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

▲ 나에게 무척 낯선 이름의 바다목장은 통영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바다 가운데로 들어간 곳에 있었다. ⓒ2013 HelloDD.com

봄은 늘 저 남쪽 바다에서부터 온다. 비록 이 봄에 그곳에 가보지는 못하지만 언젠가 바로 이맘때에 가 보았던 통영과 외도의 봄을 기억하면서 남쪽 바다로의 추억여행을 떠난다.

통영은 나에게 조금은 특별한 곳이다. 37년전 신혼여행을 바로 그곳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서민들에게 해외로 가는 신혼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고, 제주도도 웬만한 사람들은 가기 어려웠다. 그래서 서울에서 새마을 열차를 타고 부산에 가서 하루를 보낸 후 다음날 쾌속선을 타고 충무로 들어가는 코스가 나름 낭만이 있는 인기 코스 중 하나였다. 요즈음은 대전에서 통영까지 고속도로가 있어 그리 어렵지 않게 다녀올 수 있는 가까운 곳이 되었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추억의 한 곳을 차지하는 특별한 곳으로 남아있다.

2년 전 거제도에 있는 한국해양연구원 남해연구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이 연구소의 해양생물자원연구보존센터는 통영 앞바다에 바다목장이라는 것을 운영하고 있는데, 다행히 그 곳도 둘러 보게 되었다.
 

▲바다 목장은 담당 연구원의 표현대로 '물 반 고기 반'인 바다인데, 정말 육안으로 보아도 물고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2013 HelloDD.com

나에게 낯선 이름의 바다목장은 통영에서 배를 타고 한참을 바다 가운데로 들어간 곳에 있었다. 바다목장이란 바다의 일정 구역에 인공 어초 등을 설치하여 물고기가 잘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건강한 물고기 치어를 방류해 줌으로써 바다 생물자원이 풍부해지도록 하는 곳이다. 담당 연구원의 표현대로 '물 반 고기 반'인 바다인데, 정말 육안으로 보아도 물고기가 넘쳐나고 있었다. 그곳에서 잡은 싱싱한 전갱어 회와 통영에서 사 간 충무 할매김밥이 어우러진 점심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별미였다.

물고기 중에 광어와 도다리가 비슷하게 생겨 많은 사람들이 구별하기 힘들어 한다. 나 역시 '좌광 우도'라는 말은 알았지만 무엇을 기준으로 좌 우 인지 정확히 몰라 헷갈릴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곳에서 일하는 연구원이 명쾌하게 구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배지느러미에서 등지느러미를 향해 화살표를 그리고 화살표의 오른 쪽에 머리가 있으면 도다리, 왼쪽에 머리가 있으면 광어"라고 한다. 이 설명을 듣고 나니 정말 쉽게 도다리와 광어가 구별되었다.

 

▲섬 입구에 들어서니 아직도 피어나고 있는 동백꽃들이 반겨주었다.
붉은 색 꽃뿐만 아니라 흰 동백꽃과 겹동백꽃도 눈에 띄었다.
ⓒ2013 HelloDD.com

주말인 다음 날은 거제도에서 배를 타고 외도의 봄을 구경하러 나섰다. 섬 입구에 들어서니 아직도 피어나고 있는 동백꽃들이 반겨주었다. 붉은 색 꽃뿐만 아니라 흰 동백꽃과 겹동백꽃도 눈에 띄었다. 초가지붕 위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은 붉은 빛을 잃지 않고 아직도 정갈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운치를 더해 주었다. 동백꽃은 목련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하면서도 고고한 기품을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는 모습이 너무 초라한 목련에 비해 지는 모습마저도 정갈해 마음이 끌렸다. 나도 나이 들어 이 세상을 떠날 때 동백꽃처럼 정갈한 모습으로 하늘 나라에 갈 수 있기를 소원해 보았다.

외도는 캐나다 밴쿠버 근처 빅토리아 섬에 있는 부차드가든이라는 곳을 벤치마킹 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몇 년 전 부차드가든에도 가 본 적이 있는데. 규모도 외도보다는 훨씬 크고 정말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초가지붕 위에 떨어진 붉은 동백꽃은 붉은 빛을 잃지 않고 아직도 정갈한 모습으로 .남아 있어 운치를 더해 주었다. ⓒ2013 HelloDD.com

그런데 그곳엔 다른 정원이나 식물원과 비교하여 한 가지 없는 것이 있었다. 바로 꽃 앞에 이름표가 없었다. 안내자의 말에 의하면 꽃을 감상하는데 방해 받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라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럴 듯한데 나는 꽃 이름들이 계속 궁금하여 오히려 감상에 방해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자연을 보면서 그 자연의 일부가 되어 마음으로 관조할 줄 모르는 나의 부족함 때문일 것이며, 늘 무언가 공부해야만 하는 오래된 강박관념의 습관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춘수 시인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외도는 부차드가든 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그곳과는 다른 멋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바로 외도에서는 한려수도와 해금강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지용 시인은 한려수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자신의 문필로 그 아름다움을 묘사할 능력이 없다고 고백했을 정도라니 내가 여기서 어떻게 더 이상 글로써 설명할 수 있겠는가? 시원한 바람과 싱그러운 바다 냄새 그리고 튤립과 수선화가 가득한 외도의 4월은 이 세상 근심을 잠시 내려 놓아도 좋을 그런 곳이었다.
 

▲외도는 부차드가든 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그곳과는 다른 멋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바로 외도에서는 한려수도와 해금강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13 HelloDD.com

외도를 나와 거제도 포로수용소가 있던 자리에 세워진 기념관 근처의 식당에서 멍게 비빔밥과 도다리 쑥국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 곳에서 처음 먹어보았던 음식들이지만 바다의 향기와 봄 향기가 절묘하게 조화된 봄철의 매력적인 음식이라 느껴졌다. 유채꽃이 가득 핀 길가의 풍경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카메라에 가득 담긴 바다와 봄 꽃들을 다시 들여다 보면서 봄 바다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해 보았다.

 

봄바다에 가서 물었다(이기철)

봄바다에 가서 물었다
근심없이 사는 삶도 이 세상에 있느냐고
봄바다가 언덕에 패랭이꽃을 내밀며 대답했다
닿을 수 없는 곳에 닿고 싶어하는 마음이 근심이 된다고
 

▲노란 수선화와 보라빛 무스카리가 가득히 핀 외도의 4월은 아름다운 꽃 세상이었다. ⓒ2013 HelloDD.com

▲시원한 바람과 싱그러운 바다 냄새 그리고 튤립과 수선화가 가득한 외도의 4월은 이 세상 근심을 잠시 내려 놓아도 좋을 그런 곳이었다. ⓒ2013 HelloDD.com

▲지는 모습이 너무 초라한 목련에 비해 지는 모습마저도 정갈한 동백꽃에 마음이 끌렸다.
나도 나이 들어 이 세상을 떠날 때 동백꽃처럼 정갈한 모습으로 하늘 나라에 갈 수 있기를 소원해 보았다.
ⓒ2013 HelloDD.com

▲돌아오는 차 안에서 카메라에 가득 담긴 바다와 봄 꽃들을 다시 들여다 보면서 봄 바다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를 생각해 보았다. 닿을 수 없는 곳에 닿고 싶어하는 마음이 근심이 된다고. ⓒ2013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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