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사진: 박용기 한국표준과학연구원

▲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을 만드는 나무로는 뭐니 뭐니 해도 단풍나무를 꼽을 수 있지만, 나는 느티나무와 복자기나무, 벚나무 그리고 서어나무도 좋아한다. ⓒ2013 HelloDD.com

10월은 참 아름다운 계절이다. 푸른 하늘과 단풍, 그리고 가을꽃이 어우러진 숲 속은 더욱 그렇다. 꽃과 나무를 주 대상으로 사진을 찍는 나는 좀 바빠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난해에 찍어 둔 사진들을 보니 올해는 여름이 길어서 인지 예년에 비해 단풍이 조금 늦어지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점점 짧아지고 있는 가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 가을의 들과 산에 피는 대표적인 꽃을 말하라고 하면 코스모스나 '들국화'라고 말하는데, 사실 '들국화'라는 이름의 꽃은 없다. ⓒ2013 HelloDD.com

가을의 들과 산에 피는 대표적인 꽃을 말하라고 하면 코스모스나 ‘들국화’ 라고 말하는데, 사실 ‘들국화’라는 이름의 꽃은 없다. 산과 들에 피는 야생의 국화과 꽃들을 통칭하여 부르는 이름일 것이다.
 

▲ 들국화로 불리는꽃으로는 구절초와 쑥부쟁이 그리고 참취, 개미취, 벌개미취 등의 취꽃가족과 노란 산국 등이 있다. ⓒ2013 HelloDD.com

들국화로 불리는 꽃으로는 구절초와 쑥부쟁이 그리고 참취, 개미취, 벌개미취 등의 취꽃 가족과 노란 산국 등이 있다.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을 만드는 나무로는 뭐니 뭐니 해도 단풍나무를 꼽을 수 있지만, 나는 느티나무와 복자기나무, 벚나무 그리고 서어나무도 좋아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가을의 모습들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일까?" 얼마 전 내가 매일 아침 페이스 북에서 만나는 신부님께서 던진 질문이다. 그는 가을의 아름다움 속에 들어있는 공통적인 코드는 '죽음'이라고 말한다.
 

▲ 그런데 우리는 왜 가을의 모습들을 보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일까? ⓒ2013 HelloDD.com

모든 생명체에는 난 곳으로 돌아가려는 성향이 입력되어 있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고 있는 가을잎을 보면서 우리에게도 회귀 본능이 강해지는 계절이 되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늙어감과 죽음을 생각하면서 성숙해 지기를 권면하는 내용이었다.

"잘 죽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는 그의 결론 부분에서는 숙연한 마음이 되었다. 그래서 가을은 슬픈 아름다움을 지닌 계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을부터 시작되는 '계절성 정서 장애'라는 마음의 병이 있다고 한다. 영어로는 seasonal affective disorder라고 하며 줄여서 SAD라고 부르는데, 이 말이 슬프다는 말이니 가을에 느끼게 되는 쓸쓸하고 우울한 감정을 참 잘 나타낸다는 생각이 든다.
 

 

▲ 가을은 슬픈 아름다움을 지닌 계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2013 HelloDD.com

가을이 되면 누구나 조금은 쓸쓸한 감정과 우울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그 정도가 심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병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SAD는 대체적으로 가을철이 되면서 낮의 길이가 짧아지는 북회귀선 이북과 남회귀선 이남의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겪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세계 지도를 들여다 보면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유럽, 북미 등이 여기에 속하며 동남아시아, 대부분의 아프리카 지역 및 중남미의 많은 나라 등은 이 지역에 해당하지 않는다.

SAD의 원인은 아직도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으며 몇 가지의 가설이 제안되어 있다. 첫 번째는 햇볕의 영향이다. 우리 망막이 빛을 받으면 신호가 뇌의 시상하부라는 곳으로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는 수면, 식욕, 체온, 기분 등을 조절하게 된다. 해가 짧아져 하루의 일조량이 적어지면 이러한 활동이 둔화되어 SAD가 나타날 수가 있다는 가설이다. 두 번째는 세로토닌이라는 뇌신경전달물질의 영향이다. 가을과 겨울철에는 세로토닌의 양이 줄어들어 우울한 기분이 된다는 설명이다.

 

▲ 아름답게 물든 단풍과 꽃을 피우고 씨를 맺어 바람에 날리고 있는 작은 풀들을 보면서, 아름다운 회귀를 준비하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3 HelloDD.com

그 밖에도 뇌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의 영향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수면과 연관된 이 호르몬은 어두워지면 분비되는데, SAD를 경험하는 사람들의 겨울철 멜라토닌 수치는 정상적인 사람에 비해 현저히 높다고 한다.

SAD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제시된 몇 가지를 보면, 햇볕을 많이 쪼일 것, 스트레스를 피할 것, 운동과 함께 잘 먹을 것 등이 있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가을꽃과 단풍으로 아름다운 숲길을 걸은 후 아담한 카페에 들러 맛있는 케이크 한 조각과 함께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면 이 아름다운 가을에 SAD와는 친구로 지내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제 가을이 깊어 가고 있다. 아름답게 물든 단풍과 꽃을 피우고 씨를 맺어 바람에 날리고 있는 작은 풀들을 보면서, 아름다운 회귀를 준비하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끔씩 마음 속에 스며드는 쓸쓸함을 슬픈 아름다움으로 즐기며 늙어감을 성숙함으로 바꿔가는 지혜로움도 배우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파란 하늘 빛과 붉고 노란 단풍 빛으로 물든 투명한 아침 햇살을 카메라에 가득 담아 외로움을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을노래 / 이해인

하늘은 높아가고
마음은 깊어가네

꽃이 진 자리마다
열매를 키워 행복한
나무여,  바람이여.슬프지

않아도 안으로 고여오는 눈물은
그리움 때문인가

가을이 오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멀리 있는 친구가 보고 싶고
죄없이 눈이 맑았든
어린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네

친구여
너와 나의 사이에도
말 보다 소리없이 강이 흐르네.
이제는 우리
더욱 고독해 져야겠구나

남은 시간을 아껴쓰며
언젠가 떠날 채비를
서서히 해야겠구나

잎이 질때마다
한 웅큼의 시(詩)들을 쏟아 내는
나무여, 바람이여,

영원을 향한 그리움에
어느새 감기 기운처럼 스며드는 가을,

하늘은 높아가고
기도는 길어가네.

 

파란 하늘 빛과 붉고 노란 단풍 빛으로 물든 투명한 아침 햇살을 카메라에 가득 담아 외로움을 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2013 HelloD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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