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이유 있나" 최문기 장관 ETRI·생명연·특구재단 등 연구현장 방문서 이례적 경고
"사정하고 읍소도 했다…무엇이든 결과를 내야할 때" 생명연은 비공개 진행 궁금증 키워

최문기 미래부 장관이 8일 대덕연구개발특구 신년교류회 참석 후 ETRI를 방문, 소임자 등 중견 연구원들에게 '강도 높은 자기 쇄신'을 주문하고 있다.
최문기 미래부 장관이 8일 대덕연구개발특구 신년교류회 참석 후 ETRI를 방문, 소임자 등 중견 연구원들에게 '강도 높은 자기 쇄신'을 주문하고 있다.
"출연연이 정부 예산 4조를 쓴다. 엄청나게 큰 돈을 쓰지만, 외부에서는 이제 출연연에 기대하지 않는다고 한다. 출연연이 없어도 영향받는 게 없다고 한다. 존재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면서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이제는 피할 방법이 없다."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정부출연연구기관에 전에 없는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던졌다. 

단순 경고가 아니라 출연연의 수탁과제 집중 행태에 '도급직', 향후 계획을 담은 업무보고에 '구체성과 고민이 없는 건성건성'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강도 높게 질타했다.

이같은 최 장관의 발언은 일회성 '경고 메시지' 차원을 넘어 출연연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다. 

최 장관은 8일 연구개발특구 신년인사회에 이어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찾아 토론 및 연구현장 방문의 시간을 가졌다. 오전에는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의 업무보고를 받고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최 장관은 ETRI에서 작심한 듯 포문을 열었다.

그는 기관 업무보고를 들은 뒤 "솔직하게 말하고 이야기를 듣겠다"고 말문을 열고 "지난 1년 동안 출연연 원장들에게 사정도 하고, 읍소도 하고 때로는 겁도 줬다. 그런데 전혀 변한게 없다. 직접 연구원들과 이야기하기 위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출연연 예산 등을 언급하며 "출연연이 중화학공업의 기반을 다지는 데 제 역할을 한 것은 맞다. 그런데 중간에 우여곡절을 거치면서 목표를 놓친 것도 사실이다. 지금 출연연이 국민들에게 막대한 혈세를 쓰고 얼마만큼의 부가가치를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또 국민들이 대단한 성과라고 인정해주는 것이 있는지 스스로 돌이켜보라"고 말했다.

정부 예산으로 연구하고, 일부 수탁과제를 맡았지만 실패 확률이 없는 목표를 설정하고, 평가를 위해 임팩트 없는 결과를 성과로 내놓는 관행에 대한 질타다. 최 장관은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해오지 않았느냐. 아니라면 말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무엇이든 결과를 내라…도전과 열정 없다면 연구자 아니다"

최 장관이 강조한 변화는 '자율'과 '성과'로 요약된다. 또 중소기업 및 중견기업 등에 대한 적극적 기술지원 역시 연구 못지 않은 출연연 주요 성과임을 못박았다.

최 장관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다 바꿔야 한다"면서도 "무엇을 해야 하냐고 묻지 마라. 기초연구든 원천연구든, 응용이든 자신이 잘 하고 또 할 수 있는 것을 해라. 대신 결과를 내라. 이런 도전정신과 열정이 없다면 연구자도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과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기초연구를 할 경우 상당 수준의 이론을 수립하거나, 임팩트가 큰 논문이 기준이다. 응용연구는 최종적으로 산업화 돼 제품이나 서비스로 나오는 것, 또는 제품 및 서비스에 있어 필수불가결할 것을 기준으로 내놨다.

연구에 대한 전폭적인 권한을 주는 대신,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이제는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그러면서 출연연의 또 다른 역할과 기여할 수 있는 부분으로 중소기업과 중견기업 지원을  주문했다.

최 장관은 "출연연이 칸막이 시스템으로 오랫동안 지내왔기 때문에 틀을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안고쳐지면 이야기가 안된다"고 꼬집고 "사람마다 역량과 경험이 다 다르다. 기초·원천기술을 잘하는 사람은 하고, 응용에 소질이 있는 사람은 응용연구를 하면 된다. 하지만 일정 기간 후 에너지가 떨어지면 경험과 지식을 살려 중소기업 기술력을 높이는 것도 좋은 역할"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ETRI가 금년 조직개편을 통해 신설한 소프트웨어연구소 운영계획과 방향을 들은 뒤 "수탁과제 따는 데 정신이 빠져서 그런지,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이 없는 것 같다. 소프트웨어 관련 박사 600명이 모여 있는데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면서도 "이왕 만들어졌으니 잘 운영해 좋은 성과를 내달라. 나는 성과를 잘 활용할 수 있는 길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최 장관은 끝으로 "응용연구로 삼성전자하고 붙어 이길 자신 있느냐?"고 묻고 "지금 분위기가 조금 지나면 출연연 다녔다는게 국민 세금을 탕진한 불명예가 될 위기다. 그만큼 좋은 기회기도 하다. 창조경제 기치를 내걸고 출연연 르네상스를 만들어가자. 정말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자리는 최문기 장관이 출연연 소임자 등 중견 연구원들에게 변화를 주문하는 동시에 연구원들과 의견을 나누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최 장관의 지적과 당부가 50여 분 진행돼, 연구원들과의 토론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최 장관은 이후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을 방문해 150여 명의 연구원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공개된 ETRI와 달리 생명연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돼 궁금증을 키웠다. 일각에서는 비공개로 진행된 만큼 ETRI보다 더 '민감'하고 '직접적'인 얘기가 나오지 않았겠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한편 신년인사회와 연구현장 방문에 앞서 최 장관은 이날 오전 대덕특구 기자실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도 출연연 정책의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뜻을 피력했다.

최 장관은 지난해 출연연에 대한 평가를 묻는 질문에 "작년에 읍소도 하고 부탁도 했다. 해볼 것은 다 해보지 않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기회를 줄 만큼 줬다. 이제 다 끝났다"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어떤 변화가 있느냐는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은 피했지만 "그동안 국정감사나 이런데서 숱한 지적을 받지 않았느냐"고 밝혀 어떤 식으로든 출연연 정책 기조에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을 예고했다.

창조경제에서는 지자체와 민간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장관은 "정부의 중소기업 지원이 시너지 창출로 이어지지 않았다"며 "이 부분을 지자체와 지역 산업체에 맡기고, 정부는 시장을 형성해주는 등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정부가 창조경제 구현과 지역 균형발전 및 활성화를 동시에 이루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실제 정부는 창조경제추진단을 설치, 지역이 주최가 돼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 스스로 계획을 만들고, 집행하는 방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 추진에 대해서는 "올해가 과학벨트 사업을 시작하는 사실상의 원년이다. 부지매입비가 700억원이었는데 국회에서 300억원 증액해서 1000억원의 예산이 확보됐다. 이 정도면 과학벨트에 대한 정부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올해 4월부터는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최문기 미래부 장관이 8일 대덕연구개발특구 신년교류회 참석 후 ETRI를 방문, 소임자 등 중견 연구원들에게 '강도 높은 자기 쇄신'을 주문하고 있다.
최문기 미래부 장관이 8일 대덕연구개발특구 신년교류회 참석 후 ETRI를 방문, 소임자 등 중견 연구원들에게 '강도 높은 자기 쇄신'을 주문하고 있다.

저작권자 © 헬로디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