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명예연구원

▲ 아침 햇살에 눈이 녹으면서 막 꽃망울이 맺힌 조팝나무 가지 위에 얼음 조각이 만들어 졌다. ⓒ2013 HelloDD.com
4월의 꽃샘추위가 제법 매서운 봄이다. 우리의 봄은 이렇게 늘 바람과 꽃샘추위로 날씨를 가늠하기가 참 어렵다. 얼마 전에는 눈까지 내려 변덕스러운 봄 날씨의 진면목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도 벌써 풀밭엔 냉이, 꽃다지, 제비꽃 등 풀꽃들이 가득 피어나고, 노란 민들레는 어느새 씨앗을 맺고 멀리 날려보낼 하얀 깃털 솜사탕을 만들어 놓고 있다.

산수유와 목련은 이제 화려했던 시절을 마감하고 있으며, 뒤 이어 피어난 매화, 살구꽃, 벚꽃 등이 이 봄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다. 또한 한 낮에 풀밭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도르르 말린 꽃대를 조금씩 펴가며 작은 꽃들을 피어내는 꽃마리와 이름이 좀 부르기 쑥스러운 큰개불알풀꽃 같은 작은 풀꽃들도 앙증맞은 모습으로 피어 있다.
 

▲노란 민들레는 어느새 씨앗을 맺고 멀리 날려보낼 하얀 깃털 솜사탕을 준비하고 있다. ⓒ2013 HelloDD.com
꽃 피는 봄은 꽃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만나보고 싶은 꽃들이 너무 많아 바빠지는 계절이다.

얼마 전 오후에 풀밭에서 큰개불알풀꽃의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봄이면 이 꽃을 보면서 어쩌다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측은한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작은 꽃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나로 하여금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고서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 이 꽃의 이름을 봄 소식을 알려주는 꽃이라는 뜻에서 '봄까치꽃'이라고 새로 붙여주었다. 그래도 학명은 베로니카 (Veronica arvensis)로 예쁜 이름을 가진 꽃이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면서 신기한 모습을 관찰하였다. 갑자기 작은 꽃이 움직여 꽃의 각도가 변하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바람에 그러려니 하고 다시 사진을 찍었는데, 조금 뒤에 보니 이 꽃이 다시 움직이며 꽃대로부터 톡 떨어지는 것이었다. 아마 이 꽃은 아침에 피어 오후가 되면 이렇게 꽃대로부터 분리되어 떨어지도록 되어 있나 보다. 이 모습을 보면서 꽃들은 어떻게 하루의 시간을 알고 또 봄이 오는 것을 알까 궁금해졌다.
 

▲풀밭에서 큰개불알풀꽃의 사진을 찍은 적이 있다. 봄이면 이 꽃을 보면서
어쩌다 이런 이름을 얻게 되었는지 측은한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작은 꽃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나로 하여금 카메라를 들이대지 않고서는 그냥 지나치지
 하게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2013 HelloDD.com
그런데 문헌들을 찾아보니 정말로 꽃을 피우는 식물들은 그 안에 시계와 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식물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내부에 지구 자전 주기에 해당하는 24시간 주기의 생체 리듬 시계를 가지고 있다. 이 시계는 빛이 비치는 주기와 연관되어 있어 만일 밀폐된 공간에서 인공적으로 빛을 20시간 쪼여주고 8시간을 어둡게 해 주면 식물의 내부에 있는 시계는 28시간 주기로 움직인다고 한다. 생물시계의 주기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 요소로는 빛과 어둠, 온도 등이 있다.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서 낮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면 식물들은 24시간 주기를 유지하면서 보다 빨라진 아침 시간에 적응하도록 밤과 낮의 주기를 바꾼다.

봄에 피는 꽃들은 일반적으로 낮의 길이가 길어지면, 즉 밤의 길이가 일정 시간보다 짧아지면 피어나는 장일식물이 많다. 반대로 국화와 같이 밤의 길이가 일정 시간보다 길어져야 피는 단일식물들은 가을에 꽃을 피운다. 그런데 식물이 가지고 있는 시계는 하루 중 아침과 저녁 시간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일년 중 봄이 언제 인지를 알려주는 달력의 역할은 하지 못한다. 그래서 식물들은 또 다른 방법으로 이러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한다고 한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해지면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지만, 꽃 피우는 식물들은 봄 소식을 온도의 변화로부터 감지
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밤과 낮의 길이 패턴이 더 믿을 만 하다고 판단하여 이 방식을 주로 이용하도록 진화한 것 같다.
ⓒ2013 HelloDD.com
얼핏 느끼기에는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해지면 꽃들이 피어나기 때문에 온도의 변화를 감지하여 봄을 알 것 이라고 추측하기 쉬우나, 일반적으로는 온도의 변화를 감지하는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 온도 변화는 일관성이 떨어지고 매년 그 패턴도 다르다는 것을 지구 온난화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부터 식물들은 채득하고 있는 지 모른다. 대신 식물들은 태양의 주위를 일정하게 도는 지구의 운동과 연계된 밤과 낮의 길이 패턴이 더 믿을 만 하다고 판단하여 이 방식을 이용하기로 진화한 것 같다.

