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질자원연의 젊은 연구원들④]국토지질연구부 권창우 박사
주권행사 소중한 행위 "망치들고 전국 순례…누가 우리를 과학자라 하겠나"

한국지질도 앞에 선 권창우 박사.
한국지질도 앞에 선 권창우 박사.
지질도는 도로건설, 산업 입지, 도시계획 등에 없어서는 안되는 국가 기반 사업의 기본 중 기본이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을 당시 제일 먼저 한 일도 지질도 작성이었다.

권창우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국토지질연구부 박사는 지질도 작성을 '자기 영토에 대한 주권을 행사하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일제 시대 때 일본 사람들이 지질도를 만든 이유는 자원 수탈 때문이었다. 당시 일본인들은 그들의 야욕을 채우기 위해 모든 학문적 기술을 동원했고, 그 결과 지금 시대에서 평가를 해도 수준이 낮지 않은 지질도를 작성할 수 있었다.

권 박사는 "지질도라는 작업을 통해 당장 어떤 경제적인 이득을 취할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이땅이 개발되고 활용될 때를 대비하려면 지질도 작성은 필수적일 수 밖에 없다"며 "산업적인 활동을 즉각적으로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자기 영토에 대한 지질도가 100% 완벽하게 만들어져야 한다"고 당위성을 설명했다.

지질자원연 입장에서 지질도 작성은 가장 중요한 사업 중 하나다. 현재까지 93% 완성됐다. 서해안 도서지역과 남해안 지역 쪽만 남은 상태다. 100% 완간 목표는 2018년으로 잡았다. 지질자원연 설립 1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지질도가 완성되면 그 이후부터는 지도를 업그레이드하는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지질도는 100% 완성이 돼야 수정·보완이 가능하다. 일제시대 때 정보를 그대로 사용해야 하는 이유다.

권 박사는 "2년에 한 번씩 지질도가 나온다. 그때 마다 지역이 추가돼 있다. 현재 5팀이 꾸려가고 있는데, 한 지역당 2년의 시간이 걸린다. 2년에 한 번씩 5개 지역이 추가되는 셈"이라며 "일정이 빠듯하기 때문에 출장이 잦다. 사무실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다. 정말로 원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다"고 설명했다.

깔끔한 그의 성격만큼 책상도 깨끗하다. 출장을 많이 다니는 탓에 책상 위에 무언가를 올려 놓을 시간도 빠듯하다.
깔끔한 그의 성격만큼 책상도 깨끗하다. 출장을 많이 다니는 탓에 책상 위에 무언가를 올려 놓을 시간도 빠듯하다.
실제로 그의 책상은 연구원의 책상이라기보다 가끔씩 방문하는 외부강사의 책상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허전했다.

"1년에 3분의 2정도는 나가 있는 것 같아요. 한 달로 치면 주말 제외하고 일주일을 출근 못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집에서 이해해주니 이렇게 나가 있을 수 있죠. 이 일을 정말 좋아하기도 하고요. 젊은과학자라는 타이틀도 그래서 주신 것 아닐까요. 현재 과학자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이 일은 매력적이지 않거든요. 정말 좋아하거나, 아니면 사명감을 갖고 있거나 둘 중에 하나죠. 저는 전자였다가 후자로 가고 있는 과정인 것 같아요."

현재 37세로 지질자원연 선임연구원 중에서는 막내에 속한다는 그. 현장에서 경험을 통해 체득하는 일이 마냥 즐겁다는 그에게 지질학 연구는 딱 맞는 직업이 아닐 수 없다.

◆ "과거는 현재의 열쇠, 현재는 미래의 열쇠, 지질은 미래를 보는 창"

실제 지질도 작성을 위해 작업하는 모습. 흡사 등산가의 모습이다.
실제 지질도 작성을 위해 작업하는 모습. 흡사 등산가의 모습이다.
"누가 저희를 보고 과학자라고 생각하겠어요. 허허허."

일단 현장에 나가면 망치부터 꺼내는 이들. 산넘고 물건너 찾아간 곳에서 지질전용 망치로 암석을 판단하고 샘플을 수집한다. 정확한 암석의 구성을 파악하기 위해 박편을 제작한 후, 관찰과 해석, 지질연대 등을 분석하는 작업을 수행한다.

이렇게 말처럼 쉬우면 좋으련만, 지질도의 어려운 점은 한반도가 하나의 암석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화강암, 퇴적암, 변성암 등 여러가지 암석이 골고루 나타나기 때문에 지질도를 작성하는 연구원들은 전공이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지질 상식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야 한다. 야외에서 판단하지 못할 경우, 기계를 이용해 관찰하거나 자문을 구하는 등의 후속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권 박사의 전공은 퇴적암과 화산암이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지역은 줄포 지역이다. 그는 "전공하고 잘 맞는 곳이다. 줄포에 퇴적암과 화산암들이 많다"며 "화산도 없는 나라에서 화산암을 연구하는 게 무슨 필요가 있냐고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러나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선 꼭 필요한 연구다"고 강조했다.

