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상을 따라 거닐면서 섬진강의 매력으로 다가온 것은
그의 완벽한 미,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는 정갈함,
한 폭의 그림과 같은 회화성,
나아가 한 수의 시와 같은 서정성이 듬뿍 담긴 문학적 소재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헐겁고 수수한 외모,
어디에나 퍼지고 앉아 같이 수다 떨면서 놀 수 있는 편안함,
구도가 완벽한 그림이나 정제된 시어의 집합이 아닌
초등학생 어린이의 수수한 크레파스 그림 같고
침 발라 연필로 꾹꾹 눌러 쓴 일기장 속의 얘기와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직 한 곳만은 섬진강도 완벽한 작품이 되는 곳이 있다.
나는 지금까지 이것만큼 완벽의 미를 본 기억이 없다.
완벽이라는 단어를 이것 외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만 한 대상을 발견하지 못했다.

완벽이란 더 더함이 없고 더 뺄 것이 없는 것이라 했지만
이곳은 더함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함을 갖춘 곳이다.

보름달이 떠야만 한다.
찻잔이 기울어져야 한다.
그리고 땡기는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한다.

어쩌면 매우 쉬운 일이면서도 그렇게 호락호락 쉽게 얻을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어딘지 궁금하고 답답할 것이다.

바로 섬진강가 평사리 백사장이다.

석양에 섬진강이 붉게 물들고
온 백사장이 휘어감아 돌리던 평사리 강바람도 잦아들 무렵이면,
구재봉 꼭대기에 보름달이 걸터 앉는다.

이윽고 달은 섬진강 위로 살포시 내려앉고
달과 강과 사람이 하나 되는 순간이다.

누군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나는 달을 유독 좋아한다.
그래서 스스로 붙인 별명도 월광이다.

그것은 달은 은유이기 때문이다.
시가 되고 노래가 되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를 말하자면 나는 비정치적이고 비경쟁적이며,
말보다 글이고 손과 발보다는 가슴이다.
그래서 글은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쓰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현실보다는 상상을, 미래보다는 과거를, 빛보다는 그림자를, 바다보다는 산을,
날카로운 선율의 바이올린보다는 다소 무디고 느린 첼로를 좋아한다.

내가 달을 좋아하는 것은
그는 당을 만들지 않고 우리 편이라 말하지 않으며,
전투력이 없고 승부를 걸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론 태양은 피하려 했지만 그 누구도 달은 피하려 하지 않는다.
태양은 순간도 응시할 수 없으나
달은 밤이 새도록 쳐다봐도 눈부시지 않고 지겹지 않다.

태양은 내가 아무리 손짓하고 달려도 따라오지 않았지만,
달은 내가 달리면 달리고, 걸으면 걸으며, 멈추면 멈춰서는 늘 나와 동행이었다.

태양은 이성이고 달은 감성이다.
태양은 역사고 달은 신화다.

나는 달을 닮아 이성과 역사보다는 감성과 신화를 탐하는 쪽이다.
그것은 어릴적 달과 함께 놀았던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내 어릴적 여름 밤,
휘영청 달이 밝아 그 황홀함에 잠들지 못할 때
마당을 서성이다 집 앞 무덤가에 심어놓은 호박꽃도 달빛에 잠 못 이루고,
헤픈 감정으로 그 큰 꽃 문을 열어젖히며 보름달만큼이나 빛을 발해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동무들과 총 놀이며 숨바꼭질했던 추억이 있던 것도
밝은 달이 함께 놀아주었기 때문이다.

동네 앞 시냇가에 나가 횃불 들고 가재 잡을 때
그 가재와 눈 마주친 것은 나 뿐 아니라 내 등 위에 내려앉은 달이었다.

이제 그 달이 조화를 이루어 완벽함을 이루는 시간이다.
1년에 단 한번 오월의 밤하늘을 보름달이 비추는 섬진강 달빛차회다.

상상해 보시라!
달이 섬진강가 백사장에 내려앉고,
천여 명의 차인과 달과 차를 탐하는 낭인들이 등불을 켜고 마주 앉았다.

한복 곱게 차려입은 다인들의 얼굴에 달빛이 비춰지면
다인들의 얼굴은 또 하나의 달이 되고
그 달은 찻잔에 또 내려 앉아 백사장은 온통 달님으로 가득찬다.

이윽고 다관에서 찻잔으로 옥로(玉露) 방울이 떨어질 때면,
아! 이것은 완벽의 극치요, 나는 이미 다른 세상에 속하였다.

이것보다 완벽의 미가 있을까?
이것보다 가슴 짜릿한 순간이 있을끼?
이것보다 하나됨이 있을까?

모두가 있고 달이 없다면,
모두가 있고 차가 없다면,
모두가 있으되 섬진가이 아니라면,
모두가 있으나 사랑하는 님이 없다면,
이 모든 것 중에 하나라도 없다면 이는 모든 것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완벽함을 이루는 곳,
그곳이 섬진강이기에,
그곳이 민초들의 얘기가 살아있는 평사리이기에,
그곳에 달이 있고 차가 있기에,
그리고 달을 탐하고 차를 탐하는 낭인들이 있기에.....

보름달이 뜨면 섬진강 평사리로 가자!
그리고 한 잔의 차와 함께 월광곡을 들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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