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남정미소, 마령면 소재지
글·사진 조문환 선생

▲발광체 섬진강, 겨울섬진강은 청아하다. 짜릿한 태양에 반사되는 물결은 완전한 발광체다. ⓒ조문환 선생

섬진강은 촌놈이다.
그의 생김새도, 그의 생각도, 그의 추임새도 그리고 그의 음성도 그렇다.
오랜 촌티덕에 화장빨도 먹히지 않는다.

섬진강을 걸으면 온통 자연소리 뿐이다.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그리고 갈대 스치는 소리다.

그 속에서 오직 사람소리란
이들에게 말 걸고 이들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어줄 나의 발걸음뿐이다.

나 또한 촌놈이다.
오로지 촌에서 살다가 촌에서 죽을 운명이다.
그래서 둘은 궁합이 잘 맞나보다.
 

▲이번에는 계서리 계남정미소와 마령을 답사했습니다. 저 멀리 마이산의 두 귀가 쫑긋하고 그 바로 아래에는 광대봉이 마령사람들을 빤히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계남정미소는 섬진강변의 탁월한 문화유산이었습니다. ⓒ조문환 선생

섬진강과 함께 걷다 보면 그 멋 떨어진 모습에 매료되곤 한다.
섬진강이 멋있다고? 매력적이라고?
그렇다. 섬진강은 매력적이고 멋있다.
어쩌면 그래서 자연의 멋을 추구하는 나와도 궁합이 잘 맞나보다.

물론 이는 제 눈에 안경이고,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하고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을 때 들을 수 있는 일종의 하늘의 선물이다.

데미샘에서 출발한 섬진강은 오십 여리를 달려 마령에 도착한다.
섬진강도, 나그네도 이곳에서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쉴 수 있다.

그 첫 번째 쉼터가 된 곳이 계남정미소였다.
김지연 선생의 애틋한 사랑이 공동체박물관으로 재탄생 시킨 곳이다.
이곳은 비 오는 날 섬진강변을 걷다가 우연히 만난 특별한 선물이었다.

겨울이라 이날은 휴관이었으나 정미소 안내판에 새겨놓은 연락처를 통해서
이레 후 특별방문 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행운을 잡았다.

평소 선생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던 송선순선생님은
아직 햇살도 제대로 퍼지지 않은 겨울 아침에
길가는 나그네를 극진히 환대해 주셨고
마치 본인의 일처럼 정성을 다해 주셨다.

정미소는 거의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
단지 선생의 세밀한 촌사랑, 옛사랑의 터치가 잔잔히 묻어날 뿐이었다.
그러나 그 작은 터치가 정미소를 영혼이 살아있는 보물로 만들어 놓았다.

한 사람의 열정과 애정이 죽음과 같았던 육체에 영혼을 불어 넣을 수 있다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미소에는 동네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적어도 이백 여년은 넘었을 것 같은 치부책 (治簿冊),
회갑 날 동네 사람들로부터 받은 선물을 기록한 물선기(物繕記)와
여러 가지 기록들이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물선기에서는 당시 사람들의 인정과 삶의 모습을 고스란히 발견할 수 있었다.

국수 한 봉지, 생 꿩 한 마리, 계란 한줄, 돈 일백 원......
그 어디를 보아도 가식이 없었다.
이것보다 마음을 주고 정을 주는 선물이 있을까?

수천 억 원을 들여 만들어 놓은 박제된 공룡전시장보다 더 펄떡이며 뛰어다니는
살아 있는 옛 생활 박물관이었다.

선생께서는 전라도 일대 정미소라는 정미소는 모두 찾아다니시는 수고를 통해서
그 위대한 기록들을 책으로 남겨놓으셨다.

이를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일종의 사명감이나 소명감이랄까?
취미라고 하기에는 그 작업이 너무 위대하게 보였다.

"대한민국의 보물을 이곳에서 발견하다"는 글을 방명록에 남기고 돌아서니
저 멀리 말의 두 귀가 귀를 쫑긋 세우고 섬진강이 하는 말을 귀담아 듣고 있었다.

 

▲한 사람의 꿈과 열정이 죽음과도 같았던 정미소를 살아 있는 생명체로 탈바꿈 시켜 놓았다. ⓒ조문환 선생

마이산이다.

귀는 컸지만 정작 말은 없었다.
입이 없기 때문인지 모른다.

세상은 듣는 귀보다 말하는 입이 날래기 때문에 소란스럽지 않을까?
주둥이 때문에 망했다는 말은 들어봤어도 귀 때문에 망했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마이산은 수 없는 날 동안 마령사람들의 애환과 삶의 소리를 들어왔을 것이다.
그의 귀를 빌어 마령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싶었다.

마이산 아래 광대봉은 마령사람들 곁에 서 있었다.
하루에도 몇 차례 그 표정이 달라지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 광대봉이다.

이날 우리가 방문했을 때 광대봉은 입꼬리가 내려와 있었다.
무슨 불만이 있는지 모른다.
아니 내가 가진 불만이 광대봉으로 표출되고 있는지 모른다.

감정의 전이라고 할까?
그것이 아니라면 마령의 쓸쓸한 모습에 가슴이 아렸는지 모르겠다.

사실 주말이라 그런지 마령은 고요했다.
거리를 보아하니 아직도 옛 영화의 잔재가 고스란히 남아있기는 했으나
마치 정교하게 조성된 드라마 세트와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시간이 멈춰진 듯한 거리,
이보다 더한 드라마 속의 마을은 없을 것 같다!

 

▲천의얼굴 광대봉, 그는 마령사람들과 함께 수만년을 살아
왔을 것이다. 그에게 마령사람들의 얘기들을 들어보고 싶었다.
ⓒ조문환 선생

마이산의 큰 귀를 빌려 불과 30년 전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었다.

"마담, 여기 와서 같이 커피 한잔하지!"
그리고 다방 한켠에서는 마담과 귓속말을 소근대는 호수다방안의 남정네들,

"여기 짜장면 곱배기 두 그릇!"
하며 외치는 소리로 떠들썩한 중국집 대관원,

뼈 빠지게 농사지어 나락 한 가마니 지고와 자식들에게 쌀밥 먹이려는 마음에
힘든 줄도 몰랐던 삼인정미소,
등굣길에 계란 한 알 들고와 공책과 연필을 바꾸어 갔던 마령서점,

장날에는 하루 종일 수건 둘러쓰고 앉아 파마머리 하는 아낙네들로
하루해 지는 줄 몰랐을 영머리방 미용실,

한때는 시장에 온 사람들로 북적거렸을 마령정류소,
지금은 사료판매, 택시와 버스매표소, 자판기까지 그 기능이 크게 확대되었지만
어째 마음이 그리 편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이 모든 것을 마이산은 그 큰 두 귀로 들었을 것이며
광대봉의 두 눈으로 보아왔을 것이다.

그 영화로웠던 세월을 등지고 쓸쓸히 돌아 앉아 있는 오늘의 마령을 바라보면서
광대봉은 그렇게 풀이 죽어 있었나 보다!

마령사람들과 함께 웃고, 울고, 떠들기도 했을 광대봉,
이것이 광대봉의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시간이 박제된 곳,
다시 그날의 영화를 되찾을 수 있을까?

오로지 세월은 섬진강과 같이 흐를 뿐이고
그 해답을 줄 수 있는 이는 마이산과 광대봉 뿐 아닐런지....

그 해답을 뒤로하고 나는 발길을 수선루(睡仙樓)로 옮겼다.

 

▲시간이 멈춰진 곳, 마령의 모습들. ⓒ조문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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