이유는 백두산 폭발에 있다. 백두산 화산 폭발을 예측하지 못할 경우, 재앙이 덮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는 것. 서고동저 기압일 때 백두산이 폭발하면 화산재가 국내로 유입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실제로 백두산은 지난 4천년간 10번에 걸쳐 폭발했다. 969년 대폭발시 960억㎥의 분출물을 성층권인 25km 상공까지 뿜어 올려 함경도를 거쳐 1000km 이상 떨어진 동해와 일본 동북부 및 홋카이도까지 도달시켜 지구기후에 상당한 영향을 끼졌다. 불화수소 약 2억톤과 아황산가스 2300만톤이 함께 나와 야생동물과 가축의 질식, 산성비, 오존층 파괴도 일으켰다.

백두산이 분출하게 되는 때를 대비해 연구를 진행해야 하는데, 현재로선 한국 연구진이 중국과 북한에 들어가 연구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은 상황이다. 현재도 지질자원연에서 중국과 공동연구를 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 중이지만 '동북공정' 등으로 얽혀있는 인식 차이로 한 발 전진하기가 힘든 실정이다.

권 박사는 "백두산의 위험도, 분출할 때의 화산재를 예측하려면 이곳과 비슷한 화산을 연구해야 한다. 과거의 화산암을 연구하면 그것을 바탕으로 현생 화산을 예측할 수 있다"며 "과거는 현재의 열쇠고, 현재는 미래의 열쇠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암석을 연구하는 게 의미가 있다. 사후약방문이 아닌 사전약방문인 셈이다. 우리는 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 다른 나라와 달리 지질학이 인기없는 한국…'왜'냐고 물으니 '심심해서'?

지도를 들여다보면 전문용어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지질도 작성을 위해 지도는 필수다.
지도를 들여다보면 전문용어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지질도 작성을 위해 지도는 필수다.
"우리나라 지질은 참 심심하죠."

우리나라 지질학이 인기없는 이유에 대해 물으니 대뜸 '재미없기 때문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땅도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등으로 구분돼는데 우리나라는 대부분의 땅이 노년기에 속한다. 지질학적으로 이슈가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

그는 "지진과 화산 등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곳이면 지질 쪽이 많이 부각되기 마련이다. 지질도가 잘 발달된 나라는 대부분 그렇다"며 "영국의 지질이 발달한 이유는 식민지를 많이 가졌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화산 활동도 없고, 지진도 규모가 작기 때문에 국민들이 크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슈가 안돼니까 지질학자들이 하는 일들이 크게 부각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지질도 작성은 순전히 노하우에 의해 그려진다. 노하우를 쉽게 전수하기는 어렵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권 박사는 "지질도를 만드는 게 1년 연습해서 되는 게 아니다. 10∼20년 이상씩 하는 분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하는 게 바로 지질도다"라며 "시간과 돈에 비해 학자들이 얻을 수 있는 결과가 작다. 2년간 많은 출장을 다니지만 논문을 쓸만큼 심도있게 연구를 하진 못하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체력적으로 힘들다. 산도 나고, 계곡도 타고, 물도 넘고 해야 하는데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어렵다"라며 "아이러니한 점은 경험이 쌓일수록 지질도 작성에 숙련도가 붙는다는 점이다. 그때가 돼서야 은퇴를 해야 한다니 아쉬운 점이 많을 수 밖에 없다. 국가 중점사업이기 때문에 예산이 부족하진 않지만 인력이 너무 부족한 게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지질학 선진국들의 경우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여 토론을 하면서 양질의 데이터를 구축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전공자들이 다양하지도 않을 뿐더러, 학생들이 많이 없어서 인력 수급에 큰 차질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권 박사는 "교수들이 안하니까 학생들도 안한다. 실내에서 분석하는 것은 잘하는데, 실제로 야외에서 지질도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가진 학생들은 부족하다"라며 "경험에서 체득하는 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힘드니까 안하려고 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정받는 직업 중 하나가 지질학이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힘들어도 피하지는 않을 생각이다. 권 박사에게 이 일은 천직이기 때문이다. 그는 "화산암과 퇴적 분지들의 진화과정을 계속 연구하고 싶다"며 "중생대에서부터 신생대의 화산암과 분지 진화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 지질구조를 통합적으로 연구하는 게 꿈이다. 앞으로도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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