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군 마령면 백마교~방화~계남마을
글·사진 조문환 선생

▲첫차, 하동발 광양행 완행버스가 겨울 새벽공기를 가르고 섬진교위를 달린다. 섬진강은 분단의 선이
아니라 연결의 끈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 것을 진실로 믿는다.
ⓒ조문환 선생

▲이번 답사는 진안군 백운면의 보물인 물레방앗간을 출발하여 백마교, 방화, 계남마을구간 약8km를 걸었습니다.
내동산을 중심으로 우측은 백운면, 북쪽은 마령면, 서쪽은 성수면 그리고 남쪽은 임실군 성수면이 둘러싸고 있습니다.
ⓒ조문환 선생

섬진강으로 향하는 길에 가는 겨울비가 내렸다.
비는 땅을 젖게도 하지만 사람의 가슴을 더 적시는 것 같다.

아무리 화가 치밀어 오르는 날에도, 아무리 마음 갈피를 못 잡는 날에도, 사람으로 상처입고 내 마음 추스리지 못하는 날에도, 비를 맞으며 강둑을 걷을 땐 터질 듯한 가슴도 빗물에 잠재워졌었다.

아니 그 누구도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고 세상 모든 것 까지도 사랑 하지 못할 것 없었을 것 같았다.
그것이 강에 내리는 비의 힘이다.

감당하지 못할 비가 아닌 이상 섬진강으로 향하는 나의 발길을 돌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섬진강은 비가 내릴 때 더더욱 섬진강이 된다.

바람 한 점 없는 날, 참빗처럼 가느다란 실비가 하늘에서부터 강물에 꽂힐 때
강물은 잔잔한 노래가 된다.
 

▲비가내려 눈이 녹고 성급하게 나온 버들강아지가 얼어붙었다.
하지만 강물에 비치는 하얀 버드나무가지에서 저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봄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조문환 선생

비가 내려 대지를 하얗게 덮었던 눈이 녹아버리고
빗물에 젖어 원색으로 변한 갈색이 온 세상을 색칠 해 놓고 있었다.

섬진강은 백마산이라고도 불렸던 내동산을 만나 북쪽으로 급격히 휘감아 돌더니
백마교를 지나 만취정에 이르자 용이 승천하는 듯한 기운에 사로잡혀
또다시 서쪽으로 휘감아 돌았다.

그 힘으로 강물이 범람하였을 터이고
원평지마을과 방화마을, 계남마을을 적셔 질펀한 평야를 만들어 놓았다.

장구한 세월동안에 강이 휘감아 돌고 넘치는 일이 반복되어 이루어 놓은
일종의 순리의 흔적이지 않을까?

여기에 당도하고서야 섬진강은 급격하고 가파른 계곡의 습성에서 벗어나
비로소 여유와 느림의 템포를 가지게 된 듯하다.

알레그로에서 안단테로 템포를 급격하게 조절한 느낌이다.

 

▲내가 사는 동네에도 용소가 있었다.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만취정아래 강물은 휘감아돌았고 물깊이를 봐도 용이 살았음직한 곳으로 보였다.
ⓒ조문환 선생

강물만큼 순리에 순응하는 존재가 있을까 싶다.
바위를 만나면 부서지고
계곡을 만나면 낭떠러지를 향해 몸을 던진다.

산을 만나면 휘감아 돌고 평지에서는 온 몸을 누인다.
협곡을 만나면 급하고 강한 바람처럼 소리를 지르며 달음박질 하다가도
이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넓은 평원에서는 호흡을 가다듬는다.

무엇보다 강은 역류하지 않는다.
때론 바닷물은 역류하여 낭패를 보게 하지만
강은 절대복종, 절대순응이다.

세상사들이 문제투성이로 뒤범벅이 되고 있는 것은
순응하지 않고 역류를 자행하기 때문이다.
순리가 파괴되고 분수를 알지 못하며 자기자리를 지키기 못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볼 때 애처로움이 묻어나는 것도
順理보다는 易理를 택하고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현상 때문이지 않을까?

 

▲섬진강 어디를 가나 볼 수 있는 보, 농사를 짓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시설이기는 하나 각종 물고기의 상류진입을 어렵게 하는 크나큰
장애물이기도 하다. 어디나 순리가 있고 역리가 있는가 보다.
ⓒ조문환 선생

방화마을에서 계남마을로 흐르는 섬진강 둑에 이르자
소년시절에 동네 앞 시냇가 언덕배기에서 소 먹이던 일이 생각났다.
잘 길들여진 소는 짐승이라기 보다는 또 하나의 식구였다.

한 번씩 소가 아파 먹지 못할 땐
아버지는 당신의 밥을 아껴 된장을 풀어 떠 먹였고
소가 기운을 차릴 때 까지 떠나지 않고 온종일 손으로 긁어주셨다.

소가 팔려가는 날에는 아침부터 온 집안이 울었다.
떠나기 싫은 소도 울고 소가 떠나는 길을 보고 아버지도 울었으며
소 마구 빈자리를 보고 온 집이 울었었다.

소는 고삐를 놓아도 뛰거나 도망하지 않았다.

언덕배기에 앉아 책 읽기에 빠져 있을 때,
소는 남의 논에 있는 벼를 한 잎 물었다.

어디서 왔는지 젊은 논 주인이 나타나 소를 잘 보지 못한다고 나무랄 채비였다.

내 손에 책이 있는 것을 보고는
책 보느라 그랬구나, 열심히 공부하거라!
하시면서 오히려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그 뒤에도 소 먹이러 가는 일이 있을 때마다
소 따로, 소먹이는 아이들 따로 놀았다.

해 질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우리는 의기양양 대장이라도 되는 듯
나뭇잎으로 각양각색 옷을 만들어 입고 개선장군처럼 동네로 들어왔었다.
 

▲어디 이곳 뿐이겠는가? 우리나라 어느 시골을 가다 시냇가 언덕은 소먹이는 명소였다. 소는 소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해지는 줄 몰랐었다. 저 멀리 의기양양 멋부리고 귀환하는 동무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조문환 선생

요새는 소가 불쌍하다.
식구와의 교감이 없어진지는 이미 오래다.

식구가 아니라 상품이고 규격화 획일화된 일종의 공산품이다.

소가 팔려나가도 울어줄 사람도 없고
정작 팔려나가는 소도 울 줄 모른다.

강둑에 앉아 소를 먹이는 소년의 목가적인 모습은 더더욱 보기가 어려워졌다.
섬진강은 그래서 좋은 친구를 잃은 셈이다.

강물이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 것처럼

소는 강 언덕에서 풀을 먹고, 아이들은 소와 어울려 놀고
사람들은 강물처럼 순리대로 살아가는 세상이 다시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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