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박사

 

▲ 시인 노천명은 '푸른 오월'이라는 시에서 오월을 계절의 여왕으로 불렀다. 나 역시 일 년 중 오월을 가장 좋아한다. ⓒ2013 HelloDD.com
"라일락 숲에 내 젊은 꿈이 나비처럼 앉는 정오(正午)
계절의 여왕 오월의 푸른 여신 앞에
내가 웬 일로 무색하고 외롭구나.
밀물처럼 가슴속으로 몰려드는 향수를
어찌하는 수 없어,
눈은 먼 데 하늘을 본다."

시인 노천명은 '푸른 오월'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오월을 계절의 여왕으로 불렀다. 나 역시 일 년 중 오월을 가장 좋아한다. 이제 막 돋아난 새잎들의 생명력 넘치는 푸르름은 내 가슴 속을 마치 박하사탕을 먹은 직후 들이마시는 맑은 공기처럼 화하게 만든다.

 

▲ '푸르다'라는 말에는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라는 뜻도 있어 이 계절의 빛깔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다. ⓒ2013 HelloDD.com
어릴 적에 나는 5월이 되면 어린이날 노래를 부르면서 '오월은 푸르구나'라는 대목에서 조금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 때까지 '푸르다'라는 말은 '하늘이 파랗다'는 의미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파란 하늘은 가을에 더욱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푸르다'에는 '풀의 빛깔과 같이 밝고 선명하다'라는 뜻도 있어 이 계절의 빛깔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오월을 보통 가정의 달 혹은 사랑과 감사의 달이라고 한다.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고 또 스승의 날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이러한 날들 이외에 나에게는 5월이 또 다른 의미를 지닌 달이다. 37년 전 눈부신 오월의 신부를 아내로 맞이한 결혼기념일과, 음력으로 지내 조금은 들쭉날쭉하지만 아내의 생일 또한 대체로 오월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5월이 되면 최소한 두 번은 꽃을 준비해야 된다.

 

▲ 5월은 결혼기념일과 아내의 생일이 있는 달이다. 나이가 들면서 언젠가부터 아내의 생일에는 나이 수만큼의 장미꽃 다발 대신 좋아하는 꽃 화분을 선물하기로 하였다. 꽃 송이를 세며 나이 들어감을 너무 실감하지 않기 위함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인생을 풍성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지혜가 늘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2013 HelloDD.com
아내가 꽃을 좋아하기 때문에 언젠가부터 이 두 기념일의 나이와 같은 수의 붉은 장미를 선물하게 되었는데, 해가 갈수록 더욱 풍성해 지는 꽃다발을 보면서 아내는 이제 자신의 생일에 받는 꽃다발에는 은근히 부담을 느낀다고 하였다. 아마 나이 들어감을 너무 실감하게 되기 때문이리라. 사실 꽃송이가 늘어가는 일은 아내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부담이 된다. 일 년 중 꽃 값이 가장 비싼 시즌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이만큼의 장미 송이 꽃다발을 사양하기 시작한 것은 이러한 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아내의 배려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아내의 생일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들꽃이나 꽃나무 화분을 선물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인생을 풍성하게 바라볼 수 있는 여유와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찾을 줄 아는 지혜가 늘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오월의 내 주변 자연 곳곳에 숨어 있는 작은 행복들을 찾을 수 있게 된 것도 나이 들어감이 주는 축복이라 생각한다.

 

▲ 내가 일하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오월은 작은 행복들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연못가에는 여러 가지 색의 영산홍이 가득 피어있다. ⓒ2013 HelloDD.com
특히 내가 일하는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의 오월은 작은 행복들이 곳곳에서 묻어나는 아름다운 정원이다. 연못가에는 여러 가지 색의 영산홍이 가득 피어나고, 사과나무, 모과나무, 등나무, 이팝나무, 그리고 아카시아 꽃이 피어난다. 풀밭엔 냉이, 씀바귀, 꽃마리, 고들빼기, 뽀리뱅이, 벼룩이자리, 구슬붕이 그리고 조개나물 같은 풀꽃도 피어난다.

숲길을 따라 아침 산책을 할 때면 박새며 직박구리의 행복한 노래 소리와 함께 어린 아이같이 사랑스러운 모습의 연녹색 이파리들이 아침잠에서 깨어나며 기지개를 켜는 소리도 들린다. 정말 어디를 가도 생명의 힘이 느껴지는 계절인 것이다. 마리온 퀴스텐마허가 쓴 ‘영혼의 정원’이라는 책을 보면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에서 '초록'은 '행복'을 의미했다고 한다. 그러니 5월을 행복의 달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 5월이 되면 나는 내가 찍은 꽃 사진으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카드를 만든다. ⓒ2013 HelloDD.com
5월이 되면 나는 내가 찍은 꽃 사진으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카드를 만든다. 얼마 전에는 몇 년 전 카드에 적었던 글을 읽어보면서, 그 글에 쓰여 있는 것처럼 우리의 아이들의 아이들이 벌써 아름답고 생명력이 넘치는 봄 꽃이 되어있음을 감사한 적이 있다. 오늘도 나는 푸르른 오월이 주는 잔잔한 행복의 향기를 맡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5월에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5월에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인 것 같다.
막 피어난 풀잎과 나뭇잎의 녹색 빛처럼 싱그러운 기분이랄까?

아니면 풀밭에 피어난 냉이, 꽃다지, 민들레, 제비꽃,
봄맞이꽃, 꽃마리, 꽃바지, 벼룩이자리,
그리고 운이 좋으면 보이기도 하는 구슬붕이의 다발을
만나는 기분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막 돋아난 잘 생긴 네 잎 클로버를 찾은 기분일 것 같기도 하다..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찾아오는 5월처럼
우리 늘 아름다운 사랑을 가꾸어 가는 부부가 되어 살았으면 좋겠다.

비록 우리는 나이가 들어가지만,
우리가 키워낸 우리의 아이들이
봄 나무가 되고, 봄 풀이 되며,
또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아름답고 생명력이 넘치는 봄 꽃이 되어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사랑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살기로 하자.

5월에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일인 것 같다.

 

▲ 5월은 분홍빛 모과나무 꽃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2013 HelloDD.com
 

▲ 5월에 피는 이팝나무 꽃은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밥그릇에 소복이 담긴 흰 쌀밥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밥나무라고 불렸으며, 이밥이 이팝으로 변했다고 한다. 가늘고 긴 꽃잎이 바람에 늘 하늘거려 사진을 찍는 나에게 늘 도전 정신을 키우게 하게 하는 꽃이기도 하다. ⓒ2013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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