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박용기 전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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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은 일찍부터 추워져 유난히도 추운 날이 많았다. 그래서 지구 온난화가 아니라 빙하기로 돌아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북극에 가까운 곳이 따뜻해져 그 여파로 우리 나라와 같은 곳이 이렇게 더 추워진 지구 온난화의 한 측면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추운 날씨를 보상하는 즐거움과 아름다움 또한 이 겨울에는 풍성하였다. 바로 많은 눈이었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이 있어 삭막하고 메마른 한 겨울의 정취를 아름답고 낭만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어릴 적 눈이 오는 날에는 정말 신나고 즐거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또 젊은 날엔 눈이 내리는 날이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야만 할 것 같아 마음 설레고 어떤 때엔 함께 눈길을 걷기도 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눈이 오는 날에는 눈길 운전 걱정이 먼저 들게 되었다. 그런데 사진 찍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눈이 내리는 날에는 또 다시 설렘이 찾아왔다. 하지만 정작 눈 사진을 잘 찍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의 하나라고 느껴진다.

▲눈이 내린 설경은 그 자체로 그림이다. 한동안 멈춰서서 정취를 탐한다. ⓒ2013 HelloDD.com
온통 하얗게 눈으로 덮여버린 풍경은 사진으로는 직접 보는 느낌이나 감동을 좀처럼 재현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눈 내린 아침 사진을 찍으며 문득 왜 눈은 하얀 색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은 많은 작은 얼음 결정들이 모여 만들어 진다. 그런데 맑은 얼음결정들이 모여 어떻게 흰색으로 변하게 될까? 일반적으로 얼음은 여러 가지 이유로 완전히 투명하지 않고 반투명한 상태일 경우가 많다. 얼음 결정을 이루는 물 분자 격자와 투과되는 빛이 상호작용을 하여 빛의 방향이 흩어지거나 일부는 흡수되기도 한다.

또한 얼음 속에 가스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에도 얼음 내부의 가스에서 빛이 산란되어 얼음은 투명도를 잃게 된다. 눈은 이러한 작은 얼음 결정들이 여러 방향으로 많이 달라붙어있으므로 입사된 빛이 여러 얼음 결정 속을 지나가면서 모든 파장의 빛이 모든 방향으로 흩어져 반사되게 되며 이 빛이 모여 흰 빛이 되는 것이다. 더욱이 눈에는 많은 기체가 작은 방울 형태로 포획되어 있어 빛을 반사시켜 흰빛을 띄게 한다.

▲추운 날씨에도 생명력은 끈질기다. 눈의 결정이 포근히 안아주고 있다. ⓒ2013 HelloDD.com
그러나 이러한 눈을 아름다운 흰 빛으로 느끼게 되는 것은 우리의 눈과 두뇌가 합작하여 빛의 모든 파장이 합쳐지면 흰 빛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눈을 붉은 색이나 검은 색이 아닌 흰 색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신의 섭리에 감사할 따름이다.

눈이 하얗게 모든 것을 덮어주지 않는다면 겨울은 삭막할 것이다. 맑고 작은 얼음 결정들이 모여 모든 것을 아름답고 환하게 덮어주는 자연의 마술 덕분에, 그리고 눈을 아름다운 흰 빛으로 느낄 수 있는 두 눈의 기적 덕분에 이 겨울도 아름다웠다.
차가운 얼음의 집합체이지만 그 아래에 연약한 생명이 외부의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어 얼지 않도록 보호해 주는 따스함도 지닌 눈을 보면서, 눈은 이 시대의 키워드 중 하나인 힐링의 능력을 가진 위대한 자연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함을 부드럽게 덮어주어 아름답게 만들고, 차갑게 보이지만 실은 포근함도 지니고 있어 생명을 지켜주며, 봄이 되면 자신을 녹여 생명을 소생시키는 눈. 추운 겨울을 살아가면서 지치고 힘들게 느껴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 겨울이 가기 전 눈밭에 나가 눈을 통하여 자연이 주는 힐링의 기운을 꼭 한 번 느껴보기를 권하고 싶다. 나 또한 이 겨울이 다 가기 전 이해인 수녀님의 시처럼 기쁨 뒤집어 쓴 눈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얼음 알갱이들이 저마다 하늘을 보며 솟아있다. 자신이 온 곳을 잊지 않으려는 것 처럼. ⓒ2013 HelloDD.com
눈 내리는 날(이해인)

눈 내리는 겨울 아침
가슴에도 희게 피는
설래이는 눈 꽃
오래 머물지 못해도
아름다운 눈 꽃처럼
오늘을 살고 싶네
차갑게 부드럽게
스러지는 아픔 또한
노래 하려네
이제껏 내가 받은
은총에 불량 만큼
소리없이 소리없이
쏟아지는 눈
눈 처럼 사랑하려네
신(神)의 눈부신 설원에서
나는 기쁨 뒤집어 쓴
하얀 눈사람이네
 

▲구름과 노을의 조화가 환상적이다. 마치 산 뒤로 해가 솟아오르는 것 처럼 보인다. ⓒ2013 HelloDD.com

▲하얀 눈 위에 서서 멍하니 물 속을 바라본다. 모든 피조물이 물안에 담겨있다. 한 곳에 서서 세상의 전부를 바라본다. ⓒ2013 HelloDD.com

▲1년 만에 찾아온 겨울이 반가운 듯, 눈과의 동거에 화려한 면모를 뽐낸다. ⓒ2013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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