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대덕특구 방문한 박 대통령, 서둘러 자리떠 '실망' 여론'과학기술 중심' 체감·공감대 떨어져…현장, 진심 드러난 '방문' 기대

 

 

지난 2002년 7월 25일,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이 한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전 정전협정 체결 49주년을 기념해 열린 미군 참전용사에 대한 한국전 참전 종군기장 수여식 행사장이었다. 우리나라 정부 주관 행사였지만 정부의 대표도 없었고, 장소도 청사가 아닌 은행의 조그만 강당에서 열린 조촐한 행사였다. 그냥 '기장'만 전달하는 자리였지만 참전용사와 가족들은 감사하고 감격해했다.

그런 자리에 역사상 가장 강한 부통령이라는 평가를 들었던 체니 부통령이 예고도 없이 참석한 것이었다. 그는 언론에 비쳐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해 웬만한 공식 행사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그가 참전용사들과 유가족들을 일일이 위로하고 격려한 뒤, "민주화되고 발전된 오늘날 한국의 모습은 당시 미국의 역할이 헛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말로 자부심을 고양시켰다.

미국의 힘을 엿볼 수 있었던 이 사례는 두고 두고 회자되며 리더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게 했다. 그의 모습이 지난 29일 대덕연구개발특구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전을 찾은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와 오버랩됐던 건 단순히 기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실로 오랜만에 대덕특구를 방문했다. 특구의 40주년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박 대통령의 특구 방문은 지난 5월 22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등 안보위협에 대한 대비태세와 국방과학기술을 통한 창조경제 창출 방안을 점검하기 위해 ADD(국방과학연구소)를 들른 이후로 처음이다. 사실상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이 집적된 특구 방문은 취임 이후 처음인 셈이다.

그런 그에게 쏟아진 기대는 엄청났다. 40주년의 대덕을 기념하는 의미도 있었지만, 박 대통령이 국정 운영 중심인 창조경제 핵심으로 대덕을 연신 거론하며 중요성을 피력해왔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뿐만 아니라 박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어떻게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한 사람이기도 했다.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 무엇을 중요시해야 하는지는 그 누구보다 잘 알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과학기술 사랑을 체감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이날 역시 박 대통령은 무엇인가에 쫓기는 듯 서둘러 대전을 떠났다. 기념식에서 축사를 한 박 대통령은 서둘러 다른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행사장은 번잡해졌다. 박 대통령을 보기 위해 찾아온 수많은 과학기술인들이 일말의 여지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기 때문이었다. 사회를 보던 아나운서도, 행사를 진행하던 관계자들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박 대통령의 특구에서의 일정은 기념식 참석 후 과학영재들과 성과 전시회를 참관하고, KAIST를 방문해 젋은 과학자들을 격려한 게 전부였다. 과학자들과의 오찬 시간도 없었다. 단순히 행사 참석만을 위해서 온 셈이었다.

타의가 아닌 자의로 행사의 중요성을 따져 참석한 체니 부통령과는 상반되는 행보다. 이쯤되니 의하하기도 하다. 다른 지역을 방문할 때는 하루를 통째로 할애할 때도 많았던 박 대통령이 유독 대전 방문에만 인색한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느 대목에서나 최고 통치권자의 의지는 가장 중요한 부분일 수 밖에 없다. 위에서 아래에게 직접적으로 지시하는 '탑다운'의 병폐가 사회 전반에 걸쳐 문제가 되고 있긴 하지만, 어찌됐든 최고 통치권자의 말 한마디는 과학자들, 또는 과학기술계를 웃게 만들 수 있었다. 그것이 과학기술계 고질병을 해결할 수 있는 묘안이 아니었어도 말이다.

멀리 까지 가지 않아도 좋은 예는 찾아볼 수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ADD를 설립하고 12차례, KIST를 세운 뒤 8차례나 방문했다는 사실을 박근혜 대통령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소한 진심은 내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축사에서 전한 "국민여러분께서도 깊은 관심과 사랑으로 우리 과학계를 응원해 주실 것을 당부드린다"는 말은 박 대통령에게 더 필요한 말이 아닐까 싶다.

취임 후 첫 출연연 방문. 다음은 어떤 식의 방문이 될지 심히 궁금하다.

한편 이날 진행된 기념식 역시 '빛좋은 개살구' 오명을 빗겨가진 못했다. 예산만 과다 투입된, 일종의 의미없는 보여주기식 '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대한민국 과학기술을 이끌어 온 대덕특구의 40주년을 되돌아보는 시간은 간단한 영상으로 대체됐다. 나머지는 유공자 시상식과 축사, 퍼포먼스 공연 뿐이었다.

'대덕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창조'를 주제로 한 성과전시회 역시 논란의 대상이 됐다. 겨우 8개 출연연만이 참여한, 반쪽짜리 행사였다는 것이다. 의미도 퇴색됐다. 대덕의 연구성과가 아닌, 8개 큰 연구소들의 연구성과 잔치가 돼버렸다. 특구의 존재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한 과학기술계 관계자는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 많은 준비가 있었다. 그동안 몇 번이나 방침이 바꼈나 모르겠다"라며 "40년 의미를 살릴겸 출연연 위주가 아닌 대덕의 연구성과로 가자라고 이야기했지만 하나도 반영이 안됐다. 결국 큰 연구소 위주로 갔다. 이런 것 마저 차별을 두니 향후 과학기술 형평성 논란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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