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을 향해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공식적으로 하락받고 늦잠 잘 수 있는 게으른 토요일 아침이
바쁜 시간으로 바뀌었다.

비 그친 아침,
지리산 끝자락 구재봉 너머로 새로 태어난 듯한 태양이 떠오르고,
맞은 편 형제봉 봉우리에 그 빛이 반사되어
평사리 들판의 청보리 밭을 조명하고 있다.

불과 열흘 전에 꽃대궐을 이뤘던 19번 국도 평사리 벚꽃터널이
이제는 신록의 대로를 이뤄 섬진강을 탐하는 나를 개선장군 대하듯
열병식을 거행해 주었다.

뻥 뚫린 국도, 발걸음 가벼워진 애마는 나보다 먼저 섬진강에 가려는 듯,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새로울 순 없다.
이렇게 초록일 순 없다.
봄비 후의 산야는 모든 것이 새 것이다.
창조 후의 신비,
갓 태어난 아기의 손가락 같이 이파리들이 나풀거렸다.
강 건너 백운산 자락의 산벚꽃이 분발라 놓은 새색시 얼굴같이 수줍어 보였다.
새 잎이 돋아난 형제봉 자락의 단풍나무 초록은
푸르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언어의 제한됨에 내 혀가 굳어진다.

푸르다? 희푸르다? 검푸르다? .......

인간의 표현방식은 자연의 그것에 비하면 이처럼 저급하고 짧고 우둔하다.

초록이면 다 같은 초록이 아니다.
지리산 자락 모든 이파리들이 하나도 같은 색깔이 없다.
어떻게 이처럼 다른 칼라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섬진강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자연으로부터 쏟아져 나오는 창조적 에너지로
나는 기가 질려버렸다.

오늘은 또 옥정호를 맴돌아야 한다.

옥정호는 옅은 안개로 덮여 마치 파스텔로 칠해 놓은 듯 하다.
749번 지방도를 따라 늘어서 있는 벚꽃나무는 이제 한창이어서
멀리서도 도로가 어디로 뻗어 있는지를 가늠하게 해 주었다.

옥정호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오봉산에 걸터앉아 내려다 본 옥정호는
인공위성에서 찍어놓은 정지화면처럼 일순간 움직임이 중단되어 있었다.

아니 애초부터 이곳에 움직임이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리아스식 해안을 연상할 정도로 숨가쁘게 돌출되고 함몰된 호수의 형상만이
그나마 움직임을 연출해 주는 듯 하다.

여행가들이 불러주어서 이름이 되었다는 붕어섬은 박제된 듯 움직임이 없었다.
호수가 되기 전 원시의 섬짐강이었을 때에 붕어섬은 분명 섬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송아지골 정도 되지 않았을까? 천방지축 뛰노는 송아지 말이다.

마을도 옹기종기 살아 있었을 것이다.
아마 저 붕어섬만 하도라도 몇 개의 마을이 있었을 것이다.

<잿마을>은 마을이라기보다는
수몰로 이주행렬에서 낙오된 몇몇 가옥들만 쓸쓸히 동네를 지키고 있었고
폭탄 맞은 듯한 폐허된 가옥들이
이곳에 큰 마을이 있었음을 증언해 주는 듯 하였다.

내 왼손을 뻗어 놓은 것처럼 생긴 용운리에는 마을이라야 <내마마을>이 전부다.
이미 다른 용도로 바뀌어 버린 폐교에 꽃비가 내리고 있었고
짖지도 않는 개가 나물을 가리는 주인 옆에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마을도 정지된 상태다.
다 쓰러져 가는 주택, 그래도 지붕을 의지하고 어둑어둑한 방에
촌로 혼자 외로이 텔레비젼을 응시하고
움막식 재래식 화장실이 위성접시 안테나와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이것 만큼이나 대조를 극명하게 이루고 있는 것은 또 있다.
옥정호의 상류지역이 수몰로 인해 떠난 자리의 공허함과 폐허와 같다면,
중하류지역은 돌아온 자들의 화려함이었다.

돈이 될 만 한 지역에는 펜션과 카페 그리고 다양한 유흥시설이 즐비하다.
여느 지역의 호숫가 명소와 다를 바 없이 성업 중이다.

옥정호는 분명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다.

인공의 아름다움과 버려진 자리의 추함,
개발의 역동성과 퇴락한 자리의 정체성,
부자와 빈자,
돌아온 자와 떠난 자,
욕망과 좌절 ...

