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환 선생

섬진강은 매화에서 벚꽃으로, 벚꽃에서 배꽃으로 바통을 넘겼다.
불과 보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섬진강의 주인은 세 번이나 바뀌었다.

내일의 주인공은 또 누구일까?
진달래? 철쭉?

매화와 벚꽃은 바람이 데려가 버렸다.
하루 아침에 뚝뚝 피는가 싶더니 하루 아침의 바람이 낚아 채 가버렸다.
게 눈 감추듯 한 번의 깜빡임 순간이었다.

배꽃은 언제 피었는지 모르게 피었다가
나무에 달린 채 퇴색되어 이슬처럼 사라져 버린다.

동백꽃은 떨어지는 순간까지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다.
떨어진 채 바람에 나뒹구는 동백꽃은 한동안 그 빛을 잃지 않은 인내를 지녔다.

담벼락 넘어 '쿵'하는 소리가 났다면 이는 분명 목련이 내는 소리다.
그 삶의 무게만큼이나 떨어지는 소리도 무겁다.

벚꽃의 일생은 매화에 비하면 반 토막도 되지 못한다.
그 짧은 생애를 위해 온갖 고초를 겪었나 생각하니 가슴이 짠하다.
 

ⓒ조문환 선생

벚꽃 다음에 피는 꽃은 배꽃이다.
벚꽃에 비하면 배꽃은 삶이 아니다.
그 피는 모습은 닮았지만 그의 순간은 찰나다.

배나무 아래 살아도 자칫하면 그 피고 지는 순간을 놓칠 정도다.
오죽했으면 내가 작년에 그의 이름을 홍길동꽃이라고 지었겠는가?
역시 이 녀석도 사람들 가슴만 건드려 놓고서는 도망가 버렸다.

봄은 바람둥이다.
사람들 가슴에 설렘만 남겨놓고 오자마자 바람처럼 달아나 버린다.

그래서 누군가가 4월을 잔인하다고 했을까?
죽을 힘을 다 해 피워놓은 꽃을 하루아침의 봄바람으로 앗아가 버리니
잔인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으랴!

올해는 매화를 피워내기 힘들 정도로 봄은 더디에 오더니
언제 오는지도 모르게 도둑처럼 왔다가 도둑처럼 도망가 버릴 태세다.
매화, 벚꽃, 배꽃 한 자루씩 담아서 야반도주라도 하듯이...

다시 또 오기만 해봐라 내 그냥 두지 않을 테다!!!!

봄비가 내린 4월의 월요일 아침,
밤새 내린 비로 동백꽃이 청사 마당에 흩뿌려져 아라비아산 양탄자를 깔아 놓은 듯 하다.

검붉은 꽃송이 하나를 집어 올리니 우주의 육중한 무게가 꽃송이 하나에서 느껴졌다.

그 꽃송이를 가져와 동료들에게 한 잎씩 떼어주면서
이 꽃잎 하나에 우주가 담겨져 있어요. 자, 우주를 받으세요!라고 하니

"아 정말 그래 보이네요. 우주가 보여요!"라고 하는 사람
"별걸 가지고 다 의미를 부여하시네..." 가지가지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분명 붉은 꽃잎 하나에 우주가 담겨져 있었다.

그 속에는 우주의 생성원리,
그동안 우주가 걸어온 길,
해와 달과 별의 운행,
이 땅을 살아간 인류의 웃음과 환희, 눈물과 애환

그리고 출근길 나의 작은 발자국 소리와 오늘 아침에 내린 안개비까지...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보였다.

꽃은 언제 피어야 할 지, 언제 떨어져야 할 지 정확히 알고 있다.
그 떨어짐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세상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하루 더 피어있기 위해 발버둥치지도 않는다.

마지막 순간까지 온갖 힘을 쏟아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러나 꽃으로 산다는 것은 화려함이나 영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꽃이라고,
못생긴 꽃이라고,
꽃 같지 않은 꽃이라고,
들판에 피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꽃이라고,
떨어질 때 모습이 아름답지 못하며 추하다고,
향기가 없다고,
가시가 있다고,
때로는 왕따로 손가락질로,
.....

꽃이라고 해서 영광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꽃은 영광이 없다고 해서 피어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손가락질 당할 것이라고 해서 그의 인생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로지 그의 본질, 그의 본분, 창조주의 섭리에 따라 그의 역할을 다할 뿐이다.

나 스스로에게 한 송이 꽃으로 살고 있는지 되물어볼 일이다.

피어날 때 온갖 괴로움을 당했는가?
죽을 힘을 다해 살고 있는가?
지는 모습까지도 아름다울 수 있는가?

오늘은 살아가는 나의 모습 속에서도 우주의 DNA가 살아있을지 궁금하다.

꽃으로, 한송이 꽃으로, 우주를 담은 꽃으로 살아가고 싶다.
내가 한 송이 꽃으로 살다 떨어졌을 때
누군가의 손에 들려져 진한 향기로 전파되었으면 한다.
 

ⓒ조문환 선생

봄비에 떨어져 있는 꽃 한송이를 손에 담아보라.
우주가 느껴지면 그대는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 봄에 주체할 수 없는 꽃의 향연을 들었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행복한 사람이다.

하염없이 흩날리는 꽃비를 맞아 보았는가?
그렇다면 그대는 자연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순간을 맛보았다.

계절의 변화는 안단테가 아니라 프레스토와 포르테,
곡선이 아니라 직선으로 달려가고
나는 아직도 섬진강이 안겨 쉬고 있는 옥정호를 맴돌고 있다.
 

ⓒ조문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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