산학과를 졸업한 뒤, 영국 써레이 대학에서 위성통신공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 2호 프로젝트에 참여하였습니다. 귀국하여 KAIST 전산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우리나라 인공위성프로젝트에 10여년간 참여해오면서 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에서 계약직 연구원으로 장기간 근무하기도 하였으며, 학위후에는 미국 카네기멜론대학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근무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는 스마트폰등의 모바일 기기와 인공위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임베디드 시스템의 성능분석, 저전력 최적화 등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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