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대의 꿈 중 하나인 하늘을 나는 꿈을 최초로 실현시킨 이가 자전거 판매와 수리를 하던 미국의 라이트 형제라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비행기는 당연히 당대 최고의 엔지니어가 발명하였다고 해야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런 인물 중 하나인 랭글리는 정부 거대 프로젝트를 통해 유인비행을 위한 강력 엔진개발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라이트 형제는 비행 조정이 가능한 정교한 글라이더 제작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랭글리는 강력 엔진에도 불구하고 유인 비행에 실패하였고, 라이트 형제는 조정이 가능한 글라이더에 기존의 가솔린 엔진을 경량으로 개조하여 장착한 비행기를 타고 1903년 마침내 하늘을 날게 되었다. 또한 5년 뒤에는 자신들이 제작한 비행기를 상용화하는 데에도 성공하였다.

라이트 형제는 인류역사상 최초로 동력을 이용하여 고정익의 비행체에 사람을 태우고 날도록 한 것이다. 이들보다 앞서 1881년 릴리엔탈은 동력장치가 없는 글라이더를 이용하여 유인비행에 성공한 바 있다. 따라서 라이트 형제의 업적은 엄밀히 말하자면 글라이더(기체 機體)와 엔진을 성공적으로 결합한 것에 불과하다. 이들은 항공역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바도 없고 항공엔진 개발에 대한 공헌은 더더욱 미미하다.

라이트 형제의 기여는 오히려 다른 곳에 있다. 3축조정법이 그것이다. 항공기의 운동을 x, y, z 축으로 나누면 각각 rolling, pitching, yawing으로 나타나는데 이들을 개별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하여 전방위적 비행 조정을 가능케 한 것이다. 3축조정법은 오늘날의 항공기에도 그대로 적용되며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 제작과 관련하여 획득한 중심 특허이기도 하다. 윌버와 오빌 라이트는 3축 조정법으로 기체와 엔진을 성공적으로 결합함으로써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를 이루었다.

자전거에 익숙한 라이트 형제는 기체(자전거)와 동력(인력)이 있어도 숙련된 제어법을 갖추지 못하면 자전거를 제대로 달리게 할 수 없는 원리가 비행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다른 거대 연구개발조직들이 강력 추진 엔진개발에 주력할 때 라이트 형제는 글라이더 조정장치 개발과 조정법 숙달에 힘을 쏟았다.

요즘 표현을 빌리자면 라이트 형제는 비행기 발명을 디자인의 문제로 인식하였다고 할 수 있다. 글라이더와 가솔린 엔진의 융합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디자인을 3축조정법으로 한 것이다.  이는 마치 스티브잡스가 PC와 핸드폰을 앱으로 연결하여 스마트폰을 만든 것에 비유될 수 있다.

정부출연연구소의 비효율성이 자주 거론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주요 시책으로 삼고 있으나 창조경제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논쟁이 아직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혹 정부출연연구소의 비효율성은 의미있는 성과를 얻기 위한 디자인적인 접근을 도외시 한 채 강력추진 엔진 개발에 주력하기 때문이 아닐까? 정부는 디자인이 창조경제를 여는 열쇠가 된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함이 아닐까? 우리는 비행 조정을 외면한 채 쇳덩어리를 허공에 띄우려는 그릇된 기획에 연연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름달이 휘영청 가을 하늘에 걸린 것을 보노라면 자전거가 달을 가로 질러 날아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ET와 엘리엇이 탄 자전거이다. 보름달이란 융합영역에서 인간과 자연, 차가운 현실과 따뜻한 꿈, 현재와 미래가 오버랩되고 완벽한 일체가 된다. 자전거가 이번에는 스필버그에게 우주선 디자인의 인사이트를 준 모양이다.

(이 글의 모티브를 제공해 주신 채연석 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원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유장렬 박사
유장렬 박사
융합과학이 새로운 트렌드가 되고 있지만 현장에서 접목은 쉽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유장렬 박사는 서로 별개라고 여겨지는 다양한 분야가 모여 합목적인 새로운 성과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유장렬, 융합과학의 첫걸음'을 통해 연구자들의 고민을 파헤쳐보고 실현가능한 방법을 함께 모색해 볼 예정입니다.

유장렬 박사는 서울대 식물학 학사, 캘리포니아주립대 생물학 석사을 거쳐 미시간주립대에서 농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85년부터 한국생명공학연구원에서 근무중이며 한국식물생명공학회 회장, 한국생물정보시스템생물학회장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SCI 등 주요학술지에 128편의 논문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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