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좌담회]창조기지화 기대 크지만 "양해 먼저 구했어야"
"대전시민도 과학벨트 성공 바란다…무관심 깨는 계기로"

엑스포과학공원 관련 긴급좌담회가 12일 오전 연구재단 북카페에서 열렸다.
엑스포과학공원 관련 긴급좌담회가 12일 오전 연구재단 북카페에서 열렸다.

20년 긴잠에 빠졌던 엑스포과학공원이 깨어나고 있다. "창조기지로 활용하자"는 정부의 제안에 대전시 전체가 활화산처럼 들썩이고 있다. '지역과 국가 모두의 100년 먹거리 마련 기회'라는 긍정론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실질적 축소'라는 의구심이 혼전 양상을 벌이는 가운데 중대한 선택의 기로가 다가오고 있다. 대덕넷은 여론형성과 정책결정의 최대 고비를 앞두고 긴급좌담회를 마련했다. 대전시의 발전, 나아가 창조경제라는 국가적 아젠다의 실현을 위해 어떤 선택이 필요한지를 진단해본다. [편집자주]

◇긴급좌담회 참석자(가나다순)

▲금홍섭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정책위원장
▲송충한 기초과학연구원 정책기획본부장
▲이석봉 대덕넷 대표
▲장인순 전 대덕클럽 회장
▲정태희 삼진정밀 대표

▲진행=김형석 대덕넷 취재팀장

"우리는 지금의 이런 논란이 오히려 감사할 지경입니다. 부지매입비 문제로 정부와 대전시가 갈등을 빚으며 IBS와 중이온가속기 사업은 사실상 중단 상태였어요. 유치하고 싶은 해외 석학들이 세계적인 연구소를 짓겠다는데 어떻게 만들고 있냐고 물어도 궁색한 답변밖에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입니다"(송충한 IBS본부장).  

"유치과학자로 30여년 전에 대덕연구단지에 왔는데 살 만하다고 생각되는 건 최근에 와서야 입니다. 외국인 과학자들에게 설문을 해보면 해답이 금세 나올 거에요. 둔곡지구에 IBS를 짓는다면 당장 시작해도 5~10년인데 그 시간이면 이미 와 있는 연구자들도 지쳐서 떠나겠지요. 엑스포공원을 활용하면 바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과학벨트의 진정한 성공을 바라봐야 할 때에요"(장인순 회장).

"대전시민들은 지난 정권에서도 과학벨트 문제로 홍역을 치렀어요. 왜 또 이래야 하나 하는 피로감이 있습니다. 원칙대로 추진했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일인데 아무래도 정부의 과학벨트 추진의지가 없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요. 대전시가 4대 원칙과 함께 높은 기대치를 제시하고 있는데 현실화는 어려울 거라는 예상입니다"(금홍섭 정책위원장).

"기업을 하면서 경쟁력의 필요를 절실히 느낍니다. 세계로 나가지 않으면 이제 기업도 영위가 어렵습니다. 2만달러 수준에 오랫동안 멈춰 있는 국가 성장이 4만달러 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부가가치와 브랜드가 중요해집니다. 대전이 정말 창조경제 브랜드로 성공한다면 기업 역시 그런 후광을 등에 업고 더 크게 활약할 수 있을 거라 여겨집니다"(정태희 대표).

"엑스포과학공원이 올해로 20주년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기억 못해요. 그동안 여러가지 얘기는 됐지만 사실상 버려진 공간입니다. 창조기지화 계획은 가장 현실적인 대안입니다. 이번 기회를 대전시민들이 잘 다듬고 발전시켜서 대덕과 과학벨트를 끼고 있는 대전이 수도권과 포항·울산에 이어 제3의 국가 성장엔진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뜻을 모아야 합니다"(이석봉 대표).   

연구현장과 산업계, 시민사회와 언론계에서 각각 대전과 국가의 발전을 그리고 있는 참석자들은 이번 '엑스포과학공원 IBS 활용'의 타당성과 '과학벨트 사업 성공'의 연관성을 놓고 각자의 위치에서 파악하고 있는 기대와 우려들을 가감없이 쏟아냈다. 

시급을 다투는 사안인 만큼 이른 아침 시작된 좌담은 순간순간 찬성과 반대가 첨예하게 엇갈렸다. 하지만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대전 지역 여론의 결집이 과학벨트 성공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각기 다른 배경과 관점을 가진 5명이 생각하는 '엑스포과학공원 창조기지화' 논란의 올바른 해결 방향과 각계의 역할론을 들어봤다.

◆"과학벨트 진정한 성공 바란다면 시간 낭비 안 된다"

송충한 IBS 정책기획본부장.
송충한 IBS 정책기획본부장.
사회자 : 정부가 제안한 엑스포과학공원 활용방안에는 IBS 조성을 비롯해 여러 가지 제안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반대하는 의견은 "과학벨트가 결국 축소된다"는 것인데 각계 전문가들의 입장, 또 오랫동안 엑스포과학공원을 지켜보신 대전시민의 입장에서 이번 사안에 대한 견해를 말씀해달라.

