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번 완행버스는 섬진교를 건너고

(하동읍 광평리 ~ 다압면 섬진리)

나의 아침은 섬진교위에서 노고단과 형제봉, 구제봉에서 발원한
동정녀와 같은 아침바람을 맞는데서 부터 시작된다.  

그 바람은 섬진강을 타고 내려와 하동읍과 다압면을 잇는 섬진교를 살짝 스쳐
바로 아래에 물끄러미 서 있는 경전선철교를 한바탕 휘감고
하동포구로 내달린다.  

다리위에 서면 언제나 같이 강 북쪽을 응시해 본다.
여름날에는 구름이 솜털처럼 강위에 덮여있었다. 

그 아래로 통통거리며 재첩 잡이 배가 강물위를 선회를 하면
그 뒤를 이어 팽이처럼 물결이 따라서 큰 파문을 일으키며 퍼져나간다.  

섬진교를 건너면 광양시 다압면 신원리다.  

다리 아래로 오솔길이 나 있고 그 길은 강을 따라 오리정도 강과함께 흐른다.
나는 다른 그 어떤 길 보다도 이 좁고 한적한 이 길을 좋아한다.  

누구로부터 방해 받지 않아서이고 섬진강과 깊은 대화를 할 수 있어서이다.
헝클어진 머리, 씻지 않은 얼굴, 다 헤어진 옷을 입었더라도
그 누구도 신경 쓸 필요가 없는 나를 위해 마련한 나만의 오솔길이다. 

노래를 불러도, 소리를 질러도, 뜀박질을 하더라도...
그 무엇을 하던 간섭을 받지 않는 나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이 다리를 건넌 것만 몇 번인지 모른다.
그러나 늘 새로운 곳이고 늘 정감 있는 곳이다.  

나의 아침을 깨우는 곳이고 나의 기도가 시작되는 곳이다.
눈물의 기도를 드렸던 곳도 이곳 섬진교 건너 다압 오솔길이었으며
내 입의 뜨거운 찬양이 터져 나왔던 곳도 이곳이었다.  

나의 불안했던 마음을 떨쳐버렸던 곳도
내 속에 가득 찬 미움을 씻어 내렸던 곳도 이곳 좁고 한적한 오솔길이었다.  

여름철 장맛비속에 길 위로 올라와 몸을 말리고 있던
속칭 똥게와 눈 마주치고 자존심을 건 눈싸움을 한 곳도 바로 이곳이었다.  

가을날 이슬 맺힌 코스모스 한 송이를 따서 입에 물고 달려보면서
어릴적 추억을 반추했던 곳도 이곳이었으며
때론 늦은 밤 달빛에 물든 강물을 퍼 보고 싶었던 곳도 이곳이었다.  

내가 섬진강과 친구 되고 섬진강의 유전자를 전해 받은 곳,
섬진강의 생각과 그의 감정까지도 내 것으로 만든 곳,
놀토였던 어느 초겨울 아침, 잠자는 섬진강을 깨우러 나섰던 곳도
좁디좁은 오솔길이 있는 이곳의 섬진강가였었다.
 

▲ 조문환

섬진교건너 좁고 어두운 신원반점은 양으로 승부를 걸어
전라도는 물론 강 건너 경상도 하동에서 더 많은 고객을 가지고 있는
인기절정의 서민식당이다.

이곳 신원반점은 때로는 내가 먹고 싶은 짜장면을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포기해야 할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그날 재료의 상태나 주인의 기분에 따라서 짬뽕이나 우동으로
메뉴의 선택권이 넘어가기도 한다.  

양은 아무리 작게 달라고 해도 나의 의견은 종종 무시되기 일쑤다.  

이 집의 짜장면 보통은 어지간한 중국집의 특대를 초과한다.
짜장면 곱빼기를 모험삼아 시켜 볼 수는 있으나
자칫 위가 늘어나는 위험을 감수해야하고 
시키더라도 손님의 몰골에 따라서 나의 의견 주문과는 상관없이
보통으로 전락될 수 있음을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항의하거나 불평할 수 없다.
수렴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주인의 의사에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모두가 만족하고 즐겁게 식사를 할 수 있는 섬진강의 명물이다.  

양으로 승부를 걸지만 양이 전부만이 아닌
이곳만의 독특하고 설명할 수 없는 매력이 사람을 끌어 모은다.

 

아침 6:50분이면 어김없이 만나는 친구가 있다.
광양발 하동행 18번 시내버스다.
말이 시내버스지 시골완행버스다.  

나의 짧고도 행복한 아침산책의 동반자이기도 하다.  

여름에는 금오산에 떠오른 태양이 강물에 반사되어 버스의 차창을 물들이고
요즘 같은 겨울에는 어두운 실내조명아래 겨우 한 두 사람만
큰 버스를 지킬 뿐이다.  

그 앞에 6시32분이면 어김없이 섬진철교를 두들겨 깨우는 괴물이 있다.
목포발 부산행 통일호열차다.  

철교와 완행열차는 하나의 운율이 되고 시가 된다.
기차에 몸을 싣고 부산으로 목포로 떠나고 싶어지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리라.  

열차와 철교가 노래라도 부르면 바로 옆에서 춤추는 이가 있으니
바로 무동산이다.

춤출무(舞) 아이동(童)자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았지만 흑암 속에서도 무동산은 마치 춤추는 듯
두 팔 벌리고 온 몸을 흔들고 있다.
무동산을 보면 늘 철없는 머시마가 떠오른다.  

하동송림이 없다면 섬진강은 외로운 강이 되었을 것이다.
6백리를 달려온 섬진강이 송림백사장 앞에 걸터앉아 쉬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동송림을 나는 섬진강의 화룡점정이라고 부르고 싶다. 

3백년이 넘은 고목이지만 여름날 아침 햇살이 파고드는 소나무는
청년을 방불케 한다.

겨울의 소나무는 인고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백사장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 섬진강을 타고 내려오는 노고단발 북풍을
고스란히 몸으로 막고 서 있어야 한다. 

이것을 무동산은 눈 껌뻑거리며 지켜보고 있다.

 

11월의 나의 아침은 섬진강을 깨우는 18번 완행버스와
섬진철교 위를 달리는 통일호 열차속의 장단에 맞춰 춤추는
철없는 무동산과의 조우에서 시작된다.  

이제 하동포구를 타고 내려가면 나의 종착점, 본향 남해바다 노량이다. 

저 멀리 상저구에서 밤을 새워가며 강을 지키고 섰던 재첩잡이 배,
그리고 청둥오리가 나보다 먼저 아침을 맞는다. 

귀향이 멀지 않았다.

[출처] 섬진강 에세이 (97)|작성자 월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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