과학적으로 조금 더 설명 하자면, 식물 속에는 다른 파장의 빛을 흡수하여 변하는 광수용체라는것들이 있다. 광수용체 중 Pr이라는 피토크롬(phytochrome)은 붉은 빛(파장: 666 나노미터)을 흡수하여 Pfr이라는 피토크롬으로 변하고 Pfr은 원적외선(파장: 730 나노미터)을 흡수하여 Pr로 바뀐다. Pr은 빛을 받으면 빠르게 Pfr로 바뀌는데 비해 Pfr은 밤에 서서히 Pr로 바뀌게 된다. 그러므로 낮 동안에는 Pfr이 많다가 아침이 되면 Pfr에 비해 Pr이 훨씬 많아지게 된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꽃샘추위에도 조팝나무꽃이 아름답게 피어났다. 꽃들은 어떻게 봄을 알까? ⓒ2013 HelloDD.com
아침에 꽃을 피우는 식물의 경우 밤 사이에 Pfr농도가 감소하여 아침에 일정 값 이하가 되면 꽃을 피우라는 신호를 보내게 되어 꽃이 피게 된다. 그러므로 식물이 꽃을 피우는 시간을 결정하는 데에는 낮의 길이가 아니라 밤의 길이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봄이 되어 낮의 길이가 길어지게 되면, 즉 밤의 길이가 짧아지게 되면 아침에 남아있는 Pfr 농도가 점점 증가하게 되므로 꽃들은 지금이 봄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최근 신문에 보도된 기사를 보니 서울 여의도의 벚꽃 개화일이 매년 변하고 있으며 올해는 4월 15일로 지난 30년 간의 평균인 4월 10일보다 5일 가량 늦은 것으로 알려졌다. 벚꽃 같은 경우 밤 낮의 길이뿐만 아니라 봄철의 기온도 꽃 망울이 벌어지는 시기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주는 모양이다. 일종의 안전장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작은 꽃들 속에도 심어 놓은 조물주의 질서와 세심한 배려가 참 고맙게 느껴지는 봄이다. 무심히 지나치거나 잡초라고 구박하는 작은 풀꽃 조차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 특별한 아름다움과 의미를 지니는 계절에 서 있다. 이 봄에 이해인 수녀님의 시처럼,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 올리는 꽃들과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 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이 봄에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 올리는 꽃들과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 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2013 HelloDD.com
봄이 오면 나는
이해인

봄이 오면 나는
활짝 피어나기 전에 조금씩 고운 기침을 하는
꽃나무들 옆에서 덩달아 봄앓이를 하고 싶다
살아 있음의 향기를 온몸으로 피워올리는
꽃나무와 함께 나도 기쁨의 잔기침을 하며
조용히 깨어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매일 새소리를 듣고 싶다
산에서 바다에서 정원에서
고운 목청 돋우는 새들의 지저귐으로
봄을 제일 먼저 느끼게 되는 나는
바쁘고 힘든 삶의 무게에도 짓눌리지 않고
가볍게 날아다닐 수 있는
자유의 은빛 날개 하나를
내 영혼에 달아주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조금은 들뜨게 되는 마음도
너무 걱정하지 말고
더욱 기쁘고 명랑하게
노래하는 새가 되고 싶다

봄이 오면 나는
유리창을 맑게 닦아 하늘과 나무와 연못이
잘 보이게 하고
또 하나의 창문을 마음에 달고 싶다

▲ 풀밭엔 냉이, 꽃다지, 제비꽃 등 풀꽃들이 가득 피어나고 있다. ⓒ2013 HelloDD.com

▲쇠뜨기처럼 무심히 지나치거나 잡초라고 구박하는 작은 풀꽃 조차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 특별한 아름다움과 의미
를 지니는 계절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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