송충한 : 미래부가 엑스포과학공원을 창조경제 허브로 만들자는 제안을 했다. IBS 입주도 포함됐다. 저희 입장에서는 긍정적이다. 부지매입비 문제가 공전하며 외국 석학들을 모셔오려고 해도 연구동은커녕 IBS본원 추진상황조차 구체적인 얘기를 할 수가 없어 난감한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영국 크릭연구소는 런던 한복판에 있다. 인력유치 때문이다. 요즘 해외 연구소들이 외진 곳으로 가지 않는 이유다.  

기초과학연구원의 근본 취지는 혼자하는 연구가 아니라 이를 통한 다양한 융복합이다. 또 인재양성도 큰 임무다. 따로 떨어진 둔곡지구가 아니라 엑스포과학공원을 활용하게 된다면 대덕특구와 활발한 융복합이 기대된다. KAIST와 충남대 등을 통한 인력양성에도 효과가 클 것이다.

금홍섭 : 대전시민들은 피곤하다. 당초 원칙과 계획대로 추진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 일인데 왜 또 이렇게 논란거리로 만드냐는 것이다. 과학벨트 추진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싶다. 또 다른 문제는 정부 제안을 놓고 대전시, 시민, 과학기술계의 생각이 크게 다른 점이다. 동상이몽에 가깝다. 대전시와 과기계는 큰 기대를 하고 있는데 제가 보기에는 기대치를 현실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금홍섭 대전참여자치연대 정책위원장.
금홍섭 대전참여자치연대 정책위원장.
장인순 : 30년 넘게 대덕에 살면서 이제야 살 만한 곳이 됐다고 느낀다. IBS 입지로 엑스포과학공원과 둔곡지구가 다 장단점이 있지만 둔곡은 외국인 과학자가 들어가 살기에는 인프라가 큰 문제다. 유학생 신분과 가족을 거느린 과학자의 처지는 다르다. 엑스포과학공원을 환영하는 이유는 과학벨트 사업이 바로 재개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다. 땅 사고 기반조성하고 최소 5년인데 그런 시간 낭비를 하지 말자는 것이다.

송충한 : 시민단체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과학벨트 축소다. 두 번째는 시민공간이었던 엑스포과학공원을 뺏기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그래서 과기계가 눈여겨 보는 게 도심형 사이언스파크다. 예전에는 연구소가 한적한 곳으로 갔는데 정주여건과 융합연구 때문에 다시 도심으로 돌아오고 있다. 과학과 시민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도 많이 조성한다. IBS도 엑스포 입주시 연구시설 보안만 강화하고 건물 외 대부분의 공간을 시민에게 개방할 계획이다.   

◆"IBS·가속기 왜 떼놓겠다는 건지…도심형 사이언스파크는 세계적 흐름"

이석봉 대덕넷 대표.
이석봉 대덕넷 대표.
금홍섭 : 송단장님은 최근 추세가 도심형 연구단지라고 하는데 지금도 대덕 연구환경이 훼손되고 있다는 과기계 지적과 어긋나는 것 같다. 현재 미래부와 대전시 안은 체험전시까지 포함한 복합공간이다. 연간 방문인원이 수백만명은 족히 될 텐데 과연 기초과학 연구시설이 들어갈 만한 곳인지 의문이다. 또 둔곡이라는 당초 계획을 버리고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쾌한 해명이 없으니 이 정부의 과학벨트 정상추진 의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민단체들이 문제제기를 하는 또 하나는 제조업 몰락으로 지역총생산이 전국 16개 지자체중 14위로 떨어진 대전의 고부가가치 산업을 과학벨트가 선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그런데 IBS와 중이온가속기 연계와 신산업 창출을 강조하다가 이제 와서 떼놓는다는 게 뭐냐는 지적이다. 대전시민들은 과연 그게 정말 타당성이 있는지, 아니면 복잡한 상황을 어물쩍 넘기려는 꼼수인지를 알고 싶은 것이다.

송충한 : 그 부분은 제가 일부 답하겠다. IBS는 수학·물리·화학·생명과학·지구과학 5개 기초분야의 50개 연구단 구성을 계획 중이다. 그중 6개는 융복합 연구단이다. 그중 중이온가속기와 실질적으로 큰 연관성을 갖는 연구단은 극히 소수다. 중이온가속기는 물리 등 기초과학을 위해 꼭 필요한 장비지만 모든 연구단에 필요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관련 3개 연구단은 신동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장인순 : 시민들의 우려를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과학벨트 문제는 결국 일을 해야 하고 직접 들어가 살게 될 과학자들의 의견을 존중해줘야 할 문제다. 과학벨트는 대전의 것이기도 하고 국가의 것이기도 하다. 그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잘 되면 대전과 국가에 모두 큰 기여를 할 것이다. 둔곡 역시 차제에 유용하게 쓰일 것이다.

