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영되다!

투영되다!

섬진강은 <물우리>에서 또 한 번 크게 휘감아 돈다.

강이 휘감아 돈다는 것은 살아 있음을 의미하고
길이 굽어 있다는 것은 ‘나 너에게로 가고 있어!’라는 뜻으로 들린다.

덕치초등학교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내 발걸음은 덕치면의 마지막 자락인 <천담리>를 지나
곧 순창군 입구인 <어치리>에 당도할 태세다.

내가 섬진강을 걷는 것은 아름다운 경관을 얻고자 함도 아니요,
내 심신을 단련하고자 함은 더더욱 아니며,
섬진강 소식을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도 아니다.

섬진강이 하는 말,
내 내면의 귀로만 들을 수 있는 섬진강의 음성을 듣고자 함이다.

때로는 내가 쓰는 글들을 위해서 섬진강가에서 무엇을 쓸까? 고민하지만,
내가 섬진강을 얼마나 알겠으며, 얼마나 섬진강을 이해하겠는가?

그런 나의 빈약함을 섬진강은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섬진강에 나갈 때 마다 내게 꼭 한마디의 말을 던져 주었다.

오늘 내가 네게 주는 말은 “너를 나에게 투영시켜라”
그래서 감히 그리고 또 감히 하는 말이지만 나의 섬진강 에세이는
나의 깊은 심연에서 나오는 단상이 아니라
섬진강이 들려주는 말을 대필하는 정도라 하겠다.

그래서 섬진강을 나아갈 때마다 무엇을 쓸까라는 염려는 아예 내려놓고 간다.

마치 기도란 내가 신에게 드리는 말이 아니라
신이 내게 하시는 말씀을 기다리고 사모하는 것이듯
그 미세한 음성을 통하여 나를 발견하고 내가 치유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섬진강에 갈 때 마다 눈 보다는 귀를 더 열어 놓는다.
오늘 섬진강은 내게 또 어떤 말을 전해줄까?

오감을 넘어 나의 모든 세포 하나하나가 미세한 감각기관이 되어
섬진강이 전해 주는 말에 귀 기울인다.

백색의 천지였던 <데미샘>에서는 세미한 바람 같은 음성으로
풍채도 없고 위용도 없는 그를 통해
외모로 사물을 취하지 말라고 나의 세속적 시각에 뒤통수를 때려 주었다.

강줄기가 어머니 탯줄처럼 말라비틀어졌던 진안의 원신안, 유동, 반송마을에서는
너 한 마리의 회귀어가 되어
네가 영원히 돌아가야 할 모천이 어디인지를 깨달으라는 음성을 들려주었다.

<수선루>, 그는 나에게 있어 영혼의 샘, 영롱한 호수 같았다.
어지러울 만큼 여러 번 휘감아 돌아 멈춰선 <수선루> 앞 섬진강은
돌고 돌아가는 것이 인생임을 말해주었다.

할 말을 잃은 <옥정호>에서 섬진강은 만용을 버리라,
네 갈 길에 어려움을 주는 이웃을 탓하지 말라고 말해주었다.

덕치초등학교 앞 징검다리와 함께 섬진강에 투영된 아이들로부터는
결단코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너의 사는 것이 아름답지 못하리라는 음성을 들었다.

이런 음성은 내가 섬진강에서 들은 천둥소리였고 내가 본 번개 불이었다.
미세한 음성 속에서 내 작은 귀가 터져 나갈 듯한 천둥소리,
눈 깜짝 할 사이에 칠흑같이 어두운 천지를 순간적으로 밝히는 번개 불이었다.

그래서 섬진강은 무엇보다 나를 바라보는 거울이다.

내가 섬진강을 걸으면서 바라보는 것은 갈대며, 그 속에 노니는 물고기들,
그리고 수백 년을 섬진강과 함께 살아온 물푸레나무와 미류나무들 이었지만,
나는 섬진강 속에서 먼저 나를 바라보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나의 옷매무새와 같은 겉모습은 물론이고,
나의 깊은 심상까지 바라보지 못하는 것이 없다.

- 섬진강에 투영되다 -

섬진강에 나를 투영하면 나는 구름이 되고,
구름이 섬진강에 투영되면 새가되며,
새가 섬진강에 투영되면 자유가 된다.

섬진강에 나룻배가 투영되면 바다가 되고,
섬진강에 <호동나루>가 투영되면 님이 되며
님이 섬진강에 투영되면 그리움이 된다.

상심한 마음이 섬진강에 투영되면 치유의 영혼이 되고,
미움과 증오가 섬진강에 투영되면 화해와 용서의 파도가 밀려온다.

섬진강에 갈대가 투영되면 속삭이는 얘기가 되고
은빛 백사장에 누워 있는 강에 달이 투영되면 월광곡이 되며,
한숨이 투영되면 哀歌가 되어 돌아온다.

섬진강은 마법사다.
슬픔을 기쁨으로, 좌절을 희망으로, 아픔을 치유로,
비가를 찬가로, 미움을 사랑으로, 떠남을 만남으로 끄집어내는 마법 상자다.

섬진강은 치유의 강이다.
그 어느 것보다 묘한 효험이 있는 처방약이다.
섬진강에 비춰 치유되지 않는 것은 그것은 아픔이 아니다.

오늘날, 나를 투영해 볼 대상이 그 어디인가?
만신창이가 되고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종교에 나를 투영할 수 있는가?

나의 맨토, 나의 스승들은 이미 저 멀리 떠나버렸고 제자들로부터
등 돌림을 받은 지 오래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에게
정의와 목숨을 바쳐서 싸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었던
우리들의 옛 선각자들은 오늘날에는 우리들에게서 멀리 떠나있다.

사이버 세상에 마치 제왕처럼 숨어서
세상을 회치듯, 회오리바람으로 몰아치듯, 세상의 모든 섭리를 다 헤아리는 듯
아리송한 말들로 환각으로 이끄는 이들에게
과연 우리의 생각을 투영시킬 수 있는가?

싸구려 이론과 스타에 목매어 구름 떼처럼 따라 다니다
한 순간 이슬처럼 사라져 버리는 허상과 같은 군중들,
이들에게 절대적 가치는 무엇일까?

섬진강에 나를 투영해보라!

세상 그 어떤 스승보다, 그 어떤 거울보다 나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 아니라
상처 입은 군상들에게 치유와 해답을 제시해 주는 치유의 강

나는 오늘도 나를 보기 위해 섬진강으로 나아간다.

[출처] 섬진강 에세이| 작성자 월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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