<잿마을>에 남아있는 자들의 가슴 저림은
아직도 떨림으로 남아 빈 마을을 흔들고 있는 듯 하다.

고향을 그리워 하는 열 여덟 마을 19851명 실향민들의 가슴이
망향의 비석이 되어 옥정호를 내려다 보고 있다.

그들의 비가(悲歌)를 여기에 적어본다.

사라진 흔적, 가슴에 새기며
-봄향 김춘자

국사봉 아래, 운암강 흘러 흘러 이룬 터전,
하늘 아래 구름과 땅 위의 바위가 어우러진 운암,
산자락엔 실한 열매 가득하고,
조상님들 얼과 혼이 서린 골짝마다 오순도순 들어앉은 마을들,

수천 년을 살았던 땅, 수만 년을 이어갈 땅,
몸 붙여 살던 집, 마음 바쳐 짓던 문전옥답
속수무책 차오르는 물 속에 잠기는데,
희로애락 함께 하던 이웃들과 뿔뿔이 흩어지는데
설움은 삼켜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멈출 수 없었다.

삶의 터를 잃고 떠나야만 했던 애달픈 운암 사람들
안타깝고 눈물겹던 그 날들은 시간 속에 흘러간다.

그림 같던 고향! 꿈결 같은 추억!

그리움 담아 잃은 듯 새로이 태어나 여기 있다.
운암강 그러안아 옥정호 탄생하고
외안날 물안개 피어올라 선경을 이루었다.

나래산 줄기 따라 오색구름 날아드는데
지난 날의 서러움은 푸른 물에 묻어두자.

실향의 아픔도 망향의 애틋함도 고이 접어 가면서
한 세월은 가고 우리들의 이야기는 온 산천에 새겨져 유구한 세월 이어 가리라!

순수한 목적이라면 비록 그 과정이 어눌하더라도 결국에는 승리한다는 확신이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순수한 목적이라도 그 수단이 불경했다면
그 목적은 물론 그 순수함 또한 악함으로 낙인찍힐 것이다.

그러나 옥정호는 애초부터 목적이 순수하지 못한 동기로 태어났을 것이다.
그러니 그 과정인들 순수했겠는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옥정호가 아니라 옥정호를 있게 했던 이들이다.
옥정호의 탄생은 섬진강을 이용하려는 오욕에서 탄생된 허상 때문이다.

인공의 아름다움을 탐하는,
허영으로 가득찬 역동성의 추구와 욕망,
돌아온 자와 부자들을 위한....

사람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인지 모른다.
섬진강 그리고 옥정호에서 내가 본 것은 내가 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 내 내면의 왜곡된 형상이 그대로 옥정호에 투영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은 명제가 아닐까?

강은 흘러야만 강이다.
흐르지 않는 것은 강이 아니다
상한 갈대와 옷깃 스치지 않았다면 그것은 강이 아니다.

때로는 가뭄에 말라 배고파 보지 않았다면 이는 진정한 강이 아니다.
바위에 부딪히고 찢어져 보지 않았다면 이는 삶을 모르는 강이다.
백사장에 노닐고 있는 게와 눈 마주치지 않는다면 이는 강이 아니다.

받기만 하고 보내지 않는다면 이는 강이 아니다.
배고프고 부딪히고 찢어지고 갈라지며 눈 마주쳐야 강이다.
흘려야 강이다. 흐르지 않는 것은 강이 아니다.

섬진강아, 섬진강아!

너는 흐름이 아니라 정체됨을 위해,
생존이 아니라 이용당함을 위해,
순응이 아니라 거역을 위해
운암골이 옥정호가 되어 나의 몸이 찢어지고
운암골 사람들의 가슴앓이는 망향가로 탄생하였다.

널 단절시켰던 섬진강댐,
그 댐으로 생겨난 옥정호,

너 섬진강 댐에 나 할 말 많으나 운암골 사람들의 비가(悲歌)로 대신한다.
나 오로지 하고 싶은 말은 "흘러야 강이다"

(섬진강댐은 1965년도에 건설되어 다목적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운암면 18개 마을이 수몰되어 19851명이 실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댐으로 인해 섬진강 본연의 기능을 유지하기 보다는 공단, 농업 및 생활용수를 위해 섬진강은 이용만 당하고 하류로 내려 보내지는 물의 양은 고작 초당 1톤 정도입니다. 이로 인하여 섬진강댐 이남의 강은 생태계 파괴는 물론 바다화로 강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섬진강의 서정성 속에 감춰진 섬진강의 아픈 운명입니다. 섬진강을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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