정태희 : 원래 큰 떡이라고 생각했는데 작은 떡이 올 거 같다는 게 대전시의 걱정인 것 같다. 과학기술계는 답답하니까 뭐라도 빨리 해야 하는 입장이고. 중간자적인 기업인 입장에서 약간 씁쓸하기도 하다. 분명 대전에 도움이 되는 일이긴 하지만, 국가경쟁력에 관한 문제이고 첫 단추를 끼우는 시기인 만큼 더 신중해야 한다. 4대강을 봐라. 꼭 필요한 일이지만 몇 대에 걸쳐 할 일을 우당탕 서두르다 보니 결국 문제가 터지지 않느냐.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이번에 첫 단추를 잘 끼운다면 대전이 진정한 의미의 창조기지로, 또 그 수혜는 대전에 돌아오리라고 본다.

◆"대전시민들은 피곤하다…정녕 옳다면 양해부터 먼저 구했어야"

장인순 전 대덕클럽 회장.
장인순 전 대덕클럽 회장.
사회자 : 과기계와 시민단체의 말씀을 듣다보니 결국 대전과 대덕의 인식차이가 여전히 엄존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엑스포과학공원이 그같은 지역적, 문화적, 심리적 경계선상에 있기 때문에 더욱 뜨거운 이슈가 되는 듯하다. 이제 대전과 대덕의 상생에 대해 얘기해보자.

장인순 : 34년을 이곳서 살았는데 아직도 대전시민이 이방인으로 여긴다니 섭섭하다. 기초과학을 상징하는 IBS가 엑스포과학공원으로 가면 대덕 과학기술계가 대전시민들에게 더 가깝게 다가서는 계기가 될 것이 확실하다.

금홍섭 : 대전의 독특한 특성이 있다. 하천을 중심으로 원도심과 신도시가 명확하게 갈리고 과학자와 비과학자 간의 이질성도 크다. 시민단체들이 롯데테마파크를 반대한 이유도 그나마 엑스포가 그런 간극을 줄이는 공간이 됐기 때문이었다.

지금 창조기지 문제도 연장선이다. 과학벨트와 몇 년 동안 대전시의 골칫거리였던 엑스포과학공원 문제를 달랑 공문 한 장 보내는 방식으로 쉽게 해결하려는 정부의 접근방식은 지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과학벨트의 진정한 성공을 바란다면 지역민과의 합의를 먼저 시도해야 한다.

이석봉 : 대화가 힘든 상황을 이해한다. 흔한 말로 대전시민이 연구소 한번 들어가보려면 '빽'을 써야 한다는 말도 맞는 말이다. 저는 이번 일을 계기로 대전시민들이 권리도 적극 요구하고 지역발전에 대한 고민도 함께하는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정태희 삼진정밀 대표.
정태희 삼진정밀 대표.
엑스포공원 창조기지화 문제도 시민의 이익과 국가발전을 위해 주체적인 생산적 담론이 형성돼야 한다. 막연히 좋은 게 주어지기를 바라기보다는 쟁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차이점만 얘기할 게 아니라 합의점을 찾으려는 움직임도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단체의 중재 역할이 크다.

정태희 : 대전시민들은 최선이 아니라 차선으로 가는 것에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다. 기업만 운영하다보니 기본적으로 과기계나 시민들보다 이번 사안을 잘 모르지만, 중요한 시점에 중요한 이슈가 나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저도 충청도 사람인데 대전이 독특한 색깔을 지닌 지역이라는 점도 인정하고 포용력이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서로간의 벽을 허무는 노력이 필요한 때다.

사회자 : 엑스포과학공원 창조기지화에 대한 기대와 우려를 일목요연하게 말씀들 해주셨다. 끝으로 한말씀 부탁드린다.

송충한 : 앞서처럼 IBS가 논란의 중심이 됐지만 감사한 상황이기도 하다. 어떤 결정이든 대전시민과 과기계의 의견이 잘 수렴되기를 바란다. 또 시민과 과학의 괴리 문제가 나왔는데, 대덕연구단지가 만들어진 지난 40년은 격리와 보안이 필요했지만 세상이 바뀌고 있다. IBS의 엑스포과학공원 입주도 시민과 과학을 더 가깝게 연결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도 열심히 노력하겠다.

금홍섭 : 합의가 필요한 이유는 국정이 구멍가게 운영이 아니기 때문이다. 약속을 뒤집는다고 느끼니까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정부는 만일 이번 제안이 정말 옳다면 정책적인 결정 전에 먼저 대전시민들의 양해를 구하고 설득하려는 예의를 갖춰야 한다. 공문 한 장 던져놓고 '받을래, 안 받을래' 하는 자세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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